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뭐 했어?" 내 아이를 울리는 '슬픈' 질문

[5월이 두려운 사람들] 자랑할 게 딱히 없는 아이들

등록 2018.05.08 17:53수정 2018.08.01 15:02
0
원고료로 응원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a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세종시 원수산 파랑새유아숲체험원에서 어린이들이 숲길을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어린이날에도 그랬다. TV 방송에서는 매일 어린이날이었으면 좋겠다는 몇몇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텔레비전을 보며 환하게 웃는 우리 아이의 표정을 바라봤다. 나는 아이 미소에 담긴 마음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 웃음이 있는 그대로의 웃음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가짜 웃음이라면...

제주 외곽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우리 부부에게 주말은 아이들에게 참 미안한 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특히 우리 가게는 주말이 더 바쁜 곳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이들과 맘껏 뛰놀기 위해 찾아온 이곳.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다 보니 원래 의도처럼 지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주말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집안 TV 앞에 앉혀두곤 한다. 아이들이 뛰놀라며 마련해준 드넓은 마당과 야외놀이터는 손님들의 차지일 때가 많다.

주말이 더 바빠 나들이 가는 일이 적고, 집안에서 움직이며 생활하는 일이 많은 우리 가족의 일상. 하지만 밝게 지내온 아이였기에 우리 부부는 괜찮은 줄 알았다. 늘 웃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 또한 지금 이 생활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게 가짜 웃음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주말 동안 뭐하면서 지내다 왔어요?"

월요일이 되면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이다. 이 말이 우리 아이에게는 어지간히도 스트레스였나 보다. 다른 친구들은 나들이를 다녀왔네, 박물관을 다녀왔네, 놀이방을 다녀왔네 줄줄이 이야기하는데 우리 아이는 뭐라 할 말이 없으니 말이다.

한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아이가 너무 소심한 듯싶다'며 걱정스러워 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아이들 앞에서 뭔가 내세워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 소심하게 있던 거였다. 그러다가 아이는 급기야 어린이집 생활을 위해 나름 자신만의 대답을 만들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월요일만 되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할머니 만나고 왔어요' '박물관 다녀왔어요'... 그게 진실은 아닐지 몰라도 자기 딴엔 친구, 선생님과 소통하기 위한 대답을 만들었다. 나중에 엄마인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줬는데 어찌나 아이에게 미안하던지... 그때부터 아예 아이들을 위한 날을 따로 만들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어린이집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면 어린이날을 굳이 5월 5일로 한정시켜 정해둘 필요가 있을까. 각자 가정의 사정에 맞게 아이들을 위한 날을 정해 함께 웃고 즐긴다면 그게 진정한 어린이날이 아닐까?

아무튼 아이의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엄마 입장에서는 올해 어린이날 또한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연휴가 끝나고 등원하면 아이들을 향해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어린이날 뭐 하고 보냈어?"
"어린이날 무슨 선물 받았어?"

어린이날 연휴에 가족을 데리고 우리 가게를 찾은 한 아빠의 말에서도 그런 불안함을 느끼기 충분했다.

"내일은 학교 가서 여기 맛집 다녀왔다 자랑하고, 돌고래도 봤다 자랑해. 아빠 오늘 힘들게 왔다 갔다 했으니까 자랑 실컷 해야 한다. 알았지?"

우리 아이를 걱정하면서 곳곳에 소외된 아이들의 어린이날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우리는 비교란 걸 시작하고, 비교 안에서 생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는 사이 의도치 않은 비교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a

어버이날을 하루 앞 둔 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꽃시장에서 상인들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진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어버이날에 대한 고민!

"며느리가 뭐해줬어?"
"딸이 무슨 선물 해줬어?"

우릴 부담스럽게 하는 5월의 기념일은 얇아진 지갑 때문이 아니라 곳곳에서 쏟아질 이 같은 질문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물을 하는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는 (또는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역시나 뭔가 괜찮은 대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념일들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점점 퇴색되어 가는 건 아닐까. 그저 형식적인 기념일로, 혹은 남들 따라하기식의 기념일로 지내다가 진짜 기념해야 할 것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나부터도 그렇다. 남들 하는만큼만 하자면서 SNS를 뒤적여 선물을 준비한다. 어쩔 수 없는 기념일을 대하는 요즘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관찰-욕심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AD

AD

인기기사

  1. 1 부메랑이 된 박근혜 말...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2. 2 부산 유니클로 범일점 뜻밖의 첫손님... "NO일본"
  3. 3 기네스북에 오른 새만금에서, 끔찍한 일 진행되고 있다
  4. 4 공개총살 당한 남자, 그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5. 5 영동에서 사라진 '박덕흠 사퇴 요구 현수막'... 누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