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울고 있는 5.18은 '승리자'인가

[5.18 38주년] '상무관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

등록 2018.05.18 22:27수정 2018.05.1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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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에 의해 희생당한 시민들이 제일 먼저 안치되었던 상무관. 이곳에 검은 쌀로 만든 가로 세로 8.5×2.5m 크기의 정영창 화백의 <검은 하늘, 검은 기억>이 설치돼 있다. ⓒ 이일천


5.18민주화운동 38주년, 아침부터 광주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오전 10시, 변함없이 망월동 5.18국립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38년 전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끝까지 맞서 싸우다 산화한 고 윤상원 열사의 말을 이어받았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이 총리는 "광주는 승리자가 됐다. 앞으로도 광주는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역사에서 정의가 끝내 승리하듯이, 광주정신은 끝내 승리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총리의 기념사엔 완결된 승리와 다가올 승리가 혼재돼 있다. 38년이 지난 5.18처럼, 38년이 흐른 광주처럼.

오후 2시, 금남로에 있는 상무관에서는 매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꾸린 '제38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준비한 '상무관 프로젝트-오월지킴이와 영원의 노래'라는 기획전시전이 문을 연 것이다.

옛 전남도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상무관은 원래 경찰들과 유도선수들, 그리고 검도선수들이 훈련하는 체육관이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에는 계엄군에 의해 희생 당한 시민들의 주검이 제일 먼저 안치되었던 곳이다.

1980년 5월 이후 상무관은 간간이 일반에 개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개방은 5월 항쟁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상무관에서 5.18행사위가 공식적인 추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무관 프로젝트'는 80년 5월에 학살 당한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뒤를 이어 여전히 오월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상무관 프로젝트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정영창 화백의 설치 작품 <검은 하늘, 검은 기억>과 허달용·조정태 화백의 <오월지킴이 초상화>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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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복원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오월어머니들이 허달용·조정태 화백이 자신들을 그린 초상화를 정영창 화백의 설치 작품 <검은 하늘, 검은 기억> 앞에서 들고 있다. ⓒ 나인욱


정 화백의 <검은 하늘, 검은 기억>은 검은 쌀로 만든 가로 세로 8.5×2.5m 크기의 대형 추상 작품이다. 검은 쌀은 쌀알 그 자체로 오월영령들이자 생명과 부활, 평화와 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허달용 화백과 조정태 화백은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해 농성 중인 오월 어머니들 10명을 초상화에 담았다. 정 화백의 <검은 하늘, 검은 기억>이 1980년 5월이라면, 허달용·조정태 화백의 <오월지킴이 초상화>는 38년이 지난 5월의 현재다.

죽은 자가 실려와 잠시 머물다 떠난 거처. 죽은 자의 어미이거나 죽은 자의 누이인 이들이 38년을 통곡해도 마르지 않는 눈물과 여전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얼굴을 검은 쌀알에, 작은 초상화에 넣었다. 아직도 한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기념사에서 언급했듯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일'은 무엇일까.

이 총리는 "첫째는 진실규명"이라고 했다. 그렇다, '오월학살 진상규명'은 38년이 지난 5.18의 여전한 과제다. 이 총리는 "5·18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9월부터 가동되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아무런 의혹도 남기지 않고, 진실을 완전히 밝혀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 총리는 "당시 국방부가 진실의 왜곡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고 했다. 그 진실 왜곡에 참여했던 이가 버젓이 국방부 차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이의 사퇴를 요구하는 광주를 향해 정권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국방 개혁을 책임지는 핵심 인물"이라고 감싸고 돈다. 정말 '진실규명'할 수 있을까?

이 총리는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일'의 "둘째는 역사의 복원과 보전"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는 옛 전남도청이 5·18의 상징적 장소로 복원되고 보존되도록 광주시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5.18 기념사에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겠는지 총리실 관계자를 미리 광주에 보내 의견을 청취했다. 그래서 매우 민감한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것이다.

신중하기로 정평이 난 총리다. 하지만 이 사안은 '신중'보다는 '결단'을 앞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광주는 갖고 있다. 옛 전남도청은 한국 민주세력에겐 정치적 고향 같은 곳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정권은 전남도청에서 5.18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오월어머니들은 이들에 맞서 지금까지 바로 그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옛 전남도청이 5·18의 상징적 장소로 복원되고 보존되도록 광주시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언만 쳇바퀴를 돌고 있다. "옛 전남도청이 5·18의 상징적 장소로 복원되고 보존"될 수는 있는 것일까.

상무관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자리에 5.18기념식에 참석했던 총리도, 장관도 심지어 광주광역시장도 오지 않았다. 오월어머니들은 세월의 풍파에 지친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를 쓸쓸하지만 기쁘게 바라보았다. 쌀알로 표현된 그날의 자식들이, 동생이, 아버지가 별이 되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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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이당금씨가 상무관 프로젝트 여는 날 '진혼극'을 하고 있다. ⓒ 한경숙


상무관 프로젝트 시작되는 날, 연극인 이당금씨는 '진혼극'을 했다. 이씨는 공연 이틀 전부터 아무 까닭없이 맥이 풀려 무기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습관처럼 망월묘역을 찾아간 이씨는 오월영령들에게 "내가 당신들의 원혼도 풀어야 하고, 우리 오월어머니들 위로도 해드려야 하니 제발 나 좀 풀어달라"고 청했다 한다.

이씨의 진혼극이 시작되자 오월어머니들은 마른 눈물을 손등에 콕콕 찍었다. 여전히 울고 있는 5.18은 승리자인가. 진실규명이 희롱 당하는 광주는, 승리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상무관프로젝트는 18일부터 오는 31일까지 계속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상무관 #정영창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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