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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여론조작... 영화계에 가해진 상상이상의 작업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종합 발표... 국정원-영진위 상시 '채널'로 블랙리스트 실행

18.05.08 21:52최종업데이트18.05.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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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종합발표 기자회견이 8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다. ⓒ 성하훈


2013년 9월 개봉 이틀 만에 극장에서 내려진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중단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극장주가 나서 상영을 방해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또 권경원 감독의 <1991, 봄>(이전 제목 <강기훈 말고 강기타>, 정윤석 감독의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은 2016년 영진위의 독립영화 후반작업 지원심사에서 국정원을 통해 심사위원들에게 배제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영상위원회가 주관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젝트인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당시 위원장이 권칠인 감독이라는 것과 문제성 영화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2016년 국고지원에서 배제당했다. 이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국고가 아닌 영진위 지원사업으로 전환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8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조사활동을 통해 추가로 드러난 내용을 공개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방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영화계의 경우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부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유인택 대표(현 동양예술극장 대표)의 창업투자회사 캐피탈원은 영진위 다양성영화 투자조합 출자 사업에 지원했다가 예비심사 선정, 전체회의 부결, 3차심사 대표자 이름 삭제를 거친 끝에 선정됐다. 유 대표가 1988년부터 국정원 리스트에 기록돼 있었고 사찰 역시 박근혜 정부 시기까지 지속돼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맹수진 평론가는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82인에 올라 2009~2010년 영진위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 심사위원 배제, 한국정책방송원 프로그램 중도하차 등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이날 종합 발표를 끝으로 9개월간의 활동을 마감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이명박 정권이 천만 영화 <괴물>과 <공동경비구역 JSA> 등 흥행영화를 선동의 수단으로 단정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영진위 내부서 국정원과 상시 '채널' 형성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은 영진위였다. 영진위는 국가정보원 정보관과 상시 '채널'을 가동했음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이 채널을 통해 문제영화 또는 이른바 '건전·애국영화'에 대한 제작현황 등을 수시로 요구해 보고 받았다. 

청와대가 배제를 지시하면 이를 문체부가 영진위에 하달했다. 영진위는 국정원에 이를 보고하고 국정원으로부터 별도로 특정 영화나 영화인에 대한 직접 배제 지시를 받는 형태로 블랙리스트 실행이 이뤄졌다. 이 채널이 구체적으로 누군지에 대해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영진위 장기근속  직원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많은 영화들이 각종 지원사업에서 인위적으로 탈락했다. 2016년 4분기 독립영화 후반작업 기술지원 사업에서 탈락한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작>이 대표적인 경우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당시 심사위원의 휴대전화에 기록된 녹취내용도 공개했다.

"그리고 '밤섬'이라는 영화, 국가보안법 다룬 영화 있잖아?"
"막 시끄럽고 굉장한 김정은 막 이러는 영화."
"그런 게 좀 지원이 되면 우리가 지원 사업에 문제가 생기니까 알아서 좀 해 줘요."
"어, 힘은 좋아. 그런데 계속 흔드는데 그거 좀 안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다음에 '우리'라는 작품 있잖아? 장애인 영화. 걔는 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2015년 9월 16일 국정원 정보보고 내용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2015년 하반기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 사업도 국정원의 사전 검열과 문체부-영진위가 합작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당시 국정원은 심사 평가일 이전에 영화 <산다><그림자들의 섬><소년, 달리다>를 비판성향 작품으로 분류, 철저히 배제하도록 강력히 주문할 것이라고 정보보고했다. 지원배제할 작품은 접수표 등에 체크해왔는데, 접수표에 특별히 표기된 작품과 국정원이 지적하는 작품이 일치했다.

2016년 부산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개관 영화제 때도 영진위 측에 의해 다수 작품이 배제된 사실이 확인됐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레드헌트2 : 국가범죄>, 오멸 감독의 <이어도> 등 15편이 제외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외압 역시 일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2014년 부산영화제 당시 <다이빙벨> 상영을 반대했던 차세대문화연대가 <다이빙벨> 향후 대처 계획 등을 청와대 행정관에게 보고하는 등 협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에 따르면 차세대문화연대 관계자는 2014년 9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자제를 요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보내 확인을 거쳐 유포했다. 9월 29일에는 허아무개 행정관에게 다이빙벨 관련 동영상 자료를 보고한 후 확인을 거쳐 유포했다. 또 10월 6일에는 하태경 의원실 보좌관 및 부산지역 대학생들과 합류해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언론작업과 부산시민의 반대 시위, 일반인 유가족의 맞대응 기자회견을 추진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했다. 

허 행정관은 이듬해 6월 차세대문화인연대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우리 수석(당시 박준우 정무수석)께서 <다이빙벨> 상영 논쟁 당시 차세대문화인연대를 보면서 저 단체를 어떻게든 도우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언론작업'은 문체부와 영진위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이에 따라 <뉴데일리>와 <미디어펜> 등 극우성향으로 평가받는 매체들에 <다이빙벨> 상영 비판 기사들이 나가기도 했다.

이듬해 6월 부산영화제 지원금 삭감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전을 도모했다. 당시 영진위는 영진위 직원이 작성한 기고문 초안을 언론 기고자에게 이메일로 송부한 후 문체부에 보냈으며, 문체부는 다시 수정본을 영진위에 전달했다. 이 글은 일간지에 실렸다. 2015년 10월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개편에 대한 영진위원의 기고문도 이런 과정을 거쳐 게재됐다. 문체부와 영진위가 여론조작에도 적극 나섰던 것이다.

심재명·김태용·이미연 영상자료원 이사 배제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 ⓒ 성하훈


영화진흥위원회 외에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도 블랙리스트 실행에 일부 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경우 김철민 감독의 <불안한 외출> 상영을 방해했다. 2014년 김기춘 비서실장이 문제 영화로 낙인찍은 후 영등위가 부당하게 사후관리위원회를 통해 제작사를 고발한 것이다. 2011년 김곡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영등위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를 상영한 독립영화관은 영진위로부터 지원중단의 보복을 당해야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선임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영화인이 추천되자 청와대가 문체부 관계자들을 징계하기도 했다. 영상자료원은 문체부의 상영 배제 지시를 따르지 않은 실무자를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2015년 영상자료원 이사 선임 과정에서 심재명 명필름 대표와 김태용 감독, 이미연 감독(현 영등위원장)이 추천됐으나 블랙리스트 영화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됐고, 담당 공무원들이 징계를 받았다.

조사위 발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 이사 후보 중에는 순천향대 변재란 교수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변 교수는 당시 "영상자료원에서 서류를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며 이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해서 어디서 근무하는지 등을 물어왔고, 영상자료원 쪽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또한 2016년 1월 문체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위로공단>을 상영한 직원에 대한 인사조치도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승진을 시킨 케이스라고 판단했다. 류재림 전 영상자료원 원장은 "보복성 인사가 절대 아니었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히고 있으나, 조사위 관계자는 '모든 자료를 종합해서 판단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검열, 통제, 감시, 배제 등이 작용한 블랙리스트 유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 논란을 일으켰던 독립영화관 및 영상미디어센터 공모사업 역시 배제와 사찰이라고 확인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조희문 위원장이 심사위원들에게 연락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었다"며 "부정 심사는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공식적으로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5월 광주항쟁을 다룬 < 26년> 제작방해 및 이명박 정권의 세무조사 의혹에 대해서는 위원회의 조사 한계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 26년> 제작자였던 청어람 최용배 대표가 2014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심사위원에서 배제된 것에 대해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에 최용배 대표의 이름이 기재돼 있고, 한국콘텐츠진흥원 팀장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블랙리스트 조사위는 제도개선 및 후속조치도 권고했다. 영진위에 대해서는 위원장 호선제를 위한 법개정, 위원의 단체 추천 의무화, 진흥을 뺀 '영화위원회'로 명칭변경, 개방형 직위제 실시, 모태펀드 영화계정 직접관리, 위원회 정책역량 강화 등을 주문했다.

블랙리스트 영진위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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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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