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온몸에 기름 끼얹고 불을... 48년 전 그에게 바치는 노래

서승의 <옥중 19년>에 바치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18.05.10 16:12최종업데이트18.05.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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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만나서 군사 대결 종식을 논의하다니, 꿈만 같다. 남북은 적대 관계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안심할 수 없지만, 교류와 왕래가 확대되고 평화 공존의 기틀이 마련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하고, 이를 위해 작은 힘들을 모아야 할 때다.   

얼마나 긴 질곡과 통한의 세월이었던가. MBC PD 시절 취재했던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선생이 떠오른다. 양평의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입대했고, 포로로 잡혀서 간첩 누명을 쓴 채 4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5년 광복절 풀려난 그가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분단된 이 나라의 뼈아픈 풍경이었다.

구순을 넘겨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는 45년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선명이냐? 내 마음속에는 네가 보여. 어미 말을 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살아서 아들을 보겠다는 꿈을 이룬 어머니는 그해 말 세상을 떠나셨다. 김 선생은 남은 가족들과 화해하지 못한 채 2000년 9월 북으로 가셨다.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을 통해 그가 북에서 가정을 이뤘다는 소식을 접했을 뿐, 근황을 알지 못한다. 살아 계시면 올해 94세가 되는데, 남북이 이렇게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보다 기뻐하실 것이다.

뼈아픈 분단 현대사, 서승 선생의 <옥중 19년>

분단의 십자가를 짊어진 분이 어디 김선명 선생뿐이랴. 분단 체제를 이용하여 기득권을 누린 세력은 국가보안법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통제하고, 전향공작으로 체제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다. 분단 체제를 살아온 그 누구도 말과 생각과 행동을 제약한 이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승 선생의 <옥중 19년>은 바로 그 현대사의 기록이다. 그가 겪은 수난을 짧은 지면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승 선생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재일동포의 설움을 뒤로하고 1971년 조국을 찾은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공항에서 체포됐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 끝에 '재일동포 간첩'으로 조작됐다. 그는 자신을 고문하며 동료 학생들의 이름을 대라는 보안사 요원에게 굴복하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와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 사이에서 단말마적 갈등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순수하고 정직한 젊은이의 행동이었지만 그 순간의 고통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내게 일어난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초현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고통에 가득 찼던 삶, 그래도 아름다웠기에 

1990년 석방된 뒤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화상으로 손가락이 녹아 붙어 있었기 때문에 독수리 타법으로 한 글자씩 자판을 두드려야 했다. 한국 어법과 일본 어법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바른 문장을 쓰는 게 쉽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995년 <옥중 19년> 일본어판이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1999년에 나왔지만 아쉬운 점이 있어서 이번에 (재)진실의힘에서 내용을 보완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서 새롭게 펴낸 것이다. 19년 동안 그가 감옥에서 겪은 일들은 우리의 분단 현대사, 그 자체다. 화상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분단시대를 살아온 우리 자신의 초상화다. 서승 선생을 만나는 사람들은 상처 입은 그의 얼굴 속에 빛나는 정직하고 소탈한 품성을 발견하게 된다.

'옥중 19년'을 쓴 서승 선생 ⓒ 참여사회


4월 23일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재)진실의힘 송소연 상임이사의 사회로 옥중 동료 백현국, 자원활동가 전예아, 소설가 이성아, 서울시장 박원순 등 여러 사람들이 책을 한 구절씩 낭독하고 소감을 얘기했다. 심리치유가 이명수 선생과 서승 선생의 대담은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전인권 선생의 노래 <걷고 또 걷고>는 촛불광장에서 울려 퍼질 때와는 다르게 울렸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새벽 그대 떠난 길 지나 
아침은 다시 밝아오겠지, 푸르른 새벽 길 
꽃이 피고 또 지고. 산 위로 돌멩이길 지나 
아픔은 다시 잊혀지겠지, 끝없는 생각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 모두 어쩌면 축복일지 몰라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멀리 반짝이는 별 지나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 모두 어쩌면 축복일지 몰라' 이 대목은 서승 선생과 참석자 모두에게 위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상처지만, 그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긍정해 냈기에 서승 선생은 스스로 축복이 되었을 것이다. 말없이 분단의 십자가를 진 채 걷고 또 걷다 보니 평화와 통일의 전망이 열렸을 것이다.

전인권 선생의 노래를 들으며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가 떠올랐다.

"환희여, 신성한 불꽃이여, 엘리지움의 딸이여! 우리는 성스런 불에 취해 네 영토를 밟는구나. 너의 마술은 인습의 칼날이 갈라놓은 모든 것을 다시 묶어 주고, 부드러운 네 날개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네."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환희의 송가> 3악장 아다지오
지휘 다니엘 바렌보임 /연주 서동시집 관현악단(West-Eastern Divan Orchestra)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Beethoven Symphony 9 3rd Barenboim을 검색하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채훈님은 클래식 칼럼니스트입니다, MBC 해직PD이며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습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서승 양심수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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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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