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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마음 가난한 이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헌사

[리뷰] 드라마는 끝났지만... '나의 아저씨'가 내게 가져다 준 행복론

18.05.19 15:38최종업데이트18.05.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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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선생님은 졸업장을 나누어 주면서 성적이 중간쯤 되는 학생에게 말씀하셨다. "사실 네가 최고야. 성실했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착했고 늘 궂은 학급 일에 솔선수범했지. 세상에 너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 선생님의 찬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이 가진 역설 때문이었다.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반에서 10등 정도 하면 대학에 가기 힘들었다. 최선을 다했어도 대학에 갈 수 없는 성적을 낸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성실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 학생이 보인 착함에 대해서도 칭찬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행동은 '손해보는 짓'이라고 평가한다. 결과로 평가하고 이득을 잘 챙겨야 좋은 사람이 되는 세상이 됐다.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건지 우리들은 잊어버리고 살았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산 '사람 사는 법'에 대해 tvN <나의 아저씨>는 깨우쳐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묻고 사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나의 아저씨>는 이 시대 최고의 판타지일 수도 있다.

아마 이 글은 객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마음이 가버려, 콩깍지가 쓰여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아름다워 보이듯. 그런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다. 이 드라마에 내 마음이 너무 깊이 들어가 모든 것이 고와 보인다. 아마 드라마가 표현한 '아저씨 세대'의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리뷰라기 보다 감탄사에 가까울 것이다.

스포츠카를 타고 떠난, 여행 대신 할머니의 장례식

동생 기훈(송새벽)과 함께 청소 용역업을 하던 형 상훈(박호산)은 동생과 어머니 몰래 수익금의 일부를 장판 밑에 숨긴다. 22년 간 다니던 회사에서 받지 말아야 할 돈을 받아 챙기는 바람에 잘린 그 답다. 그런데 그 돈의 용처가 다르다. 동생 기훈이 질색하든 말든 회사에서 잘리고 사업을 두 번 말아먹고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이 아저씨는 자신의 삶에 대해 '먹고 싸기만 했다'며 한탄한다. 그런 그가 '먹고 싼 것'이 아닌 기억을 만들기로 했다. 삼 형제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상훈의 꿈을 보며 그랬다. '아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삼형제의 폼나는 여행이겠구나.'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알량한 예측을 집어던졌다. 물론 삼형제는 검은 '라이방'(선글라스)를 썼고 검은 수트도 입었다. 하지만 도착한 곳에는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스위트룸도 빨간 스포츠카도 없었다. 그들은 상복을 입고 함께 지안(이지은) 할머니를 모신 납골당행 버스에 올라탔다.

ⓒ tvn


상주라고는 이지안 혼자인 쓸쓸한 상가를 본 상훈은 그동안 자신이 모은 돈을 털어 상가를 풍성하게 만든다. 동생 동훈이 회사에서 잘리자 '너만은 회사에 남아 어머니 돌아가시면 상가를 흥하게 만들어야 하는데'라며 탄식했던 그다. 그의 로망을 지안의 할머니 상에서 실현한 것이다. 즐비한 화한, 그가 불러들인 이웃들, 할 수 있는 모든 격식을 차린 제사상과 절차들까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추모도 잠시, 상훈은 행복해했다.

스포츠카를 타고 떠난 바닷가 스위트룸 호텔 여행과 할머니의 장례식이라는 전혀 다른 선택. 바로 여기에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함축되어 있다. 동훈은 그런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존재감이 없던 사람. 그래서 회사에서도 자신이 일해온 설계팀에서 밀려 안전진단팀으로 간 사람. 하지만 그곳에서도 묵묵히 솔선수범하며 자신의 일을 해오던 사람. 형제 중 가운데,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형과 동생 사이에서 내색하지 않고 집안의 궂은 일을 해오던 사람. 청렴했지만 자신의 앞으로 잘못 배달되어온 돈봉투 앞에서 흔들렸던 그런 사람. 그래서 변호사가 된 아내에게 야망도 열의도 없다며 밀쳐지게 돼버린 남편.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있어야 할 사람이지만 그 소중함이 당연하게 여겨져 뒤로 밀쳐진 사람. <나의 아저씨>는 그런 박동훈이라는 사람을 사내 정치와 아내의 불륜을 통해 세상 밖으로 길어 올린다.

가장 불쌍한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행복의 방식

ⓒ tvn


보잘 것 없이, 하지만 당연하게 흐르던 동훈의 삶에 빚어진 파열음. 본의 아니게 얽힌 사건으로 인해 동훈의 삶은 바닥을 친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만난 이지안, 그의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애"라 생각한 그 아이가 자신을 불쌍하다고 하자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터진다.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대상에게서 받는 위로와 공감과 서러움이 세상 밖으로 던져진 두 사람을 묶는다. 그 세상 밖으로 던져진 두 사람의 연대는 '세상 살기 너무 힘든' 시청자들을 위로한다.

본의 아니게 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 분)와 도준영(김영민 분)의 불륜을 알고 도준영과 얽히게 된 이지안은 자신에게 잘해준 동훈을 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불법적이었기에 오히려 동훈과 지안을 위기에 빠트린다.

드라마는 사내 정치와 불륜 등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잡음들을 헤치고 나가는 이지안의 저돌적이면서 맹목적인 사랑과, 이지안의 자기 희생적인 헌신을 보다듬은 박동훈의 미련스럽게 우직한 행보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박동훈과 그 주변 사람들의 선택을 통해 '어른됨'의 자리를 되짚는다.

<나의 아저씨> ⓒ tvN


이제는 무색해졌지만 마흔을 '미혹'(四十而不惑)이라 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역설적으로 쉽게 혹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또 세상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어른답지 않아도 됨을 허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할 나이에 도달한 이들은 이익과 셈이 앞서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반갑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나이만 들었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어른들을 위해, <나의 아저씨>는 격언을 남긴다. 자신이 애써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몇 번 보지도 않은 이지안의 장례식에 쏟아붓고는 한없이 행복해하는 박상훈처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추운 아이를 알아버린 바람에 그 아이를 책임지고자 애쓴 박동훈처럼, 비록 실수는 했지만 도망치지 않고 책임지려 했던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처럼, 기꺼이 '우리 사람'이라며 이지안을 반기고 함께 했던 후계동 사람들처럼 드라마는 '사람답게 행복해지는 방식'에 대해 진득히 천착하며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아내보다, 형제가 먼저여서 늘 아내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 것 같던 사람, 하지만 그는 아내의 불륜을 혼자 삼키며 가정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 늘 하루 일과가 끝나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술 마시는 게 낙인 세상, 별 하잘 것 없어 보였던 상훈, 기훈, 후계동 사람들. 그들은 외로운 이지안이 다시 태어나고 싶은 곳의 인연이 됐다. 

ⓒ tvn


살아가며 만났던 인연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며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그만큼만의 삶이 어쩌면 우리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이 아닐까. <나의 아저씨>가 시작할 때 가장 한심했던 사람들이, 좋은 인연이 되어 우리의 삶을 환기시킨다. '혹시 당신 주변에 당신이 하잘 것 없다 했던 좋은 인연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당신의 삶, 주변의 삶부터 잘 챙기세요'라며.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후계동 사람들은 오늘 저녁도 정희네에 모여 술 한 잔을 걸치며 그렇게 훈훈하게 살아갈 것이다. 대표가 된 박동훈도, 가끔은 이지안도, 어쩌면 이젠 추억이 된 겸덕도, 그리고 드라마를 본 우리도, 최소한 드라마의 여운이 흐려지기 전에 박동훈처럼 사람답게 행복해지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인연에 애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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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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