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같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평가액을 믿으라고?

안진회계법인의 평가액 신뢰 잃으면 삼성의 논리 무너져

등록 2018.05.11 11:19수정 2018.05.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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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7일 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첫 일정인 감리위원회가 오는 17일 열린다. 2018.5.7 ⓒ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국내 회계학 권위자들을 여럿 동원해 자신들의 회계처리가 적법했다는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했다는 <한겨레> 보도가 있었다. 그 회계학 권위자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또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전제로, 이럴 경우에는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장부를 작성하는 게 옳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평가는 2015년 8월에 안진회계법인이 수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합 삼성물산의 장부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공정가치로 평가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보도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로부터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세부적인 (기업가치) 분석을 수행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가치평가를 근거로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는 것으로, 회계학 권위자들의 전제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장이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는 19.3조 원으로 평가했는데

그런데, 안진회계법인의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안진회계법인의 평가가 의뢰인의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왔다갔다했다는 사실이다. 외부평가기관의 가치평가 결과를 신뢰하는 이유는 그 평가기관의 결과가 일관성, 객관성, 공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평가기관의 평가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모든 판단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회계법인의 가치평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상장회사였기 때문에, 합병비율이 주가에 따라 산정되었다. 규정에 근거하여 주가에 따라 산정되었지만, 이 비율이 경제적 실질의 관점에서 타당한지는 별도로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주가는 매일 변하기 때문에 합병 결정을 오늘 하면 그 비율이 1대0.35지만, 1주일 전에 했으면 1대0.40이고, 1개월 전에 했으면 1대0.45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오늘 합병을 결정했어야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외부평가기관의 가치평가를 의뢰하게 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도 외부평가기관인 삼정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에 가치평가를 의뢰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지만, 국민연금 자료에 항목별 수치가 나와 있다.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에 나온 제일모직의 가치평가 결과는 아래와 [표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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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제일모직 가치평가 비교 (자료 :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 국민연금) ⓒ 홍순탁


19.3조 원은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평가액

이 자료를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안진회계법인은 8.9조원으로, 삼정회계법인은 8.6조원으로 평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고평가를 전제로 안진회계법인은 제일모직의 주당 적정가치를 15만8090원으로 계산했고, 결과적으로 적정 합병비율이 1대0.38라고 제시했다. 삼정회계법인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고평가를 전제로 제일모직의 주당 가치를 14만6971원으로 계산했고, 적정 합병비율이 1대0.41라고 제시했다.

두 회계법인의 평가결과인 1대0.38과 1대0.41은 주가에 따라 산정된 1대0.35라는 비율이 경제적 실질의 관점에서도 수용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의 경우 1대0.46이라는 평가결과를 도출했는데, 그동안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밝혀졌듯이 국민연금은 이런 가치평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국민연금은 권위를 가진 두 회계법인의 평가결과에 기대어 1대0.46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안진회계법인의 1대0.38, 삼정회계법인의 1대0.41이라는 평가결과가 도출된 데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각각 8.9조 원, 8.6조 원으로 평가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제일모직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지분율은 46.3%였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총 기업가치는 각각 19.3조 원, 18.5조 원으로 평가한 것이 된다. 안진회계법인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19.3조 원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면 1대0.38라는 비율은 도출되지 않았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주가에 따라 산정된 1대0.35라는 합병비율은 정당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3개월 후에 평가결과는 6.8조 원으로 급변동

한편, 안진회계법인은 약 3개월의 시차를 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다시 평가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보도에 나와 있듯이 통합 삼성물산의 결산을 위해 다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평가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전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핵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평가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 평가결과가 삼성바이오로직스 6.8조 원, 삼성바이오에피스 4.8조 원이었다.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먼저, 동일한 회계법인이 약 3개월의 시차를 두고 평가했는데 한번은 19.3조 원, 또 한번은 6.8조 원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평가결과가 고무줄처럼 춤을 춘다. 두 번째 문제는 6.8조 원이라는 평가결과가 구 삼성물산을 헐값에 합병했다는 염가매수차익 2조 원을 가리는 데 절묘한 숫자였다는 점이다.(관련기사: 이재용 경영 승계, 바이오로직스 안에 있다 )

두 평가결과는 고무줄처럼 변할 뿐만 아니라, 삼성의 필요에 정확히 들어맞는 숫자였다. 합병을 정당화할 때에는 그 정당화에 꼭 필요한 숫자였고, 합병 결산을 할 때에는 구 삼성물산을 헐값에 합병했다는 것을 가리는 데 꼭 필요한 숫자였다. 이러한 평가결과를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2017년 이후의 주가상승을 근거로 그 당시 회계법인의 평가를 옹호하는 주장도 온당하지 못하다. 2~3년 후에 있을 바이오 대세 상승기를 2015년에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2015년에는 그 시점의 주가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했어야 했다. 동종업종인 셀트리온이나 외국의 코헤르스의 그 당시 주가를 기준으로 합리적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한 ISS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전체 기업가치 평가액은 3~4조 원 수준이었다. 

삼성에 요구에 맞춰 평가한 회계법인에 대한 조치 필요해

삼성물산 합병 의혹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이렇게 연결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평가가 신뢰를 잃으면 삼성의 모든 논리는 무너진다. 17일에 있을 감리위원회 결과와 그 후에 있을 증권선물위원회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또한, 삼성의 요구에 맞춰 고무줄같 은 평가결과를 내준 안진회계법인 등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가 취해지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제일모직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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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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