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폭행' 김경배를 위한 변명

폭력 정당화할 순 없지만... '오름 밀집' 성산읍, 어떻게 제주 신공항 후보지가 됐나

등록 2018.05.17 22:30수정 2018.05.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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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국토부가 제2공항 예정지를 발표할 때 공개한 지도. ⓒ 장태욱


원희룡 제주지사 무소속 예비후보가 지난 14일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제주의소리> 초청 토론회 자리에서 현장에 있던 제주도민에게 손찌검을 당했다. 원 전 제주지사를 가해한 도민은 칼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칼로 자신의 팔을 자해해 토론회 현장에 피가 흐르는 끔찍한 상황으로 번졌다.

원 예비후보를 폭행한 이는 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 김경배 부위원장으로 밝혀졌다. 공개 토론회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한 번쯤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김경배씨는 왜 그 결과가 뻔한, 토론장 난입과 후보 폭행이라는 행위를 저질렀을까?

난데없는 제주 신공항... 주민들에겐 '날벼락'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 11월 10일 국토교통부(당시 유일호 장관)와 제주자치도는 '제주 신공항'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실제로는 5개 마을) 일대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사업비 약 5조 원을 투입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이었다. 

이후 어떤 이들은 그동안 개발에서 제외됐던 서귀포시 성산읍에 공항이 유치되면 지역이 발전하고 땅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주위의 환호가 높을수록 현지 주민들의 수심은 깊어졌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게 된 성산읍 지역 주민들은 2015년 12월에 접어들면서 제2공항 반대 투쟁을 준비했다. 공항 예정 부지에 포함된 성산읍 5개 마을(온평리, 신산리, 난산리, 수산리, 고성리) 가운데 고성리를 제외한 4개 마을 주민들은 "여태껏 여기서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어디로 가서 살라는 말이냐"고 호소했다.

반대하고 나선 성산 4개 마을 주민들에게 떨칠 수 없는 의구심이 있었다. 왜 하필이면 성산읍 신산, 난산, 온평, 수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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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싸움은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영역의 부실을 밝히는 데 집중됐다. ⓒ 장태욱


국토부는 항공대 산학협력단(항공대·유신·국토연 등 컨소시엄)이 작성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용역의 결과로 부지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 지역이 기존 제주공항과 공역이 중첩되지 않아 비행절차 수립에 큰 문제가 없고 기상 조건이 좋으며 생태자연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환경 훼손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등 다른 후보지들보다 뛰어나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최근 여름에 비가 내리면 제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성산읍 지역은 한꺼번에 홍수가 날 정도로 폭우가 빈번했다. 올해 1월에 제주를 강타한 폭설과 이상 한파의 피해도 성산읍이 가장 컸다. 성산읍 일대 월동 무와 당근이 한파로 거의 괴멸됐는데, 기상여건이 좋다니?

게다가 성산읍과 인근 구좌읍은 제주에서도 오름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다. 때문에 비행을 위해서는 오름 절취가 불가피하다는 보고들까지 나왔다. 게다가 거문오름을 젖줄로 하는 용암동굴이 지하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환경훼손이 적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왔을까?

주민들은 수긍할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전국을 강타했다. 오죽하면 주민들은 제주 신공항 배후에 국정농단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나섰을까.

이후 촛불혁명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주 신공항 지원'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주민들이 기대했던 '연구용역에 대한 재검토'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라면 반대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호소문도 발표하고 김현미 국토부장관 면담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민들이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작년 10월 김경배씨는 42일간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재검토'를 주장하며 단식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섰지만... 반대 주민들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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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김경배 부위원장. ⓒ 장태욱


당시 필자는 제주도청 앞에서 홀로 단식을 하던 김경배씨를 만났다. 김씨는 "어머니는 내가 육지에 1인 시위 한 걸로 알고 계시다"며 "어머니가 단식에 대해 아시면 큰일이 날 일"이라고 말했다. 쉰 나이에 총각인 김경배씨는 시골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그는 "제주 제2공항이 만들어지면 노모와 살고 있는 조그만 집이 송두리채 사라진다"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단식이 40일을 넘기고 김씨의 몸이 망가지자, 강우일 천주교 제주 주교가 중재에 나서 김경배씨와 원희룡 제주지사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원희룡 지사는 김경배씨를 비롯한 성산읍대책위위 입장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재조사와 더불어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연구' 용역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재조사와 별도로 공항은 일정대로 추진한다는 것으로 반대 주민들이 보기에 재조사는 요식에 그칠 게 뻔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22일 '제주제2공항 사전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입찰을 마감하고 '유신 컨소시엄'에 재조사와 기본계획 연9구용역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주)유신은 앞서 '사전타당성검토 연구'를 맡았던 바로 그 업체였다. 부실 용역 의혹이 짙은 당사자에게 재조사 용역을 맡기는 우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시민사회와 성산읍 주민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주)유신이 계약을 자진 철회하는 모양새로 국토부는 용역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 제2공항'은 제주지사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5명의 제주지사 예비후보들 가운데 '제2공항 반대'를 내건 사람은 고은영 녹색당 후보가 유일하다.

왜 우리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나... 성산 주민들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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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모습. ⓒ 장태욱


김경배씨가 원희룡 후보를 폭행하기 이틀 전, 필자는 성산읍에서 제2공항을 주제로 열린 '낭송회'에서 김씨를 만났다. 지난해 오랜 단식 때문인지, 김씨는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 몸은 야위었고 단식을 할 때보다 얼굴도 더 상해 보였다.

그는 "제2공항 문제가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고 있다"고 봤다. 물론 '타당성 연구에 대한 재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뒤로 미뤄지면서 국토부와 제주도가 제2공항을 밀어붙이지는 못하게 됐다. 하지만 성산읍 주민들을 대변할 의미 있는 정치세력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어디선가 걷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로 오고 있다.

지금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까닭 없이 죽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일부


경찰은 김씨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입건한다고 밝혔다. 서두에 밝혔듯 그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혹은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는 제주도가 다치고 아픈 만큼 제 몸이 아픈 사람이다. 시인이 노래한 대로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김경배 #제주 제2공항 #제주도 #성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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