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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도 상상 못한 배우, 스티븐 연 "외로움도 재밌었다"

[여기는 칸] "이창동 감독님, 대단한 선생이면서 완벽한 학생 같았다"

18.05.19 19:41최종업데이트18.05.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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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에 출연한 스티븐 연. ⓒ CGV아트하우스


"사실 스티븐 연을 캐스팅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버닝>의 시나리오를 쓴 오정미 작가의 추천이었는데 괜찮을 것 같더라. 한국에 그가 들어왔을 때 만났는데 자기가 벤과 같다고 하더라. 실제 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 (이창동 감독)

영화 <버닝>에서 해미(전종서)와 종수(유아인) 사이에서 벤(스티븐 연)은 매너있고 친절하지만 동시에 수수께끼 같은 말과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같은 캐릭터다. 교포 혹은 이민자 출신의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온 그는 어쩌면 영화 속 캐릭터 중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버닝> 공식 상영 직후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순간 스티븐 연의 눈망울은 눈물로 차 있었다. 18일 팔레 드 페스티벌 인근에서 그를 만나 영화와 당시 감정에 대해 물었다.

벤과 연상엽 사이

"그날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우리 영화를 두 번째로 본 건데 촬영 때 감정과 느낌이 다시 들어오더라. 그땐 단지 일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스크린으로 보니 아주 (의미가) 큰 영화였다는 걸 실감했다. 물론 <옥자>로 작년에 칸에 오긴 했지만 그때는 틸다 스윈튼도 있고, 폴 다노도 있어서 전 조용히 묻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버닝>은 다르다. 제가 좀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이다. 이 작고 조용한 영화로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해 깊이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본을 처음 받는 순간 스티븐 연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을 읽고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저 스스로도 이민자이기 때문에 그런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버닝>에서 느껴지는 그 외로움이 좋았다. 돈도 많고 뭐가 그리 외롭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분명 외롭다. 일종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잖나. 사실 한국어 대사가 신체적으로 어려웠다면, 한국 강남 부자를 표현하는 건 심리적으로 어려웠다. 호텔에서 4개월 간 촬영하면서 외로움을 느꼈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 외로움이 재밌었다. 영화에 자연스럽게 담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국도 교포 사회에서도 외로운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 같다. 스태프들과 많이 대화하면서 작업했는데 왜 그런 게 있잖나. 한국에선 정서적으로 다 연결돼 있고, 유대감이 강하다. 반대로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했다. 이런 게 극단에 몰려 있으면 서로 이해하기가 힘든데 요즘은 그 흐름이 서로 반대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선 그동안 개인주의가 강했으니 이젠 함께 뭉치자는 정서가 생기고 있다. 한국은 점점 개인화 되는 것 같고."

외로움에 대한 그만의 통찰이 있었다. <옥자>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 그는 한국인 이름인 연상엽으로 참여했다. 앞서 말한 한국에 깊이 들어갔다는 게 이 맥락이었다. 이민자의 삶을 설명하면서 그는 "어릴 땐 미국 사회 주류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는 걸 알았다"며 "그래서 한국인이 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도 어려운 점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런 상태가 처음엔 무섭다. 하지만 나중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넓어지고, 용감해지려고 한다. 나의 나라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파워고 외로움 안에 있을 수 있는 것도 파워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미국에선 주류가 백인이니 동양인, 흑인, 중동 사람들을 좁게 본다. 소수자들의 자리가 점점 넓어지고 있긴 하지만 일단 외모부터 다르기에 뭔가 제한을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제 모든 걸 자유롭게 방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버닝>에서 평범한 한국인 역할을 하면서 진짜 자유를 느꼈다. 어떤 벽을 뛰어넘는 계기가 됐다."

특별한 인연들

스티븐 연에게 <버닝>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이창동 감독에 대해 그는 "대단한 선생이면서 세상을 궁금해 하는 학생이기도 하다"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시는 분인데 나이가 있음에도 굉장한 탐험가시다. 용감하고 깊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감독님이 입으로 직접적으로 가르쳐 준 건 없었다. 저는 젊은 나이임에도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는 걸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데 감독님은 내려놓으시고 소통하려 하시더라.

칸에 와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이 축제를 평가절하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냥 영화제일 뿐이다. 제게 중요한 건 감독님과의 만남이며, 경험이다. 그래서 <버닝>은 제가 참여해서 기여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참 신기하다. 제가 감독님과 연결된 것, 또 전종서라는 배우의 발견, 아인씨와의 인연 등 말이다."

영화 <버닝>으로 스티븐 연은 "보다 한국에 깊이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 CGV아트하우스


그에게 연기하는 이유를 질문했다. 잠시 생각 후 "잘 모르겠다"며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궁금증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아니면 일종의 사람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도 자아가 강한 편이라 어렸을 땐 다른 사람들, 다른 세상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한다는 건 아마도 우주가 그렇게 시켜서가 아닐까. 우주가 날 배우로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 길을 받아들이면서 가고 있다. 이 길이 막히면? 언제든 다른 길로 갈 수 있지!"

<버닝>에 이어 그를 한국 작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교포가 아닌 완전한 한국 사람을 연기하고 싶다"며 그는 "작품이 제게 맞아야 할 것이다. 안 맞는 작품을 하면 관객 분들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기회가 되는대로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스티븐 연 버닝 이창동 유아인 전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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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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