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학용품'...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공모 - 이름 때문에 생긴 일] 부모님이 정해준 '억울한' 이름에 얽힌 사연

등록 2018.05.09 15:57수정 2018.05.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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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이었다.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 협력업체에 입사했다. 청년은 언제부터인가 '쿵'이라 불렸다. 출입증 등록을 위해 이 청년을 불렀다.

"어이, 쿵씨. 출입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본명이 뭔가요?"
"저... 쿵인데요."
"아니, 본명 말이야!"
"쿵, 맞는데요..."

그랬다. '쿵'은 크고 둔탁한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명도 아니었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적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쿵', 이 이름은 건강하고 잘 생겼으며 전남 여수가 고향인 1976년생 '곽'씨 성을 가진 실제 이름이었다. '곽쿵'이 주민등록상의 본명이었다. '쿵'은 지난 1976년 인도에 여행을 다녀온 삼촌이 당시 조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지은 이름이었다. 때마침 인도에서 당시에 가장 인기 있던 춤이었던 '쿵 춤'을 떠올렸고, '쿵 춤'처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해지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쿵'은 이름 때문에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학교에서는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진짜 이름이 뭐냐고 몇 번이고 물어보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쿵'은 이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을 법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거나 개명을 계획한 적은 없었다. 이름 그 자체만으로 신기해하며 입에 오르내릴 때는 여전히 쑥스럽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더 기억할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한단다(관련기사 : 내 이름은 '곽쿵', 잊지 못할 이름이죠).

왜 '학룡'이 아니고 '학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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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실제 곽쿵씨의 출입증. ⓒ 김학용


어디 '쿵'이라는 이름뿐이겠는가. 한 번쯤은 상대방의 이름을 듣고 난 후, 소리를 내 웃지는 못하고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리거나 재미있어 한 적이 있었으리라. 이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당혹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붙여진 이름으로 고통스럽게 산다면 그것은 더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쿵' 이상으로 이름 때문에 참으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나는 '학용'이라는 이름 때문에 학창시절 '학용품'이라는 별명을 늘 달고 살았다. 그래서 한때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부모라는 사람이 (나름으로 거창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내 평생을 좌우할 수는 이름을 나의 미래도 배려하지 않고 이따위로 이름을 지었나 하고 얼마나 한탄했는지 모른다.

배울 학(學), 용 룡(龍). 50여 년 전 비싼 돈을 들여 작명소에서 지었다는 이 고귀한 이름. 당시에는 한자의 뜻을 중요시하던 때라 뜻이 좋은 이름을 지으면 그 이름 뜻처럼 잘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지었던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이름의 뜻 들여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뜻보다는 어감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학창시절 다른 사람들의 입에 '학용'이 오르내릴 때마다 혹시라도 '학용품'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 경험은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하지만, 내 이름이 처음부터 '학용'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원래 불리던 이름은 한자 발음 그대로 '김학룡'이었다. 당연히 [김항뇽]으로 불렸다. 그런데 2학년이 올라가면서 담임교사의 쓸데없는 배려가 그만 내 인생을 바꾸고 만 것이다.

2학년 학기 초 담임은 판단력이 아직 흐린 9살의 나를 불렀다. 한자 이름 자체는 평범하지만, 발음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항뇽]으로 발음하기 힘들다며, [학용]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담임의 입맛대로 학적부의 이름을 [김학용]으로 바꿔버렸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나를 증명하는 모든 이름은 (아직도 익숙지 않은) '김학용'으로 표기되고 발음도 [김하굥]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나와 같은 똑같은 케이스를 밟은 또 하나의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2013년 4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윤석열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을 압수 수색을 하는 등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며 적극적으로 수사했다. 이어 2016년 12월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팀의 수사팀장, 2017년 5월 서울지검장의 이름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론은 물론 방송사마다 이름 표기나 발음이 천차만별이었다. 서울지검장에 오른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기사에서는 여전히 '윤석열'로 쓰거나 '윤석렬'로 쓴다. 한 술 더 떠 두개의 이름 모두를 한 기사에서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포털에서는 검색어를 '윤석열'이나 '윤석렬' 등 어떤 것을 입력해도, '윤석열'에 대한 인물 정보로 교정하여 안내한다.

'서결'이 맞을까 '성녈'이 맞을까

그렇다면 '윤석열'과 '윤석렬', 과연 어떤 이름이 맞는 표기일까? 표기는 둘 다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는 발음이다. 전자의 경우 [윤서결]로 발음되지만, 후자일때는[윤성녈]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립국어원의 의견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윤석열'과 같은 이름 사이에서는 'ㄴ' 첨가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연음하여 [윤서결]로 발음하는 것이 바르다고 답했다. 특히 '윤석열'에서 '열'의 한자가 '悅'이라 본음이 '열'이고, '석열'은 합성어가 아니므로 '[성녈]로 발음하지 않고 [서결]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털과 언론사의 인물 정보에 따르면 윤석열 검사장의 한자 이름 표기는 '尹錫悅'로 나온다. 결론적으로 '悅(기쁠 열)'이 들어갔기에 '윤석열'로 써야 하며 [윤서결]로 발음하는 게 맞는것이다.

이처럼 이름에 대한 발음은 정확성을 요구하며,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서울지검장은 이러한 발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그냥 [윤성녈]로 불러 달라고 했단다. 그러니 국어의 발음규칙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본인이 개의치 않으면 남의 이름을 두고 왈가왈부할 권리 따위는 또 없다.

하지만 발음이야 그가 원하는 대로 따른다 해도 이름만이라도 한자 그대로 '윤석열'로 제대로 표기해 주는 것, 그를 응원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과 더불어 자기만의 독특한 빛깔과 향기가 있다. 특이한 이름이라도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톡톡 튀는 특이한 내 이름이 오히려 나를 더 많이 기억해줄 수 있어서 좋다"는 '쿵'씨는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 자신이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졌더라도 더 자신 있게 행동하며 다가서는 건 어떨까. 나도 '학(鶴)'과 '용(龍)'이 아닌, 모두에게 쓸모 있는 '학용품'이 되어 많은 이에게 지혜로운 삶을 전하도록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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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숲 으뜸상을 수상한 김학용 시민기자.(2015.01.24) ⓒ 이희훈


덧붙이는 글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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