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밭'과 '자연 밭'의 대결, 어떻게 이런 일이

줄 지은 씨앗과 흩뿌린 씨앗... 초보 도시 농부에게 자연이 준 교훈

등록 2018.05.16 21:18수정 2018.05.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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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을 감사함으로, 분주함을 여유로 바꿔줄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오랜만에 먹는 집밥 같았다. 자극적인 영화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담백한 영화가 던지는 잔잔한 파급력.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 난생처음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자연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었다. 집 뒤편 3평 남짓한 텃밭에는 말라비틀어진 고추 몇 개가 달려있었다. 군대에서 배운 삽질을 다시 쓰게 될 날이 오다니. 잠시 군대의 추억 속에서 텃밭을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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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편 3평 남짓한 텃밭에는 말라비틀어진 고추 몇 개가 달려있었다. ⓒ 김현중



텃밭을 가꾸기 전에는 비가 오면 출근길 걱정부터 했다. 비가 출근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생명수로 보인다. 고개든 초록빛 생명을 촉촉이 적셔줌에 감사한다(관련 기사: [모이] 나의 리틀 포레스트, 텃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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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배운 삽질을 텃밭 가꾸기에 다시 활용할 줄이야. ⓒ 김현중


초짜 농부인 주제에 실험 정신을 발휘했다. 작은 텃밭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줄지어 상추, 부추, 대파 씨앗을 정성 들여 심었다. 다른 한쪽에는 세 가지 씨앗을 마구잡이로 흩뿌렸다. 나름 자연과 인간의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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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이 씨앗을 흩뿌린 '자연 밭', 아래쪽이 씨앗을 줄지어 심은 '인간 밭' ⓒ 김현중


4월 1주차, 첫 대결은 인간 밭(씨앗을 줄지어 심은 밭)의 승리였다. 상추 싹이 예쁘게 줄지어 올라왔다. 반면에 자연 밭(씨앗을 흩뿌린 밭)에는 정체 모를 풀이 먼저 돋아났다. 땅 위로 고개를 내민 싹을 처음 맞이한 기쁨 반, 인간 밭의 승리를 자축하는 우쭐함 반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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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민 상추 새싹. 연약해 보이는 생명이 굳은 땅을 뚫고 올라왔다. ⓒ 김현중


2라운드, 4월 4주차의 대결은? 또 인간 밭의 승리였다. 더 촘촘하게 자라난 상추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부추가 줄지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자연 밭에서도 제법 상추와 부추가 자라났지만 발육이 좋은 인간 밭 친구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스코어는 2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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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도 인간 밭의 승리다. 줄지어 예쁘게 자라는 상추. ⓒ 김현중


5월 1주차에 이루어진 3라운드. 이변이 일어났다. 자연 밭의 친구들이 무섭게 자라나 인간 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의 하이라이트인 공항 전투씬이 연상됐다. 대등한 전투력을 가진 영웅들이 두 패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의 짜릿함이란. 기세 등등하게 양쪽 밭의 친구들이 자라고 있었다. 3라운드는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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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의 승부. 3라운드. 양쪽 상추 모두 다 잘 자랐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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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캡틴아메리카 : 시빌 워>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경기)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전개. 이번 주에 펼쳐진 대망의 4라운드 결과는? 자연 밭의 역전승이다. 그냥 역전승도 아니고 대역전승이다. 어떻게 1달 만에 이런 대역전극이 펼쳐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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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밭'에서 실하게 자란 상추 ⓒ 김현중


인터넷으로 상추 재배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다. 아뿔싸. 그동안 인간 밭 상추의 솎아주기(실한 식물을 가꾸기 위해서 실하지 않은 식물을 솎아 내는 일)를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솎아주기를 해주지 않으면 자라면서 서로 엉키고 부대껴서 더 크게 자라나지 못한다고 한다. 초짜 농부의 무식이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무지함을 탓하며 반성의 마음을 담아 솎아주기와 잡초 제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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솎아주기와 잡초제거를 마친 텃밭. 타노스가 된 기분이라 상추에게 미안했다. ⓒ 김현중


한때 잘 나갔던 인간 밭의 상추가 불쌍해 보였다. 게다가 솎아주기를 위해 절반의 무고한(?) 친구들을 뽑아내야 했다.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 등장하는 '타노스'가 떠올랐다. 스톤을 모아 절대 능력을 갖게 된 타노스. 그는 두 손가락만 튕겨도 우주의 절반에 해당하는 생명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정든 생명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절반이나 뽑아내고 있는 텃밭의 타노스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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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타노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자연 밭의 상추는 씨앗을 흩뿌렸던 덕분에 알맞게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자라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키운 상추는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따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자연스럽게 자란 상추를 보며 사전을 통해 '자연스럽다'는 말의 본질을 생각해 보았다.

1. 억지로 꾸미지 않아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나는 자연이 좋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인간의 욕심과 억지가 투영되어 있지 않다. 인간의 욕심과 억지는 자연을 거스른다.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 불렸던 사람의 욕심과 억지로 4대강이 병들었다. 가정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의 욕심과 억지가 자녀를 병들게 한다.

나는 자연에서 답을 얻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자연스러운 가정에서 가정 구성원 모두 자연스럽게 자라가고 싶다. 욕심과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다.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상추를 보며 나 역시 그렇게 자라가길 소원한다. 인간도 자연임을 잊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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