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빨간 깃발이..." 미세먼지가 바꿔놓은 일상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103] 일상이 되어버린 미세먼지

등록 2018.05.20 17:38수정 2018.05.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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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아침 풍경

최악의 대기 상태 밖으로 돌아다니기가 두렵다 ⓒ 이희동


출근과 등교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바쁜 아침. 어린이집에 간다며 젓가락을 챙기던 막내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을 하나 던진다. 매일 똑같이 던지는 바로 그 질문이다. 

"아빠, 오늘은 비 와?"
"아니. 안 와."
"야호. 그럼 오늘은 미세먼지 없어?"
"잠깐만 기다려봐.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볼게. 이런 오늘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네. 마스크 하고 가자."
"진짜? 잉. 오늘도 바깥놀이 못 하겠네."

아이는 울상이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난 뒤 놀이터에서 바깥활동을 하는 게 하나의 낙인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실내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 나이, 그 에너지에 실내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실 수밖에.

억울함 때문일까? 자기와 달리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그냥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시비를 건다.

"그런데 왜 아빠는 마스크 안 해?"
"아빠? 아빠는 어른이잖아. 어른은 마스크 안 해도 돼."
"왜? 전에는 했었잖아."
"전에는 나쁨도 아니고 최악이었잖아. 그런데 오늘 이 정도는 괜찮아. 너희는 자라나는 아이니까 미세먼지를 마시면 폐도 안자라고 건강도 나빠지는데, 어른들은 이미 폐가 다 자라서 너희보다 괜찮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물론 나도 뉴스에서 들었던 말들을 모두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들처럼 미세먼지 나쁨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긴 싫다. 돈도 돈이지만 그 답답함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무실에 있을 시간이 많다면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답답해 마스크를 쓴 아이들 ⓒ 이희동


아빠도 마스크 '매우 나쁨'도 아니고 '최악'의 대기상태 ⓒ 이희동


동생의 징징거림을 참을 수 없었는지, 옆에서 8살 둘째가 아빠를 거든다.

"아빠 말이 맞아. 어린이들은 마스크를 더 잘 써야 한 대. 우리 선생님이 그랬어."
"그래? 선생님이 그랬어? 너희 학교도 미세먼지가 심하면 운동장 안 나가고 그래?"
"그럼. 미세먼지가 심하면 운동장에 빨간 깃발이 올라가. 그러면 선생님이 운동장 나가지 말라고 그래."

운동장에 미세먼지를 경고하는 깃발까지 설치되어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이 이제는 아이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리다니. 격세지감과 함께 미세먼지의 위력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른다. 과연 이 아이들은 파란 하늘을 1년에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미세먼지 때문에 달라진 우리네 삶

어린이대공원에서 분수 앞에서도 마스크 ⓒ 이희동


돌이켜보건대 미세먼지가 우리네 삶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최근에 와서다.

예년 같았으면 봄에 황사가 많거나 안개 때문에 시야가 안 좋겠거니 했겠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게 미세먼지 때문이 됐다. 미세먼지의 공포가 공기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게 된 것이다.

물론 그전부터 대기오염은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기오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미세먼지가 우리 건강에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대기오염을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이 알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고, 뚜렷한 해답이 없는 현실에 절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외출하기 전에 미세먼지 예보를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혹여 행사를 하나 진행하더라도 미세먼지는 우천만큼이나 큰 변수가 되었다. 미세먼지가 나쁘면 아무리 연휴더라도 사람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마스크는 가정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미세먼지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다 큰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고 있는 만큼 미세먼지가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쓰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마스크를 씌우며, 미세먼지가 심하면 아무리 학교라도 보내기 꺼려지는 게 부모 마음이지 않은가.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이민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 마음도 모르고 마스크를 써서 답답하다며 툴툴대지만 어쩔 수 없다. 국가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지금, 이렇게라도 미세먼지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수밖에.

북핵보다도 무서운 미세먼지

마스크 쓰고 등교 전 답답해도 한 컷 ⓒ 정가람


실제로 미세먼지가 우리의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렸는지는 지난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 요소들이 조사되어 있었는데, 지난해 성인 3839명을 대상으로 각종 위험에 대한 불안 수준을 측정한 결과, '미세먼지 등과 같은 대기오염'이 5점 만점에 3.45점으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는 경기침체 및 저성장(3.38점),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3.31점), 수질오염(3.29점), 성인병·실업 및 빈곤(각 3.27점), 북한의 위협 및 북핵 문제·노후(각 3.26점), 홍수 및 태풍(2.63점), 지진 및 쓰나미(2.73점), 가족해체 및 약화(2.64점), 권력과 자본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2.84점) 등 보다 높은 수치로서, 미세먼지가 우리 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조사가 이루어진 2017년은 올해와 비교해서 미세먼지에 대한 뉴스가 훨씬 적었으며, 북핵의 위협은 남북관계가 확연하게 좋아진 지금보다 훨씬 엄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미세먼지가 불안요소 1위를 차지한 것은 그만큼 현재 우리 국민들이 미세먼지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는 호환마마, 북핵보다도 두려운 것이 바로 미세먼지인 것이다.

행정의 대처 도로에 물뿌리기 밖에 없는 현실 ⓒ 이희동


아직 정부는 이런 미세먼지와 관련해서 뚜렷한 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책은커녕 미세먼지의 원인에 대해서도 중국발이냐, 국내발이냐를 두고 왈가왈부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허송세월을 보낸 MB와 박근혜 정부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일본 등과 함께 대기오염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자고 선언했지만, 언제 어떻게 구체화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부디 정부가 이에 대해 시급한 대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공기는 국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공공재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크게 숨을 쉬어가며 마음껏 뛰놀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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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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