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때까지 말 안 하는 아이, 자폐성장애를 의심했지만

언어 혼란 겪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 "적기 언어치료가 제일 중요"

등록 2018.05.11 15:31수정 2018.05.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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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 수는 9만9186명으로 전체 초·중·고생의 1.68%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취학 아동 역시 11만6000명으로 다문화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혼 이주여성과 그 자녀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언어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외모와 함께 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결혼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건강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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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센터를 찾아 한국생활과 한국말을 배우는 다문화 가정 아내들 ⓒ 김혜원


올프렌즈센터 다문화팀의 마스코트와 같은 두 장난꾸러기 성준이와 경민이는 누가 뭐래도 제일 친한 친구다. 베트남 출신인 두 엄마가 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다보니 아이들도 형제처럼 서로를 찾고 의지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만들기 힘든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비슷한 환경을 가진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비단 아이들 뿐 아니라 엄마들 역시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나라 출신 친구는 큰 의지가 된다. 그리운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베트남 말로 실컷 수다를 떨고 나면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외로움과 서러움들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일 것이다.

요즘 경민(가명, 7)이 엄마 화(29)와 성준(가명, 6)이 엄마 란(32)은 아이들 언어 문제로 걱정이 많다. 아이들을 먼저 학교에 보낸 이웃 베트남 언니의 자녀들이 말을 잘 하지 못해 겪는 고충을 들어보니 아직 어리다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이다.

화 : "경민이 아직 못하는 게 많아요. 언어치료 해서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한국 아이들보다 잘 못해요. 방문 선생님이 오고 있는데 아직 읽기 어려워요. 학교 가기 전까지 많이 공부해야 해요."

란 : "성준이도 학습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요. 어린이집 다니면서 말은 많이 늘어서 잘 하는데 한글공부는 안 하려고 해요. 경민이 언어치료 한 거 보고 우리도 언어치료 신청했는데 1년이 넘어도 아직 연락이 없어요. 전화해 보면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그래요."


엄마보다 한국말이 유창한 경민이와 성준이.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상 언어만 잘 할 뿐이지 어려운 단어가 들어간 학습지나 동화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 쉬운 영어를 구사하긴 해도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거나 영어 학습지를 푸는 것이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엄마가 이중언어(베트남어와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인 경우, 아이들의 언어발달에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아이들의 언어발달을 걱정하는 중에도 엄마들은 베트남 말로 이야기한다.

아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국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엄마 역시 한국어가 서툴고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많지 않다보니 몇 마디 하다가 바로 베트남 말이 나와 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문화 가정 자녀의 경우 엄마로부터 한국어를 배울 수 없어 언어발달이 지연되는 일이 많다.

화 : "경민이는 어린이집에서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병원진단을 받아보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전혀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장애가 있으면 전문 선생님이 계신 장애아 통합어린이 집에 보내야 한다고 하셨어요. 장애가 뭔지 잘 모르지만 그땐 어디 큰 문제가 있나 병이 있는 건 아닌가 많이 걱정했어요."

경민이는 다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주변에서 남자 아이라 말이 늦는 모양이라고 했지만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부터는 달랐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혼자 외톨이로 지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폐성장애를 의심했다.

하지만 수년간 발달장애아들을 곁에서 지켜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엄마 손을 잡고 다문화센터에 온 경민이는 선생님들과 눈도 맞추고 상호 관계가 잘 이뤄졌다. 잘 놀고 잘 먹었다. 경민이의 언어치료를 도와준 김진욱 선생님 역시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언어발달이 늦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이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민이의 경우는 언어 혼란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던 거예요. 태어나면서 처음 들은 언어가 엄마의 베트남 말이었을 것이고 아빠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니 한국말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을 거예요. 한국에 살지만 한국어보다는 베트남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라다보니 언어 혼란이 온 것이죠.

머릿속에 언어들이 혼란스럽게 들어와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잘 배열해서 사용할지 그게 어려웠을 거예요. 경민이 같은 아이는 꾸준히 언어치료를 하면서 한국말을 훈련하면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요. 조금 늦는 것일 뿐 그냥 보통의 성장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니 아이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에요."

다문화 아이들이 말을 잘 못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구강 구조는 물론 혀와 성대 이상, 자폐성 장애 여부까지 검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신체적, 기능적 이상이기보다는 언어 혼란에서 오는 문제가 많다. 이는 언어치료나 꾸준한 말하기 훈련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

부모든 학교든 언어를 다문화 가정의 고질적 문제로 여겨 포기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민이는 언어치료를 받은 후 이전보다 발음과 어휘, 문장구성능력 등이 월등히 좋아졌다. 말은 잘하지만 학습지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성준이도 언어치료를 통해 개선이 가능하다고 하니 성준이 엄마 마음이 급해진다.

"성준이는 말을 잘하고 잘 알아듣는 것 같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사용하는 단어 수가 적어서 언어치료를 받아야한대요.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데 준이가 학습지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학습지 하는 거 싫어서 막 도망가고 울고 그래요. 언어치료는 신청하고 1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성준이의 언어발달이 늦은 데는 마음 짠한 이유도 있다. 태어난 지 삼 개월 만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 둘이 지내다보니 한국말을 접할 시간이 그만큼 적었다. 엄마도 남편과 사별하고 한국 사람과 가까이 지낼 기회가 적다보니 한국에 거주한 지 7년이 되어도 한국어가 거의 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의 한국어 습득에 엄마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겁 많고 잘 우는 아이였던 성준이는 한때 ADHD를 의심 받기도 했다. 말을 배우지 못하다보니 과잉행동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인데,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엄마나 그런 성준이의 사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유치원에 잘 적응하면서 말하기와 듣기 능력이 좋아졌고 오히려 엄마보다 말을 잘해서 주변을 놀라게 한다. 물론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것일 뿐 한국 엄마 아빠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비하면 어휘력과 문장력 발음, 이해력 등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언어치료는 어릴수록 효과가 있어요. 그러니 한시바삐 치료를 받아야 해요. 5세에 1년 걸릴 치료가 7세에는 2년, 10세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될 수 있거든요. 성준이의 경우 소득이 다른 가정에 비해 높아서 치료 순서가 뒤로 밀리는 것 같아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무료교육은 수급자, 한부모가정, 차상위계층, 장애인 자녀에게 먼저 혜택이 주어지는데 자녀들이 방문교육이나 생활서비스를 받고 있으면 중복지원이라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알고 있어요. 

경제적인 부담은 있겠지만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 6개월이면 가능할 치료가 시기를 놓치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거든요. 이대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서 바로 학습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경우 외모와 함께 학습부진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나 차별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만큼 언어치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김진욱 선생님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언어치료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라고 말한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로는 그 어떤 다른 교육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센터에서 무료 혜택을 받으려면 워낙 오래 기다려야 하고 사비로 치료를 하기에는 비용이 높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경민이도 자비로 언어치료를 했지만 1회 3만~4만 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자 가정 엄마인 성준이 엄마 란씨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을 한다. 아들과 둘이 살면서 생활비 벌기도 힘든데 치료비까지 부담하려니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선생님, 나는 경민이네처럼 돈 내고 언어치료 하기 힘들어요. 남편 없어요. 돈 없어요.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벌어야하는데 그러면 다문화센터 못 와요. 한국말 배우기 못해요. 귀화시험공부 못해요. 일하고 집에 오면 힘들어서 공부 못해요. 성준이 잘 키우고 싶은데 힘들어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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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이와 성준이의 즐거운 나들이 ⓒ 김혜원


모든 교육이 그렇지만 언어의 경우 어리면 어릴수록 교육의 효과는 뛰어나다. 언어치료의대상을 만 24개월에서 10세 이하로 정해 놓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학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 자녀 대부분이 경민이나 성준이 나이(취학전)에 적합한 언어교육을 받지 못해서 한글을 읽고, 쓰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자연히 학습부진아가 되기 쉽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취학 전 언어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되어 버리면 이미 그 적절한 시기가 지나 모든 게 늦어버리기 때문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 현장에서 보면 다문화가정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성 홍보성, 시혜성 지원과 혜택이 적지 않다. 이 같은 행사 비용을 줄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언어치료에 사용하면 어떨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무료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고 선생님 수도 늘여서 적기에 치료를 받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신도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서 말 못하는 내 아이를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 하지 못하는 전국 수많은 성준이 엄마들의 바람을 대신 전해본다.    

광주 올프렌즈센터는?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위치한 올프렌즈센터는 광주지역의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러시아, 벨라루스, 투르크메니스탄, 네팔 등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부모, 자녀를 위한 쉼터와 한글교실, 귀화시험 준비 등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 #이중언어 #다문화가정 자녀 언어치료 #올프렌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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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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