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지나면 '용돈 배틀' 하는 엄마

[5월이 두려운 사람들] 용돈이 많을수록 부모 위신이 서는 걸까요

등록 2018.05.08 22:26수정 2018.08.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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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날들의 연속이다. 학생일 때는 쉬는 날인 어린이날이 좋았는데,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자 고달픈 날이 되었다. 어디라도 가야될 것 같은데 움직이면 다 돈이다. 수입은 같은데 지출할 일이 많은 5월은 가정의 달이 아니라 '가정경제 위기의 달'이다.

작은 버스 장난감 한 대면 기뻐하는 6세 어린이를 둔지라 어린이날 지출은 그래도 괜찮다. 우리 집 가정경제를 흔드는 건 어버이날과 월말에 있는 친정 엄마 생신이다. 어버이날 양가 용돈 드리는 것도 부담이지만, 아이가 좀 자라고 나서부터는 거리가 먼 시댁을 연휴 때마다 매번 다녀와야 했다.

스마트폰 어플에서 '○○년 오늘' 사진을 보여주는데 16년, 17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시부모님과 함께 했다. 3인 가족 왕복 KTX 표값만 30만 원 정도인 데다, 여행을 가거나 하면 지출은 더 커진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데 돈을 생각해야 되는 슬픈 현실이다. 그나마 돈을 쓰고 가족이 즐거울 수 있다면 괜찮다. 돈을 버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 그런데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올해 어버이날은 어떻게 보내나 걱정이 됐다. 월요일(어린이날 대체휴일)까지 쉬는 연휴인데 시댁에 내려가자니 혼자 계신 엄마가 걸렸다. 2년째 시댁에 가기도 했고 올해는 3, 4월에 시댁에 다녀왔으니 친정 엄마와 보내고 싶었다.

자식에게 많이 받아야 부모 위신이 서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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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가정경제를 흔드는 건 어버이날과 월말에 있는 친정 엄마 생신이다(사진은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스틸컷 ⓒ tvN


5일과 8일이 낀 연휴는 복잡할 것 같아 지난 4월 30일부터 3박 4일간 친정 엄마와 제주도에 다녀왔다. 엄마는 족저근막염이라 잘 걷지 못해 구경도 제대로 못 했는데, 딸이 여행 보내준다며 좋아하셨다. 제주 전통 시장에서 생물 갈치를 사다 조림도 만들어 먹고, 아프면 아픈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풍경과 이야기와 시간을 공유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런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 3월 남동생 가족과 우리 가족은 5월 말에 있는 엄마 생일에 맞춰 엄마와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숙소를 어디로 정할지 단체카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엄마의 메시지.

"난 여행 안 가도 된다. 돈이 좋으니 용돈만 보내라."

올케도 같이 있는 방에 올라온 메시지에 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여행은 여행이고 용돈은 용돈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예전에도 같이 식사만 하고 용돈 안 줘서 서운했단 이야기를 꺼내며 어버이날이랑 생신에는 용돈만 보내면 된다고 하신다. 친정 엄마가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은 명절이나 어버이날처럼 어떤 날이 지나고 나면 '용돈 배틀'을 한다.

"우리는 이번에 며느리가 50, 딸이 30 줬어."
"김씨는 자식들이 100만 원씩 모아서 여행 다녀왔다네."
"그 집은 자식이 많아서 좋겠네. 난 아들밖에 없으니까 아들이 용돈 주고 간 게 다지. 그래도 이번엔 30주더라고. 작년엔 20줬는데 말야."


행사 때마다 10만 원 밖에 드리지 못하는 딸을 둔 어머니는 기가 죽기 싫다는 이유로 실제 받은 돈보다 금액을 올려 말한다. 많은 금액을 받을수록 자식을 잘 키운 사람이 되고, 자식에게 효도 받는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식이 '누구네 부모는 배낭여행이랑 어학연수 보내줬다더라'는 투덜거림을 하면 천하에 몹쓸 놈이란 손가락질을 받는다. 반대로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자랑하는 게 자연스럽다. 자식에게 많은 걸 받을수록 부모 위신이 선다. 자식이 부모에게 받는 걸 불평할 수는 없고 역만 가능한 이유는 뭘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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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봉사하고 어버이를 봉양하느라 가정경제가 흔들리는 5월 ⓒ unsplash


신의 한 수

정연철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는
피곤하다고
피자 한 판 사주고 대충 때웠다


어버이날에 나도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카드에 적고
대충 때웠다


엄마 아빠 나이쯤되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자꾸 깜빡하나 모르겠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린이날 다음에 어버이날인 건
신의 한 수다
-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 동시집 중


자식과 부모가 각자 독립된 개체라는 걸 꿰뚫은 동시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교환은 동등한 관계에서 가능하다. 어린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사랑하자고 만든 어린이날,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만든 어버이날이 공존하며 가정이 평화를 유지하려면 자식은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부터 사라져야 한다. 이는 상대의 마음을 '당연하게'가 아니라 '감사하게' 받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어린이에게 봉사하고 어버이를 봉양하느라 가정경제가 흔들리는 5월, 우리 엄마는 또 친구들에게 거짓 용돈을 말할 거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다른 사람에 비해 용돈 조금 받은 걸 알게 되면 시기심도 생기고 자식에게 서운할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자존심과 연결짓지 말아 주길, 우리를 다른 자식과 비교하지 말아주길 바라지만 쉽지는 않다.

어릴 때 '우리집은 가난하지만 행복해요'라는 말이 싫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싸우고 시끄러운데 행복한 집도 있다니 더 불행하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도 '자식이 용돈을 조금 주지만 괜찮아요'가 힘겨운 거 같다. '용돈 배틀'을 벌이지 않아도 될 만큼, 흡족하게 용돈을 드릴 수도 없어 슬픈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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