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만 세 번, 그래도 계속된 내 이름 수난기

[공모-이름 때문에 생긴 일] 담배 때문에 생긴 별명 '백원'부터 노래방도 안가게 된 사연

등록 2018.05.16 20:55수정 2018.05.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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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졸업한 지 십 년이 지난 제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이맘때쯤 제자는 잊지 않고 2학년 때 담임인 내게 전화하곤 했다.


"선생님, 졸업생 '연자'예요. 아니 '연숙'이에요. 잘 계시죠?"
"방아구나! 연자방아."
"선생님, 농담 그만 하세요."
"참, 이름 개명했지? '연숙'이로."

반가움에 학창시절 제자의 별명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러자 제자는 화를 내는 대신 웃기만 했다. 세월이 지났지만,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아이의 이름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그 아이는 자신의 이름인 '연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다. 아이들은 그 아이의 이름인 '연자'에다 방아를 붙여 '연자방아'라고 불렸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이름인 '연자'를 빼고 '방아'라고 불렀다. 심지어 짓궂은 일부 아이들은 이름 대신 '방아타령' 노래를 부르며 그 아이를 놀리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제자는 아이들과 심하게 다투기도 했고, 전학을 가겠다며 담임인 나와 상담을 자주 했다.

결국, 제자는 이름을 '연숙'으로 개명했고 그 이후 이름으로 놀림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제자를 볼 때마다 이름 때문에 곤욕을 당했던 나의 어릴 적 생각이 떠올려진다.

1974년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환희 담배'가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하자 '환희' 이름을 가진 나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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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국내에 시판되었던 담배의 상표명. 한갑에 100원이라는 당시로서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됨. 하지만 독하기만 할 뿐 맛은 별로였다고 함. 그 때문에 당시 애연가들은 환희를 피우느니 차라리 100원을 더 보태서 솔을 피웠다고 함. ⓒ Pixabay


사실 '환희 담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름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거의 없었다. 간혹, 여자 이름 같다며 놀림을 당한 적은 있었지만 모든 아이는 내 이름이 예쁘다며 부러워했다. 더군다나, 그 당시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 이름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를 때도 이름이 멋있다며 한 번 더 불러주기도 했다. 내 이름 때문일까? 거의 모든 학생이 나를 알아볼 정도였다.

그런데 '환희 담배'의 등장으로 나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를 부를 때 이름 대신 '담배'라고 불렀고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며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심지어 담뱃값(100원) 때문에 붙여진 별명 하나가 더 있었다. "백 원"

아이들의 놀림은 갈수록 심해졌고 '환희 담배'를 즐겨 피우시던 한 선생님은 담배를 피울 때마다 내 생각을 한다며 농담을 하셨다. 그런데 선생님의 웃음 섞인 농담이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더는 이런 놀림을 참을 수 없어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에게 개명을 요구했다.

아버지는 문중의 항렬을 따져 이름을 지었다며 개명(改名)은 불가하다고 하셨다. 개명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도 개명을 요구하는 나의 주장은 끊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아버지께서는 개명 대신 이웃 학교로의 전학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전학을 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아버지의 생각은 큰 오산(誤算)이었다. 전학을 가서도 아이들의 놀림은 이어졌다. 오히려 이전의 학교보다 아이들의 놀림이 더 심했다.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전학을 다닌 것만 세 번이나 되었다.

'환희 담배'가 시중에서 단종(斷種)되기까지 내 이름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그 놀림에 내 반응은 다소 무덤덤해졌다. 1988년 마침내 '환희 담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이름으로 놀림을 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 나를 알고 있는 친구 녀석이 장난삼아 내 별명을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환희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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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라 6집 앨범 표지


80년대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정수라)가 앨범(6집)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는 앨범 수록곡 중 '환희' 노래였다. '환희' 노래는 발라드 곡으로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내 이름 '환희'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노래를 따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대학 학과의 응원가도 '환희'였다. 그것이 음치인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사실 음치인 내가 제일 싫어하고 두려운 것이 있다.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것'. 그래서 늘 친구들과 모임이나 회식을 있을 때는 거의 1차만 참석했고 노래 부르는 것이 두려워 2차에 참석해 본 적은 거의 없다.

한번은 1차 회식이 끝난 뒤, 친구들에 의해 2차 노래방으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내 노래를 꼭 들어봐야 한다며 우격다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며 발버둥을 쳤으나 워낙 완강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노래방에 들어서자, 친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환희' 노래를 선곡으로 틀어놓고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반주와 함께 가사가 나오자, 친구들은 박수치며 노래 부를 것을 계속해서 주문했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솔직히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래를 불렀으나 친구들은 내가 노래를 부르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그 웃음이 마치 나에게는 빈정거림으로 들렸다. 결국, 나는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노래방을 박차고 나왔다. 노래방을 뛰쳐나왔지만, 친구들이 나를 비웃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어떤 경우에라도 노래방 가는 일이 결코 없었고 지금까지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를 미워하게 되었다. 단지 '환희'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말이다. 심지어 TV에 그 가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고, 라디오에 '환희' 노래가 나오면 라디오를 아예 꺼버리기까지 했다.

돌이켜 보면, 그깟 이름이 뭐길래가 아니라 그깟 이름 때문에 울고 웃었던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름이 운명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에야 느끼는 바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이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사람 따라간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결국 그 이름도 흥(興)하고 쇠(衰)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름은 그 사람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나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얼마나 많을까가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 창에 내 이름을 타자하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영화배우, 가수, 소설가, 교수, 판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내 이름 '환희'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따라 '환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정감 가는 이유는 왜일까? 한편, 이 사람들이 이름 '환희' 때문에 경험했던 일이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환희 담배 #정수라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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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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