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올 때마다 이곳이 부럽다

|새얼문화재단 역사기행| 남도에서 노닐다 (상편)

등록 2018.05.14 08:48수정 2018.05.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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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다. 직업이 언론사 기자지만 기행문이라곤 써본 적이 없다. 쓴 글이라고 해봐야 하루 소비하면 그만인 '뉴스'가 전부인 내게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23회 새얼역사기행 탐방' 기행문 숙제가 주어졌다.

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행 실무 책임자인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당신 같은 기자가 쓰는 기행문이 더 기대된다"며 넉살좋은 으름장을 놓는다.

기행 일정은 4월 26~28일 사흘간 주로 광주와 순천, 화순지역의 박물관과 생태공원, 사찰, 명승지를 탐방하는 것으로 짜였다. 27일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후배 기자를 이 기행에 보내자고 했으나, 후배 기자들은 주말에 이사와 집안 잔치로 바빠서 안 된다 해, 결국 26일 밤늦게 짐을 쌌다.

새얼역사기행 새얼문화재단이 주관한 23회 새얼역사기행 남도기행 광주박물관 입구. ⓒ 김갑봉


민주와 인권의 도시에 깃든 문화예술의 혼

26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길을 나서 기행 출발 장소인 인하대병원 근처에 도착하니 6시 반이다. 버스는 정확히 7시에 출발했다. '우등고속'급 28인승 버스라 편하겠다는 생각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버스에서 3일 동안 같이 지낼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첫 행선지는 국립 광주박물관. 광주까진 넉넉잡아 4시간 반인 긴 여정이다. 언젠간 가리라 맘먹고 있는 일본 규슈와 오스카, 나라, 교토 기행 공부를 위해 읽고 있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2권을 꺼내 들었다.

일본이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운 8~9세기의 걸작 동대사(도다이지)와 동대사의 남대문, 불공견삭관음, 대불, 청동 동릉, 그리고 이 동대사 창건 주역 중 한 사람인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가 선진문화를 전파한 이들)의 후손 행기 스님에 관한 얘기를 읽다가 잠들었다.

깨어보니 어느새 광주다. 북구 한정식집 '다연'에서 점심을 먹는데 매생이국이 보드랍다. 요즘 남도 음식도 달달한 맛이 강해졌다는 소리를 듣지만, 모처럼 입맛이 돈다. 보리굴비로 나온 생선을 두고 부세일까, 진짜 굴비일까 논하다가 어느새 다 먹었다.

식사 후 광주박물관으로 향했다. 광주는 민주, 평화, 인권, 통일의 도시다. 1980년 5.18 민주항쟁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항일 광주학생운동이 타올랐고, 4.19혁명과 6.10민주항쟁에서 비켜서지 않았다. 광주에 오면 옛 전남도청과 망월동묘지, 5.18기념관을 방문했어도 국립 광주박물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박물관은 광주와 전남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감할 수 박물관으로 1978년 12월 개관했다. 국립 박물관으론 서울, 경주, 부여, 공주에 이어 다섯 번째다. 선사실, 고대실, 고려도자실, 조선도자실, 불교미술실, 서화실 등 상설 전시실과 야외 전시실로 꾸며졌다.

입구에 들어서자 반듯하며 든든하게 생긴 석등이 반긴다. 석등을 받치고 있는 두 사자의 다리에 힘이 넘친다. 국보 103호로 지정돼있는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보물이라 할 수 있는데, 날렵하면서도 든든하게 잘빠졌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ㅇ 국립 광주박물관 내실에 들어서면 중흥산성 쌍사자석등이 가장 먼저 반긴다. 석등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의 다리가 육감적이고 든든하다. ⓒ 김갑봉


빗살무늬토기는 구웠을까, 안 구웠을까

광주박물관을 비롯한 국내 대부분의 박물관에 가장 많이 전시돼있는 유물은 도자기다. 신석기시대 그릇부터 조선 백자까지, 가장 많이 전시돼있다. 고려 청자와 조선 분청사기와 백자만 예술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로 알려진 도기의 경우 많이 보았고 익숙한 만큼 빠르게 지나치기 일쑤다. 도공이 들으면 서운할 일이다.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도자기라고 하는데, 도기는 도토(진흙), 자기는 자토(고령토)를 원료로 한다. 우리말로 질그릇인 도기는 1200도를 못 견디기에 1100도 안팎에서 굽고, 자기는 1300도 이상에서 굽는다. 도기에 유약을 바르면 옹기다. 고구려 도기 형태가 오늘날 옹기와 거의 유사하다. 자기는 고령 청자와 백자가 해당한다.

그렇다면 신석기시대 대표적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는 토기일까 도기일까. 구웠을까 안 구웠을까. 같이 관람하던 이창호 '꿈베이커리' 대표와 '구웠을까 안 구웠을까'를 두고 한참을 얘기했다. 굽지 않으면 물과 바람, 외압의 풍화작용을 이길 수 없다는 데 동의하고 '구웠다'고 결론 냈다.

이 이야기는 그날 저녁식사 후 호텔까지 이어진 뒤풀이에서 계속됐다. 구웠다는 가마터가 없으니 인증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가마터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구덩이를 파고 땔감을 넣어 구운 것으로 국내 학계는 보고 있다.

중국엔 도기와 자기만 있을 뿐 토기라는 말이 없다. 토기는 미국이 600~700도에서 구운 도기를 'earthenware'라고 한 것을 일본이 토기로 번역했고, 이를 한국이 그대로 수용한 데서 비롯한다(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윤용이, 2015). 일본에 도자기와 철기문화를 전해준 이들이 '도래인'인데 역설적이다.

광주박물관에는 청동기시대를 상징하는 비파형 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이 온전하게 보전 돼있다. 화순지방에서 출토된 유물로 모두 국보다. 교과서에서 익히 본 모습들이다.

박물관 도자실에 이르면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한반도는 일본에 벼와 철기, 문자만 전한 게 아니다. 임진왜란 조선을 침범한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제일 많이 잡아간 장인이 바로 도공이다. 호남에 있었던 가마만큼이나 숱한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다.

조선 도공은 일본에 가마를 짓고 고령토를 발굴해 백자를 전파했다. 당시 일본은 자기가 발달하지 않아 나무를 깎아 다완이나 물통으로 사용할 때였다. 이젠 일본의 도자기가 더 세계적이다. 일본 큐슈의 조선인 도공 심수관 집안은 15대째 조선 도공의 명맥을 잇고 있다.

소치 허련 국립 광주박물관 내 서화실에 전시 돼 있는 소치 허련의 8폭 연꽃 그림. ⓒ 김갑봉


남도 어딜 가나 허씨네 그림 한 점 있기 마련

비록 그림 그리는 재주는 없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 그림 한 점 정도는 걸어 놓고 사는 곳이 고향(진도)인지라, 내심 박물관의 서화실이 더 궁금했다. 추사가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만한 이가 없다'고 추켜세운 소치 허련은 추사 사후 고향 진도에 남종화의 산실이 된 운림산방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소치는 진도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에 해남 두륜산방에서 추사의 지기 초의선사의 지도를 받았고,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며 공부했다. 33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평생의 스승 추사를 만나 서화 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추사와 초의로 연결된다는 것은 당연히 다산 정약용으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소치의 아들 미산 허형은 다산의 장남 정학연의 문하에서 시와 서를 배웠다. 다산은 강진 초당에 머물렀지만, 그의 학문과 사상은 호남 전역으로 퍼졌다.

남종화는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 방계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졌고, 6대에 걸쳐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허씨 집안은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남을 돕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남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어딜 가나 허씨네 그림 한 점 있기 마련이다.

서화실에 들어서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소치의 그림이 걸려있다. 전시된 그림은 소치 말년에 그린 그림들이다. 한겨울에 그렸지만 화폭에 가득한 연과 연꽃에선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튀어나올 것 같고,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은 흑과 백의 수묵뿐이라 자태를 뽐내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고 있다.

순천만 순천만은 용산에서 내려다 보는 게 일경이다. 특히, 낙조가 장관이다. 이제막 새 갈대의 새싹이 땅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런 갈대는 지난해 자란 갈대다. 묵은 갈대가 스러지고 새 갈대가 자라면 누런 등근 밭이 푸르게 변한다. ⓒ 김갑봉


순천에 올 때마다 부럽다, 인천에도 있었으면

다음 여정은 순천만이다. 길이 잘 뚫려 광주에서 순천은 1시간이면 족하다. 순천만 습지를 둘러보기 전에 순천만 국가정원을 먼저 들렀다. 인공적으로 꾸민 정원의 규모가 뜨르르하다. 꽃구경하려면 4월이 '딱'이라는데 4월 말이라 조금 늦었다. 곳곳에 관광버스와 어른들이 즐비하다. 걷기 어려운 노인들은 입구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려고 줄지어 서있다.

순천시가 정한 대외 도시 브랜드는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다. 우리 인천은 '올 웨이즈 인천(All ways inc heon)'인데. 생태수도에 걸맞게 정원을 꾸며 놓았다. 순천만은 자연이 선사한 꾸밈없는 정원이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뒤 상설 정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면적은 약 160만평으로 꽃과 나무 등 다양한 식물과 정원, 갯벌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은 덤이다.

순천만 국가정원이 사람이 만든 정원이라면 순천만 습지는 자연이 꾸민 정원이다. 갯벌 규모는 약 690만평. 세계 5대 습지다. 플랑크톤과 칠게, 낙지가 풍부하다. 지금이야 꼬막과 짱둥어탕이 명물이지만, 이곳이 공원이 되기 전만 해도 민물장어와 청둥오리 요리 전문점이 즐비했단다.

순천만을 대표하는 철새는 흑두루미다. 2500여 마리가 찾아온다는데, 가을과 겨울 순천만 9경에 속한다. 생태관광 배(6km 30분소요)를 타면 도요물떼새가 따라 흐른다. 그래서 순천만의 3보는 갈대와 갯벌, 그리고 새다.

순천이 꼽은 순천만 9경은 30리 갈대길, 기수역 갯골, 드넓은 갯벌, 원형 갈대군락, 안개, 흑두루미, 와온마을 해넘이, 화포 해돋이, 칠면초인데 이 9경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용산전망대다.

용산전망대에 올라야만 순천만습지를 조망할 수 있다. 오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특히 해넘이가 장관이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새 옷을 갈아입는 갈대숲이 마치 연잎으로 만든 섬처럼 둥그렇다.

이곳 갈대는 외지에서 가져다 심은 게 퍼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사방팔방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바닷물을 피해 자신을 보호하려다 보니 숲을 이루며 둥그렇게 됐다는 게 이곳 해설사의 설명이다.

순천에 올 때마다 부러울 따름이다. 인천은 비슷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제자리인 듯하다. 소래포구와 소래습지가 순천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단 재정 문제만이 아닐 텐데, 순천에 올 때마다 부럽다.

순천만정원 순천만 국가정원은 인공으로 꾸민 정원이다. 사진은 정원 내 꽃으로 장식한 '행복하개'이다. 옆에는 백구 가족이 있는데, '놀다가개' 가족이다. ⓒ 김갑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도기행 #광주박물관 #순천만 #소치 허련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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