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깡 부리지 마" 뜻 알면 절대 쓸 수 없는 말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24]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의심해야

등록 2018.05.13 13:17수정 2018.05.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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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꽃 중의 왕 모란꽃 ⓒ 조찬현


모란꽃 시인 영랑의 강진 생가에는 4월 하순에 모란이 핀다. 중학생 때 미술부 활동을 했던 나는 미술 선생님을 따라 강진읍에서 열리는 사생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했는데, 그날 김영랑 시인의 생가를 처음으로 가보았다. 모란이 흐드러지게 핀 눈부신 봄날이었다. 선생님은 활짝 핀 꽃향기를 맡다가 "아, 영랑의 향기!" 하면서 눈을 살며시 감았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모란꽃의 향기가 참으로 그윽하다는 것을.


<삼국유사> 선덕여왕 편에 모란꽃 이야기가 나온다.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꽃씨 3되를 보내 왔다. 신하들은 탐스럽고 아름다운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씨를 대궐 안에 심으면 꽃향기가 넘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덕만공주(선덕여왕)는 대뜸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인 진평왕이 공주에게 그림과 씨앗만을 보고 어떻게 향기가 없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덕만공주는 그림에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는 줄 알았다면서, 꽃에 향기가 있으면 반드시 벌과 나비가 따르게 마련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씨앗을 대궐 뜰에 심고 꽃이 핀 뒤 살펴보니 정말로 향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말하고자 하는 설화이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의 모란도에서는 나비를 일부러 그리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중국어로 나비의 접(蝶)은 80세 노인을 칭하는 질(耋)과 발음이 같다고 하며, 그러기에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면 부귀를 80세까지만 누리라는 뜻이 된다. 부귀영화를 바라는 끝없는 사람의 욕심에 의미를 제한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나비를 그려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는 남쪽 지방보다 모란꽃이 더디게 핀다. 매화가 피고 지고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목련도 피고 지면, 5월 초쯤에 모란이 핀다. 덕수궁 정관헌 앞의 모란꽃이 유명하고, 조계사 옆 우정총국 화단의 모란꽃도 볼만하다. 서울에서 모란은 5월에 잠깐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만개한 꽃을 보려면 날짜를 잘 맞추어야 한다. 참 기품 있는 모란꽃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꽃이 피는 시간이 아쉽도록 짧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금도 모란꽃은 향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어느 해 모란꽃을 구경하려고 용산 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 자녀들과 나들이를 나온 가족을 보았다. 엄마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모란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단다. 너희도 선덕여왕 위인전에서 보았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들려주는 것이 안타까워 "정말 모란꽃에 향기가 없는지 직접 한 번 맡아보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꽃향기를 맡은 그 가족은 모란꽃 향기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면서 놀라움을 표현했다.

또 한 번은 꽃의 향기가 짙으니 모란이 아니라 작약이라고 빡빡 우기는 사람도 보았다. 모란과 작약, 사람으로 치자면 형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꽃 모양과 피는 시기가 비슷하여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신라 설총이 지은 우화 '화왕계(花王戒)'에 모란은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나온다. 꽃 중의 왕답게 모란꽃은 크고 화려하다. 다년생 초본식물인 작약(芍藥)과 비슷해 목작약이라고 하며, 작약은 초목단이라고 한다. 나무에 속하는 모란꽃이 먼저 피고 다년생 풀인 작약이 뒤를 잇는다.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이미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나 틀렸던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출판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유명한 작가를 만났다. 그 작가는 자신이 쓴 책을 나에게 선물하면서, 책의 표지를 열면 나오는 면지에 만년필로 내 이름을 쓴 다음 한문으로 '惠存(혜존)'이라고 쓰고 사인까지 하여 나에게 건네주었다.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직접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감흥이 유달랐다. 나를 대접해주는 것 같았고 유대감도 느껴졌다. 그때의 인상이 참 깊었기에 '혜존'이란 말은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그 후로 많은 작가와 교류하면서 받은 책 선물이 지금은 책장 하나를 차지할 정도이다.

그런데 십중팔구 책의 면지에 '혜존'이라는 단어를 한자나 한글로 적었다. '혜존'은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받아 간직하여 주시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드릴 때 상대편의 이름 아래에 쓰는 말"이라는 풀이가 붙어 있다.

내놓을 거면 흔적이라도 없애주지...

오래전 내 첫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편집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이 참 설레고 뿌듯했다. 흔히 첫 작품을 '처녀작'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표현을 삼가고 있다. 언젠가 여성운동을 하는 어느 시인으로부터 '처녀작'이라는 단어에 성차별이 담겨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왜 '총각작'은 없느냐고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처녀의 깨끗한 순결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만들어진 단어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전투적이었던 그녀의 말투가 내 감정을 상당히 긁었다. 그래서 인상을 쓰면서 내가 사전을 편찬한 사람이 아니라서 왜 '총각작'이 없는지는 모르지만, 아무 죄 없는 나에게 왜 언성을 높이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던 일이 있다.

그 후로 '처녀작'은 꺼리는 단어가 되었다. 주제가 잠시 곁길로 샜지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기에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책 출간을 10일 정도 앞두고 책을 보내야 할 사람 목록을 적어 보니 100명 가까이 되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惠存'이라는 한자를 많이 연습했다. 저자의 서명이 있는 책을 선물로 받을 때마다 나도 꼭 해보고 싶은 소망은 내 책에 서명하여 선물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출간된 책을 손에 받아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졌다. 그날 밤 정성껏 '아무개님 惠存'을 손이 뻐근하도록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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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나는 '혜존'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썼다. ⓒ unsplash


오래도록 나는 '혜존'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썼다. 내 나름대로는 밤잠을 설치고 시간을 쪼개어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니 읽어 주시고, 잘 간직해 주십사 하는 마음을 담아 혜존을 썼다. 책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책을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해오면 기쁘고 즐겁다. 내용이 좋다고 덕담이라도 해주면 그간 글을 쓰는 동안의 고뇌에 위안을 받고 다시 쓸 힘을 얻는다.

그런데 책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아무런 언급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인사를 바라고 책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말 한마디 없는 것에는 약간의 섭섭함이 남았다. 저자라고 해서 책이 공짜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증정본 이외의 책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내 돈으로 책을 사서 우편요금까지 들여서 보냈는데 전화 한 통화 안 하는 것은 야박한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서가 예닐곱 권이 넘으면서 책을 보낼 사람의 수를 대폭 줄였다. 꼭 줘야 할 몇 사람에게만 보냈고, 어떤 책은 단 한 권도 증정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이다.

어느 날 친한 문인들과 술자리에서 저서 증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첫 작품은 직접 서명하여 많은 사람에게 선물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 문인이 몹시 씁쓸한 표정으로 어느 헌책방에서 자신이 친필로 사인하여 모 인사에게 준 책을 발견하고 얼굴이 몹시 뜨거웠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다른 문인들도 엇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가끔 헌책방 순례를 하는 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저자가 서명하여 누군가에게 준 책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그럴 때마다 참 민망하고 복잡한 감정이 맴돈다.

​흔히 작가에게 작품은 자식과 같다고 하는데, 귀한 자식이 존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내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착잡해지는 순간을 만들지 않으려면, 저서 증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소장하던 책이 많았던 나는 몇 번의 이사를 할 때 책이 가장 큰 짐이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안타깝지만 가져갈 책과 폐기처분을 할 책을 꼼꼼하게 구분하여 몇 수레씩 집 밖에 내놓았다. 저자 서명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껴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그런 책을 정리할 때는 서명이 된 그 페이지는 가위로 잘라냈었다. 그러는 것이 저자 서명을 하여 내게 책을 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혜존'의 뜻은 정반대였다

출판사에는 다양한 분야의 원고가 들어온다. 한번은 출입국관리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보고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다문화 사회'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 저자는 성격이 무척이나 꼼꼼한 사람이었다. 교정을 무려 12번이나 보았다. 담당 편집자를 무척 힘들고 지치게 하는 유형의 저자이지만, 책을 쓰는 사람의 자세로는 바람직하다. 교정에 심혈을 기울일수록 문장은 정제되고 내용은 정교해진다.

책이 출간된 후 그 저자는 증정본을 보낼 때의 격식을 내게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개님 惠存'을 쓴 다음 줄에 저자의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어 보내는 것이 멋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내 경우는 별도로 준비한 자그마한 한지에 내용을 적고 낙관을 찍어 증정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책을 혹시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정리할 때 그 한지를 뚝 떼어낸 후 처리하라는 뜻이다. 내 손으로 쓴 '아무개님 혜존'이 버림받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민망스러움만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 저자는 공감하며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 그 저자가 전화를 걸었다. 어느 국문학자가 '혜존'이라는 말의 쓰임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캐는 저자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잘 알기에 그제야 의문이 생겼다. 출판 편집자의 좋은 점은 물어볼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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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이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은 초기에 종이사전을 냈으니 지금은 웹 사전, 포털 사전, 전자사전만을 내고 있다. ⓒ 국립국어원


잘 알만한 몇 사람에게 전화하여 물어보니, '혜존'의 쓰임이 잘못된 것임이 분명해졌다. 그 오류는 '국어사전'의 탓이 컸다. 사전은 한 언어 공동체가 쌓은 지식과 정보의 곳간이면서 글쓰기와 교정의 전범인데, '일본어 사전'의 흔적이 질펀하다는 것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한자어 풀이는 일본어 사전의 풀이를 거의 옮겨놓다시피 했다. '혜존'도 그런 경우였다.

'혜존'이란 말은 우리나라 선비들이 오래전부터 썼다고 한다. 책이 귀했던 예전에 책 선물을 받으면, 받은 사람이 준 사람한테 받은 은혜(惠)를 고마워하며 잘 간직하겠다(存)는 뜻으로 책표지 안쪽에 써 두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본강점기를 거치면서 본래의 의미가 거꾸로 된 일본식 혜존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참 가소롭고 건방진 말이다. '내 책을 은혜로 알고 잘 보관하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연장자에게 쓰면 큰 결례가 되는 말이다. 알고서는 낯이 뜨거워 차마 쓸 수 없는 말을 국어사전을 믿고 여태껏 써온 것이다.

'한글날'처럼 자기 나라 문자 창제를 기념하여 국경일로 지정한 국가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마저 일본말 찌꺼기를 그 유래도 모른 채 게재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1999년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했다. 그 전까지 민간 출판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증보, 수정하여 개정판을 내오던 국어사전 편찬의 풍토를 정부에서 나서서 틀어막아 버렸다.

그렇게 하여 정부의 권위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우리 말글 생활의 원칙이 되어버렸는데, 초판 발행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판을 발간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아무도 국어사전 편찬 사업을 못 하게 해놓고 사실상 독점권을 확보한 후에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 속에 일본말 찌꺼기가 녹아든 것은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긴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엄연히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치욕스러운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낙제생'이라고?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의례, 인연, 화장, 동장군' 등등 무수한 한자 말이 일본어 사전을 베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미 의미가 굳어져서 우리의 말글살이에 널리 쓰이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사전 속 그 단어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유래를 제대로 밝히고 알려야 한다. 그래야 '혜존'처럼 의미가 거꾸로 쓰이는 얼치기 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 내가 쓰는 말과 글 속에도 숱한 오류가 있을 것이다. 잘못된 것인지 모를 때는 그냥 쓰지만, 일단 알면 고쳐 쓰려고 애써 노력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땡깡 부리지 마라'는 말을 자주 썼었는데, '간질 발작'을 뜻하는 일본말인 것을 알고서 많이 후회했었다. 알았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오류이다. 지금도 '혜존'을 신줏단지 모시듯 받드는 작가가 많을 것이다. 나중에 유래를 알게 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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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 이명수


인간은 누구나 불안전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틀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모르고서 하는 언행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니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말이 있다. 잘못된 점을 알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려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며, 지과필개(知過必改), 즉 과오를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참 하찮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문익점이 붓두껍에 목화씨를 몰래 들여왔다고 알았는데 많이 부풀려진 이야기이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것은 맞지만, 붓두껍에 몰래 숨겨온 것은 아니다. 후대에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이야기로 추정되며, 실록에는 길가에 있는 목화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어렸을 때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했다는 이야기도 날조된 것이다. 열등생이 노력해서 역사적인 위인이 되었다는 예화로 많이 활용하지만, 학교가 공개한 실제 성적은 모든 과목에서 우수했다.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또한, 속고 살아온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잘못된 지식이나 상식을 하나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속기 쉬운지를 생각하게 된다. 잘못된 지식이나 왜곡된 사실이 한번 뇌리에 박히면 그것을 바로잡을 때 정말 심한 내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나는 편집부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못 믿을 사람은 저자"라고 말한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니 어련히 알아서 썼을까 하고 믿게 되면 오류를 발견할 수가 없다. 책에도 무수한 오류가 있으며, 과장과 축소와 왜곡이 허다하다. 특히 내용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경우의 폐해는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으며, 자기 자랑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출판되는 책의 내용은 허풍이나 수다와 다를 바 없다.

현대는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인터넷으로 쉽게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 정보의 바다에는 불순한 의도로 생성된 무수한 거짓 정보들이 뒤섞여 있다. 진위를 가려내는 안목이 없다면 거짓에 놀아나는 한심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과연 맞는지, 한 번쯤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惠存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지과필개(知過必改)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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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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