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탈검찰화', 우리의 몫이 남았다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이야기 ①] 탈검찰화와 혁신, 이렇게 진행해야 한다

등록 2018.06.07 17:20수정 2018.06.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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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탈검찰화', 우리의 몫이 남았다 ⓒ pixabay


지난 5월, 한 중학생이 버스를 절취하여 운전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중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10대들의 범죄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소년법을 폐지하여 아이들을 형사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친다. 하지만, 키가 꽂힌 채 길가에 주차된 교회 버스를 충동적으로 운전한 13살 소년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법감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인들의 음주운전에 대한 관대한 처벌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일상화된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소년은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법무부 소년분류심사원에서 교육과 상담을 받을 것이다. 소년분류심사원의 보호직 공무원들은 13살 소년이 버스를 훔쳐서 운전하기까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를 직시하고,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볼 것이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범죄의 객관적 실체를 밝히고 처벌하는 검찰의 업무와 달리 소년에게 적절한 보호처분을 위해 비행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법무부는 범죄예방정책국장에 검사가 아닌 보호직 공무원을 임용함으로써 탈검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범죄예방정책국(이하 범정국)의 주요업무는 청소년범죄 예방과 교육을 통한 재범 방지 및 사회복귀 지원이다. 소속기관은 소년원과 소년분류심사원, 청소년비행예방센터, 보호관찰소 등이 있다. 탈검찰화 추진 전에는 수사와 기소의 전문가인 검사들이 수십 년 동안 범정국의 국장과 과장 자리를 독점해왔다.

권력기관인 검찰이 사회적 소외계층인 비행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범정국의 인사와 예산권을 가지게 되면서, 검사장과 법무부 소수 직렬 공무원 사이의 위계적·수직적 구조가 조직 문화로 공고히 자리 잡게 된다. 핵심 보직인 범정국장은 1년마다 새로 부임했다. 업무 파악이 끝나고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단계에서 조직의 수장이 매번 바뀌는 것이다.

경력관리를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국장과 과장들은 자신들의 재임 중 수용사고 없이 조직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와 실적도 올리기를 원할 것이다. 따라서 범정국의 정책이 일선 기관인 소년원과 보호관찰소에 근무하는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 전시행정과 복지부동이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소속기관을 실적으로 줄 세우고, 이 실적들을 홍보하기 좋은 행사로 포장해서 언론에 배포하기도 했다. 수직적 조직 문화 속에서 창의적인 기획을 제안하거나 잘못된 정책과 제도를 혁신할 의지나 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보호소년의 교정·교화를 위한 소년원 과밀수용 해소와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 재범률을 낮추기 위한 교육과 보호관찰의 내실화 같은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관한 혁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호소년의 교육과 재활, 시설 처우와 개방 처우의 비전문가인 검사들이 범정국의 혁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검찰의 범정국 핵심 요직 독점은 검사들의 경력관리를 위한 타 기관 파견근무가 정부부처와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책은 국민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지난해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과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국민의 관점은 확인되었다. 관용 없는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청와대는 보호처분의 내실화와 활성화를 통한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청소년 범죄의 재범률 상승으로 이들을 위한 시설 처우와 개방 처우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고, 미래의 성인범죄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국민이다.


비행청소년을 교정·교화하여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는 일은 보호직 공무원으로서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헌법 제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이제 검사들이 물러났으니 국민을 설득하고 범죄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을 혁신하는 건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들의 책임이다.

비행청소년 교육과 생활지도의 전문가인 담임교사, 범죄학과 사회복지학 전공 석사와 박사, 보호직 행정고시 합격자, 전문분류심사관,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상담조사관, ... 범정국의 비전과 임무를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보호직 공무원들이다. 이들이 법무부 탈검찰화를 계기로 소통과 토론을 통해 조직의 수직적 구조를 수평적 구조로 혁신하여 법무행정의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물론 국민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사회적 약자이자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 그 중에서도 비행청소년에 대해 여론은 관용없는 엄벌이라는 낙인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내놓습니다. 소년법 폐지에 반대합니다.
#탈검찰화 #소년법 #소년원 #학교폭력 #비행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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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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