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문제, 독일에선 운전면허시험에나 나온다"

[독일 베를린 현지 인터뷰 ③]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말하는 독일의 교육

등록 2018.05.14 17:38수정 2018.05.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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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시험제도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면 좋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답을 적을 수 있는 평가 방식으로 교육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객관식(선택형)을 유지하더라도 논술형 시험을 곁들여 보충하면 되겠지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전 뮌스터대 교수(74)는 "4차산업혁명이 인공지능의 시대라며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처럼 인식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인공지능을 어떤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반성적 성찰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대담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에는 관성 따라 움직이는 교육이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사나 교육행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편할지라도 새로운 시대를 위해 발상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수업 및 평가방식을 크게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교육에선 '사고하는 과정',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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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선 수학도 서술 논술형으로 공부"송두율 교수는 “독일에서는 수학도 서술 논술형으로 문제를 출제해 답안 과정을 글로 쓰게 한다”면서 “교사는 어떻게 해서 이 답이 나왔는지 답안을 이끌어낸 과정을 살펴본다”고 밝혔다. ⓒ 송두율


송 교수는 "독일 교육에서는 주관적 사고를 키우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훈련을 철저하게 시킨다"면서 "객관식 시험문항이 주로 자동차 운전면허시험에나 있는 독일에 비해 한국은 아직도 (내신은 물론 대학입시에서) 암기식, 주입식, 객관식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다른 과목은 물론이고 수학 문제조차 서술형으로 출제해 답안 과정을 글로 쓰게 한다"면서 "교사는 답안을 이끌어낸 과정을 살펴보고 점수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독일 교육 자체가 '사고하는 과정',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식으로 공부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지요. 독서와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종합적으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송두율 교수는 "객관식 시험방식이 왜 문제가 되냐"는 질문에 "그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객관식 평가방식에서는 제시된 것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하니 사고력을 키우는 데 역부족"이라면서 "그런 교육 속에서는 사고가 고착되어 창의력을 키우기도 어렵고,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0과 1 사이에는 많은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아니면 저것을 고르라고 전제하는 식의 교육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넓히는 훈련을 해야겠지요.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평가방식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4월 23일(현지 시간) 송두율 교수의 독일 베를린 자택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했다. '남북정상회담 전망', '독일 교민사회의 민주화운동'을 소개한 1차, 2차 인터뷰 기사에 이어 '독일 교육의 특징'을 중심으로 3차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 씨가 함께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객관식 시험에선 과정을 소홀하게 여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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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 부부"베를린 자택 거실에서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 씨. ⓒ 신향식


- 성장기에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요?
"초등학교 때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삼국지', '수호지' 등과 함께 열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여름방학 때 자주 들렀던 제주도와 겹쳐지면서 유토피아에 관한 상상력을 발동시켜준 책이지요. 사춘기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답니다."

-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진로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문학과 철학 책을 탐독했고 이공계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다 국사를 가르쳤던 송찬식 선생을 만났는데 물리학이나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나에게 '민족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철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후에 국민대 교수로 한국화폐사연구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불행하게도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그 뒤로 나는 점차 철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어 결국 서울대 철학과를 택했습니다."

- 독일 학생들은 언제부터 논술을 시작하나요?
"(주마다 다르긴 합니다만) 초등학교 3학년에 논술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단답형 답안이 아니라 자기가 사고해서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러니까 토론 문화에 익숙해지게 되지요. 그런 교육 제도는 권장할만 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암기 방식에 집중된 게 아닌지…."

- 교사들이 첨삭을 제대로 해 줍니까?
"논술 답안지의 절반을 접게 합니다. 절반만 답을 쓰게 한 뒤 그 옆에 교사나 교수가 의견을 달게 합니다. 첨삭을 해 준다는 말입니다. 고교나 대학 모두 그렇게 합니다."

- 한국에서 유학을 온 일부 학생들은 논술형 시험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부는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국에서 객관식 시험문제에 길들여지다보니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겠지요. 그 때문인지 그들은 독일 대학 공부에 힘들어 하곤 합니다."

"미래세대 위해 발상전환하여 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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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 복귀" 보도독일 뮌스터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베스트펠리셰 나흐리흐텐>이 2004년 11월 6일자에 송두율 교수의 뮌스터대학 복귀를 크게 보도했다.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9개월간 수감되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신향식


- 제주, 충남, 서울 등 일부 교육청에서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를 공교육에 시범학교 식으로라도 도입하려고 추진 및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만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국제 바칼로레아가 순전히 '국제적' 수준만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물론 문제지요. 그래서 시기상조니 교사 준비 정도가 안 되었느니 하면서 제동을 거는 여론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반 수준에서는 어느 나라든 간에 학생들이 충분히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미 성년이거든요."

-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하면 한국 청소년들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와 함께 지구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문화적 전통이 다르고 사회정치적 현실이 다르기에 토론 및 논술을 하는 주제도 다양하겠지요. 우리 문제를 지구적 관점에서 돌이켜보는 '이주민'이나 '평화' 또는 '자본주의의 미래' 등 주제는 많을 겁니다. 따라서 교육담당기관이나 교사들도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미래 세대를 위해 발상 전환의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 독일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뜨겁겠지요?
"독일에서는 학부모 대표를 선거로 뽑습니다.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직원 회의에 학부모 대표도 참여합니다. 담임 한 명이 초등학교 때 처음 3년간 한 학급을 담당하고, 그 후에는 과목별로도 담당 교사들이 분담하여 맡습니다. 담임이 바뀔 때 고마웠다고 책이나 꽃다발이나 와인을 한 병 정도 선사합니다. 그것도 학부모 대표가 합니다. 돈 봉투는 상상할 수도 없지요."(부인 정정희 씨)

- 독일 대학(인문과학, 사회과학)의 수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우리 때만 해도 교수가 강의 원고를 읽어주는 방식이 있었지요."

- 요즘엔 세미나 수업 위주라고 들었습니다만.
"68년 학생운동을 계기로 권위적인, 일방향적인 수업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세미나 식으로 진행합니다. 물론 수강생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 세미나 수업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시지요.
"다음 학기에 무엇을 수업한다고 강의록에 지향하는 바를 안내해 줍니다. 학기 시작 전에 참고문헌을 제시하여 미리 자료를 찾아보게 합니다."

- 세미나 수업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겠지요?
"고급과 초급 세미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콜로키움이라는 방식의 세미나도 있습니다. 주로 석박사 논문의 주제를 발표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토론하는 형식입니다."

"학생들 토론 때 교수는 일단 지켜만 보다가 어려움 생기면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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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과 함께"2006년 9월 바티칸에서 장남(준), 차남(린)과 함께. 오른쪽부터 준, 린, 송교수. ⓒ 송두율


- 어떻게 진행하나요?
"세미나 첫 시간에 주제를 알려줍니다. 이번에는 10주 과정으로 어떤 주제로 한다고 공지하면, 희망 학생들이 신청을 합니다. 20명이 넘어가면 두세 명이 함께 한 주제로 발표를 합니다. 분량은 15~20매입니다. 발표자가 중요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나머지 시간에 집중 토론을 합니다."

- 교수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교수는 일단 앉아 있습니다. 발표자와 학생들이 토론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면 교수가 개입을 합니다. 맨 마지막에 토론을 평가해 주지요. '이런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라' 하면서 종합 평가를 해 줍니다. 그런데 유럽의 대학에도 미국식 평가가 도입되어 예전보다는 상당히 도식적이고 건조해졌습니다."

-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도식적이고 건조해졌다'면.
"유럽연합에서는 1999년 6월부터 대학교육과정을 통일했습니다. 이것을 '볼로니야 과정(Bologna Process)'이라고 합니다. 몇 년 간 적응기를 거쳐 실시한 결과,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대학교육이 미국화된 걸로 보시면 됩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독일은 예전에 학부 과정이 (학생마다 다르지만) 6~7년이나 되어 너무들 힘들어 했습니다. 10년 가까이 공부해서 학부를 마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강좌마다 수강료를 납부했는데 70년대 초부터는 모두 무상이 되었지요."

- 그런 상황이었군요.
"그러던 중 이탈리아 볼로니야에서 유럽연합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서 대학 과정을 통일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것이 '볼로니야 과정'입니다. 전에는 학사 석사가 하나로 통합되어 오랫동안 공부해야 하다보니 비효율적이었지요. 또 학점이란 개념도 없었답니다. 지금은 학사와 석사가 별도로 있고 두 과정을 합해서 5~6년 정도지만 좀 더 오래 걸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학사만 마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 수도 있게 만든 겁니다."

-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나 보군요.
"맞습니다. 길고긴 대학 교육과정이 국가 재정적으로도 부담되었지요. 전문인력이 너무 늦게 취업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미국식으로 빨리 공부시키고 빨리 사회에 진출하게 한 겁니다."

- 그런 변화가 수업 방식에 영향을 끼쳤나 봅니다.
"변화 과정에서 세미나 수업이 전보다 피상적으로 흘러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진지하게 세미나를 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한 주제를 놓고 깊이 있게 토론하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개혁 이전에는 학생이 한 학기에 세미나를 2개만 참가해도 무척 부담이 되었습니다. 논문을 그 만큼 깊이 있게 써야 했거든요. 하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 세미나 수업에 또 어떤 경향이 있나요?
"요즘에는 파워 포인트를 자주 씁니다. 대체로 발표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뒤 도표나 사진도 첨부합니다. 시청각적 의사소통에 좋은 점도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떨어집니다."

- 부작용이 있군요.
"자신의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정보를 조합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발표방식은 사회과학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철학에는 조금 부적합합니다. 니체의 사상을 설명한다고 해 봅시다. 인용부호 안에 원문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정도로 흘러갑니다. 시청각적 효과를 노리다보니 문장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데는 방해가 됩니다."

"졸업논문 표절 방지 위해 전담 교원들이 철저하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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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선 수학도 논술형 출제"송두율 교수는 “독일에서는 수학도 서술형으로 문제를 출제해 답안 과정을 글로 쓰게 한다”면서 “교사는 어떻게 해서 이 답이 나왔는지 답안을 이끌어낸 과정을 살펴본다”고 밝혔다. " ⓒ 신향식


- 표절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독한다고 들었습니다.
"표절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냅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를 짜깁기하여 과제를 제출하는 게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논문의 표절 여부를 검사하는 전담 교원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책을 읽고 인용해 가면서 논문을 쓰는 수밖에 없었는데 요새는 워낙 정보가 많다보니 부작용이 생긴 거지요. 자기 머리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료를 짜집기하고 적당하게 각자의 의견을 섞어서 쓰곤 하는 겁니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교육은 아이들이 알아서 하게 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했지 공부하라는 말은 안 했습니다. 둘 다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를 기초로 한 '김나지움' 출신입니다. 큰 아이는 화학에 관심 있어서 결국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둘째는 음악에 흥미를 두고 콩쿨에도 참여했는데 후에 음악(오보에 연주)은 그냥 취미로 하고 의대로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소아과 전문의로서 소아결핵과 에이즈를 전문으로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부인 정정희 씨)

- 자녀 교육에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요?
"외국에서 모국어 교육을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을 잘 못하니 서울서 온 손님들에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소리도 가끔 들었지요. 집에서는 우리말만 썼습니다. 주말에는 한글학교에 데려갔지만 사춘기가 되니까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한국을 그리워하더군요."(부인 정정희 씨)

"두 아들이 21세기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 역할하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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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송두율 교수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답을 적을 수 있는 평가방식으로 교육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면서 "객관식 오지선다형을 유지하더라도 논술형 시험을 곁들여 보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송두율 교수가 베를린 자택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모습. ⓒ 송두율


- 자녀들도 마음고생을 했겠군요.
"한국에도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들에게 어떤 사고가 생길까봐 불안하더군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 땅을 밟아보게 하고 싶었지만…. 그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독재정권과 장기 투쟁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여러 모로 피곤했거든요. 소모되는 삶을 산 거지요. 어떻게 그 기간을 견뎠는지 가끔 제 자신이 놀라게 됩니다. 그런 조건에서도 두 아들이 잘 성장해서 부모로서 기쁩니다."

- 자녀들이 어떻게 발전하면 좋겠습니까?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세계시민으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된다고 봅니다. 큰 아이는 독일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둘째는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다보니 아직은 미혼입니다. 다들 여행을 다녀오면 김치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큰 아들은 다큐 영화 '경계도시'(2002, 감독 홍형숙)'을 촬영할 때 제작자에게 부탁하더군요. 이렇게 말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단국가는 지구상에 이제 한반도밖에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아주 귀중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부디 한국 젊은이들에게 우리 문제를 알려 주고, 젊은 세대가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모가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생활만 하기에도 어려운데 왜 그렇게 많은 정력을 쏟으면서 한반도 문제를 고민하는지 절실하게 느낍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로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부인 정정희 씨)

- 부친께서 한글텔레타이프를 개발하신 사연도 들려 주시지요.
"아버지께서는 물리학자셨지만 발명가시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한 간호사가 한국말이 서툰 아버지께 한글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이 때 아버지께서는 한글의 과학적 구조를 발견하시고 이를 기계화해야겠다고 구상하셨습니다. 집중적으로 한글 타자기 개발에 몰두하신 계기가 되었지요. 마침내 해방 직후에 열린 제 1회 전국과학전람회에 그것을 출품하셨지요. 아버지께서는 그 후 수동식 타자기보다는 텔레타이프라이터를 개발해 정보 통신 시대에 맞는 한글의 기계화에 주력하셨답니다. 마침내 1958년에 개발에 성공하셨습니다."

- 그 뒤에 어떻게 이어졌나요?
"이후의 지속적인 연구는 국내에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오키텐키'의 협력으로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똑같이 작동하는 두벌식 전신 타자기를 발명하신 것입니다. 2007년 한국전기통신학회에서 이것이 한국에서 처음 개발되고 사용된 컴퓨터라고 발표하였지요. 1958년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이 타자기의 발명은 한글 문자가 세계를 향하는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평을 실었지요. 1960년에 '3.1문화상'을, 1966년에는 '대한민국 발명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부친(송계범 교수)께서 한글텔레타이프라이터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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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텔레타이프라이터"송두율 교수는 부친이 개발한 한글 텔레타이프라이터에 관해 "발음나는 대로 타자를 하면 모아쓰기(사진 윗부분)도 가능한 문서작성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신향식


- 부친의 한글텔레타이프라이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당시만 해도 우리 말을 서구 언어처럼 입력하는 대로 출력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아쓰지 못하고 풀어쓰기(사진 아래 부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 통념을 깨고 지금 우리가 한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발음나는 대로 타자를 하면 모아쓰기(사진 윗부분)도 가능한 텔레타이프라이터를 개발한 겁니다. 이는 비서구 언어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우리말의 우수성을 현대정보통신기술로 세계에 입증한 발명이었지요."

- 부인께서 도서관 사서((司書)로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학위논문을 쓸 때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 때 도서관에서 실습하는 한국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학위 논문을 마치고 송년회에서 이 여성과 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지요. 아내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도서관학과 독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우리는 1973년 12월 뮌스터에서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뮌스터 대학 도서관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전문사서로 오래 근무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임했지요."

- 독일에선 사서가 무척 전문적인 직종이라면서요?
"과거 유럽에서 사서는 귀족의 자제가 할 수 있는 특수 전문직이었습니다.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들도 사서 출신이 많습니다. 그저 책을 대출해 주는 직업 정도로 생각하는 사례가 많은데 독일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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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기사를 써옴.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백석대, 인덕대 등서 강의함.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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