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이 된 강동구, 학생들이 피해자가 됐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02] 아이들이 위험한 사회

등록 2018.05.14 13:22수정 2018.05.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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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고


지난 9일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뉴스를 보면서 까무룩 하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뉴스를 보던 아이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저기 우리 동네 아냐?"
"응? 우리 동네가 왜 나와?"

끔찍한 사고 지난 9일의 사고 ⓒ JTBC


아이들의 성화에 겨우 눈을 뜨고 화면을 보니 낯익은 공간이 나오고 있었다. 분명 우리 회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도로였는데, 뉴스 자막에는 자전거 등교 고교생이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고 나오고 있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와 학교 4개가 몰려 있어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이 큰 바로 그곳이었다.

"아빠, 학생이 교통사고 때문에 죽었나봐."
"그러네. 너희도 조심해야 돼."
"우리 동네 교통사고 너무 나는 거 아냐?"
"요즘 공사 많이 하잖아. 트럭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복댕이 너는 집에서 나갈 때 골목으로 갑자기 확 뛰어 나가지 말고."

또 마지막에는 잔소리 비슷하게 끝나는 아이들과의 대화. 분명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는데 결론은 '아이들의 조심'이라서 미안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은 아이들을 조심시키는 수밖에 없는 걸.


다음 날. 까꿍이는 퇴근하는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아빠, 대박 사건!"
"뭔데? 왜 이리 흥분했어?"
"어제 TV에 나온, 그 교통사고 나서 죽은 오빠 있잖아."
"응. 그 자전거 타고 등교하던 고등학생, 왜? 또 아는 사람이야?"
"비슷해. 우리 반 친구 형의 친구래. 헐."

할 말이 없었다.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은 까꿍이 주위에서 벌어진 두 번째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당장 작년에 있었던 그 사고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친구의 죽음

지난해 여름 주말이었다. 갑자기 동네 단톡방이 시끄러웠다. 암사동 골목에서 어린 초등학생이 택배 차량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내용인 즉 세워져 있던 택배차가 퀵보드를 타고 지나가던 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출발해서 벌어진 사고였다. 아이는 멀쩡해 보였지만 병원에 옮기고 나니 그대로 숨을 거뒀다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엄마에게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 끔찍한 사고에 가슴 아파하고 있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아이가 까꿍이와 1, 2학년 같은 반, 1학년 때 첫 번째 짝이라는 것과 그 사고를 목격하고 신고한 이가 우리와 함께 일하는 지역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이었다.

강동구는 공사 중 온통 재건축, 재개발이다 ⓒ 이희동


까꿍이는 그날 당장 엄마와 함께 병원 영안실을 다녀왔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고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죽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듯 보이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9살은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학교에서는 사고 이후 담임선생님을 포함해 아이들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진행했다.

부모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던 골목을 바꾸자고 중지를 모았다. 안 그래도 그 골목은 암사동의 주요 이면도로로서 주차 공간과 주행 공간, 차도와 인도가 뒤섞여 예전에도 사고가 계속 일어났던 곳이었다. 게다가 사고 장소는 새로 마트가 들어선 바람에 더욱 복잡한 상황이었다.

부모들은 우선 교통안전 캠페인을 벌였으며, 행정 부서에 계속해서 관련 민원을 넣었다. 지역 국회의원에게 건의를 했고, 암사도시재생센터의 공모사업 등을 통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을 실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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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를 위한 암사길의 변화. ⓒ 이희동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부모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노력한 결과, 골목에 보행자를 위한 색칠을 하는 등의 작은 성과는 이뤘지만,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세울 수 없었다. 구청의 각 과와 경찰까지 섞여있는 행정 칸막이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그 골목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또 아이들에게 조심을 당부하는 일밖에 없었다.

예정된 사고

그런데 이번에 또 이런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부주의한 어른들에 의한 안타까운 학생의 죽음.

사실 이번 사고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강동구는 온통 공사판이다. 30년 동안 서 있었던 대규모 주공아파트들이 현재 재건축, 재개발 중에 있으며, 한때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업농이 있었던 고덕지구의 논밭과 산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고속도로 건설로 파헤쳐 지고 있다. 한때 55만 명까지 갔던 강동구의 인구는 현재 43만 명으로 줄었으며, 그 차이만큼 도로에는 덤프트럭이나 공사 차량들이 늘어났다.

육중한 공사 차량 강동구에서 매일 보는 풍경 ⓒ 이희동


출근·등교 시간에도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대형 차량들. 나만 해도 아찔한 순간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 차량 운전자만의 탓이겠는가.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지 공사 기간을 줄여 비용을 아끼려는 자본의 탐욕과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욕망이 투명돼 있지 않겠는가.

아빠와 누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막내 복댕이가 끼어들었고, 둘째가 그 이야기를 받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빠, 난 교통사고 안 당하는 법 알아. 길 건널 때 이렇게 손들고 건너면 돼."
"그건 네가 키가 작아서 그런 거거든."
"아냐. 우리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래야 된다고 시켰어."
"알아. 나도 그랬어. 그런데 이젠 아니야. 그리고 트럭은 너무 높아. 그래도 안 보일 거야."
"그래. 너희들 말이 모두 옳아. 그러니까 어쨌든 무조건 조심해. 알았지?"

현재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가 있는 상태다. 도대체 나아지지 않는 현실 때문이겠지. 작년 암사동과 달리 이번에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죽은 학생의 명복을 빈다.

청와대 국민청원 중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 청와대


#육아일기 #교통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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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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