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8천억 지원 그 이후… 인천 노동자들은 지금

한국GM 위기와 부품사 노동자의 가려진 시간

등록 2018.05.16 16:52수정 2018.05.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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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3일, 한국지엠은 '오는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로 시작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는 군산지역 시민과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지엠 공장이 위치한 인천, 창원, 그리고 한국 전체를 제조업 위기의 공포와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지금, 한국지엠 노사의 임단협 타결과 뒤이은 정부의 8천억 지원으로 사태는 일단락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장 안팎으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소리 없이 들끓고 있습니다. 글로벌 지엠에서 한국지엠의 불안정한 위치와 적자 구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 회사, 정부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남은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2라운드의 과제가 남았습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한국지엠 협력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기자 말

# 한국지엠에 서스펜션을 조립해 납품하는 업체에 근무하는 강아무개씨는 요즘 옆 라인 동료들을 볼 때마다 막막하다. 자신이 납품하는 1공장은 물량이 그나마 있는데 2공장에 납품하는 동료들은 물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오른 만큼 받을 수 없다. 이직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자신도 언제 물량이 줄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아이는 두 돌을 넘겼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고 해도 나이가 걸려 알아보지도 못한다. 지엠대우 시절부터 근 15년 넘게 청춘을 바쳐서 일 해온 공장이지만 예전만큼 일하는 맛이 나질 않는다.

# 한국지엠에 운전석을 납품하는 업체에 근무하는 이아무개씨의 이번 달 월급은 84만 원이다. 직서열업체의 특성상 한국지엠이 쉬면 쉬어야 하고 일하면 일해야 한다. 요즘 물량이 없어 TPS(생산 가동 조절·temporary shut down)를 잡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길게는 주3일, 짧게는 주1일 근무를 한다. 임금은 70만 원을 왔다 갔다한 다. 그나마 나오던 휴업수당도 회사에서 지급을 하지 않는다. 상여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 회사 신용도가 떨어져 대출도 안 되고 얼마 전에는 컨베이어 벨트기계에 담보를 잡아놨다고 한다. 동료들과 이씨는 쉬는 날마다 알바를 찾고 있다.

# 한국지엠에 부품을 납품하는 5톤 트럭을 운행하는 전아무개씨는 요즘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트럭 뒷좌석에서 잠을 잔다. 전반조 때는 A 업체의 부품을 납품하고 후반조때는 B, C 업체의 부품을 납품한다. 세 군데 업체의 부품을 납품하다보니 밥 먹을 시간도 모자란다. 이렇게라도 해야 트럭 할부금과 대출을 갚을 수 있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데 벌써 2년째 미루고 있다. 틈만 나면 위기설이 터지고 물량이 들쑥날쑥하여서 큰돈 쓸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A 업체 부품을 B 업체 부품과 혼동해 납품했다가 시말서를 써야 했다.

# 자동차에 들어가는 스위치를 만드는 협력사에 다니는 유아무개씨는 4월 20일까지 근무하고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납품하던 부품의 차종이 단종되었고 그나마 수출하던 물량도 반절이 줄어 더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조에 50여 명이 넘게 일하던 공장은 한순간에 15명 내외로 줄었다. 한 명당 적게는 4곳, 많게는 9곳의 공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은 동료들도 나가는 동료들도 서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조회에서 조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 더러운 회사 나가셔서 더 좋은 회사, 물량 많고 해고 안 되는 회사 가시라는 말을 했다. 10년 동안 일한 공장, 사람들이 좋아서 일할 맛도 나고 물량이 줄거나 휴업이 되어도 그만두지 않고 일을 했던 건데 한순간에 해고되니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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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국지엠 협력사 공장의 생산라인 ⓒ 서선주


자동차는 크고 작은 2~3만 개의 부품들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손이 필요하다. 조립을 위해 필요한 부품들, 볼트와 너트, 배선, 시트, 운전석, 스위치 등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 노동자들이 있기에 자동차가 완성된다.

그러나 최근 한국지엠 사태로 인해 협력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노무대금 미지급, 도산과 부도위기, 금융권 대출 거부는 1차 협력사에 딸린 2, 3차 협력사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협력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상황이 매우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정규직이 아닌 도급의 도급, 파견의 파견 등의 고용형태인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빌미로 쉽게 해고되었고 회사는 남은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 상여금, 수당 등을 없애거나 축소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공단의 협력사 노동자들에게는 비빌 언덕조차 없었다.

하지만 협력사 노동자들에게 해고와 협박은 이미 일상이었다. 한국지엠은 더 싸고, 빠르게, 품질과 생산을 잡기 위해 협력사들을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지엠과 협력사 간의 불공정한 단가 협상, 경쟁적인 입찰, 노무 단가 인하, 단가 후려치기 등 불안정한 조건이 늘 존재했고, 글로벌이라는 미명 아래 지역 협력사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사지로 내몰리게 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지엠의 적자 경영이 있는데, 일부 언론은 한국지엠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라 이야기하며 노동자들의 복지, 임금이 지나치게 높은 탓으로만 돌린다. 지역과 상생을 하지 못한단다. 협력사 사장들은 이런 여론에 편승하며, 직원과 회사를 살리는 방안은 한국지엠 노동조합의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뒤에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과 수당을 삭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만성 적자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드는 비용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본사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일방적으로 뺏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온갖 욕을 먹고 있는 협력사 노동자들은 오히려 회사의 적자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메꾸고 있는 중이다. 정부든, 협력사 사장이든, 언론이든 적자를 유도하는 한국지엠의 시스템이라는 진짜 문제를 말하지 않고 애꿎은 노동자 탓만 하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지엠과 노동조합의 협상이 마무리되며 정상화의 길을 걷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한국지엠을 떠받쳐 온 지역 협력사 노동자들에게 닥친 위기는 해결된 것이 없다. 이것을 책임지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위기의 고리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서선주 시민기자는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조직국장입니다.
#한국GM #자동차 #부품사 #협력사 #한국GM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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