미투를 '펜스룰'로 맞대응? 그 심리 뭔가 봤더니

[저는 예민한 여자입니다] 남성들은 왜 가해자에 함께 분노하지 않을까

등록 2018.05.07 11:39수정 2018.05.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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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기안84'가 얼마 전 여성 팬에게 '농담'을 던진 것이 문제 발언으로 화두에 올랐다. 그가 '미투 때문에 가까이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미투를 농담으로 소비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


미투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은연중의 태도는 비단 그에게만 보여진 일이 아니다. 요새 '미투 때문에'로 시작하는 말에는, 대부분 여성과 가까이에서 접촉하거나 함께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깃털처럼 가벼운 대처와 비아냥거림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이 다 꽃뱀일 것 같나요?

여기저기에서 '미투'가 등장하자 이를 '펜스룰'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예 여성들과 '겸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성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말을 섞지 않겠다는 배제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결국 펜스룰이다.

'펜스룰 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는 성희롱의 의도가 없이 떳떳하다. 아예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만져!'라는 태도를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취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게다가 펜스룰이 통용된다는 사실 자체가 남성들이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할 수도 있고, 자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밀어낼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다.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여성의 의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특히 직장에서의 여성 배제는 남성을 고발하는 여성들에 대해 '펜스룰'이라는 방식으로 일종의 '복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임원진이 모두 여성인 회사에서라면 남성 신입사원이 펜스룰을 주장할 수 있을까? 그들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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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과 밥 먹으면 고소당한다는 그 안일한 생각에 대하여 따져 묻고 싶다. 왜 여성이 당신의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중 한 장면. ⓒ jtbc


펜스룰이 마치 꽃뱀을 대하는 가장 안전하고 떳떳한 방법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미투 때문에 업무적 대화는 메신저로', '미투 때문에 같이 식사는 못 하겠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들은 기존의 여러 성희롱이 '의도치 않게'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지금 너를 성희롱, 성추행할 의도가 없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으니 애초에 원인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가해자를 감싸는 태도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성이 모두 꽃뱀이 아닌 것처럼 남성이 모두 성희롱, 성폭행의 가해자가 아니다. 왜 스스로 가해자와 같은 틀 안에 스스로를 밀어넣는가. 상대방을 성적으로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는데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라고 여겨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무고한 상대 여성이 잠재적으로 무고죄를 저지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척 실례다.

여직원과 밥 먹으면 고소당한다는 그 안일한 생각에 대하여 따져 묻고 싶다. 왜 여성이 당신의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상대 여성에게 아무런 성적인 수치심을 줄 의도가 없는데 왜 그 여성이 당신을 오해할 거라고 여기는가?

어쩌면 그것은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가 자신에게도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 마음의 잔재가 자신에게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시 모를 실수를 피하기 위해' 지레 접촉 자체를 경계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취했던 태도, 여성을 한 인격체로 대하는 방식을 점검해볼 일이다.

펜스룰은 동질감의 발현

표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란 참 오묘하다. 사람이 누구나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표절에 대한 두려움을 일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분명히 표절이 아닌데 어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그게 누가 봐도 아주 분명한 상황이 아니라면 섣불리 누군가의 편을 들기 어렵다. 그게 만약 오해라면, 그 일은 나에게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투에 대해 펜스룰로 대응하는 분위기가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언제든지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위기의식이 아닐까. 꼭 고위 임원진이 아니더라도, 일반 남성들도 미투에서의 가해자들과 까마득히 멀리 있지는 않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펜스룰은 바로 그 동질감에서 시작된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성희롱할 생각이 없는데 성희롱으로 오해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그래서 그들은 가해자를 향해 함께 분노하지 못하고 대신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회에서 여성을 다뤄온 방식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완벽히 필터링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비단 남성들에게만 화살을 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역시 필요한 변화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가고 바꿔나가는 단계다. '미투 운동'은 그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성평등'에 위배되거나 때로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 관념을 고쳐나가는 것이 옳다. 그런데 기존에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말하지 않고, 내 가치관은 바꿀 생각 없으니 유지하되 아예 그 상대를 배척하겠다는 결국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기득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들을 멀리함으로써 오해받을 만한 싹을 자르겠다는 방향으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상식적인 선에서 인격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려고 노력하자는 것이 그리 대단한 부탁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해받을 짓을 해야 오해를 받는 것'이다. 여성과 같이 식사하지 않겠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인지, 펜스룰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cats-day)에 중복 게재됩니다.
#미투 #펜스룰 #젠더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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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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