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가 뭐 어때서? 이름 덕분에 꿈도 이뤘는데

[공모 - 이름 때문에 생긴 일] 둘리 때문에 놀림 받았지만... 그래도 내 별명이 좋은 이유

등록 2018.05.24 15:51수정 2018.05.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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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희동이라고 합니다."

"희동이요? 하하하."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듣더니 빵 터진다. 이어서 기어이 한마디 덧붙이고 만다.

"둘리의 그 희동이?"

끄응. 벌써 30년 넘게 들어온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제는 질릴 법도, 잊힐 만도 한데 사람들은 여전하다.

뭐, 그래도 이제는 익숙하다. 덕분에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름 세 글자만으로 대화를 10분 이상 끌어간다. 내 이름을 듣고 웃으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느니(둘리는 1983년생이다), 둘리의 희동이는 고희동이 아니라 박희동이라느니(고길동은 희동의 고모부, 그의 아내 이름은 박정자다) 하면서. 영업사원으로서 사람을 만날 때, 강사로서 강연을 시작할 때 이만큼 좋은 아이템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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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공룡 둘리바로 그 희동이다 ⓒ 둘리뮤지엄


비극의 시작

지금이야 사람들의 반응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처음 나의 이름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때는 절망적이었다.

1987년,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KBS는 당시 <보물섬>에 실렸던 당대 최고의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만화영화로 방영하고 있었다. 그날은 도우너가 깐따삐야별에서 바이올린 모양의 타임코스모스를 타고 둘리네를 방문했던 날이었다.

둘리가 도우너에게 창 너머 낮잠 자고 있는 고길동을 가리키며 우리 집 애완동물이라고 소개한 뒤 우주선으로 돌아왔는데, 희동이가 그만 녀석의 타임코스모스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걸 본 도우너가 화가 나서 희동이에게 던진 한마디.

"개동인지, 개똥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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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동의 만행바로 그 장면 ⓒ KBS


낙인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 친구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개동이 아니면 개똥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다 말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큰 착각이었다. 개동이, 개똥이는 별명이 되어 기약 없이 날 따라다녔고, 난 집에 가서 틈만 나면 어머니께 이름을 지은 큰아버지를 원망했다. 왜 하필 이름을 희동이라고 지어서 이런 수난을 받게 하는지. '희'자 돌림에 하고많은 글자 중 왜 '동'을 넣었는지.

예전에는 동녘에서 빛난다는 뜻을 가진 내 이름이 좋았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었다. 이름을 부르거나 소개하는 자리가 있으면 슬슬 피했다. 만화에서 나온 이름은 10살 꼬마에게 콤플렉스가 되었다.

콤플렉스의 극복

이런 나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우선 어머니는 과거에 개똥이와 말똥이, 소똥이가 많았던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유아사망률이 높던 옛날, 이름을 부르면 귀신이 데려갈 수도 있다고 귀한 아이일수록 일부러 천한 이름을 썼다나. 그것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어머니의 이야기는 위로가 되었고, 때마침 MBC <전원일기>에 나오는 '개똥이'는 어머니의 설명에 힘을 보탰다.

또한 어머니는 개똥이란 별명이 의외로 내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셨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어쨌든 별명이나 이름으로 상대방이 나를 잊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인 듯했지만 의외로 어머니의 말씀은 내게 큰 용기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조언을 그다음 해 4학년 임원선거에 적용시켰다. 학기 초 데면데면한 친구들에게 별명을 스스로 이야기하며 시선을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임원이 되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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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친구의 선물희동이를 그려주기도 했다 ⓒ 이희동


이후 난 친구들에게 스스로를 개똥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친구들이 이름대신 별명을 불러주면 오히려 기꺼워했으며, 중학교 회장선거 때는 포스터에 <아기공룡 둘리>의 희동이와 함께 개똥이를 박아 넣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중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들은 아직도 날 개똥이라고 부른다.

동병상련의 그 이름

개똥이란 별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희동이의 운명. 그러나 더 웃긴 사건은 세월이 지나 이메일이 보급되면서 벌어졌다.

처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 때였다. 이름을 그대로 쓰는 대신 닉네임을 설정하라는 안내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개똥이'를 쓰려는데 어라? 이미 누군가가 개똥이를 닉네임으로 쓰고 있었다. 그럼 '개동이'는? 역시 누군가가 이미 선점했다. 설마?

그랬다. 그것은 모두 전국의 희동이 짓이었다. 희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희동이가 이미 개똥이와 개동이를 여러 가지 변주와 함께 등록해 놓은 상태였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를 통해 전국의 희동이를 찾아들어가보니 개똥이를 언급해 놓은 이들도 꽤 많았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희동이들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닉네임을 개똥이로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들도 나처럼 어떻게든 그 콤플렉스를 극복했을 것이다. 개똥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첫인상들을 남기고 있겠지.

전국의 희동이들이여. 힘을 내시라.

사족: 그나저나 이렇게 이름으로 한 번 홍역을 치르고 나니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을 때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까꿍이가 딸인 걸 알게 된 이후 내가 가장 선택하고 싶었던 이름은 '단아'였지만 차마 이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성을 붙이고 나면 '이단아'이지 않은가. 포기하는 수밖에. 이름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던 아빠로서 딸에게 똑같은 고통을 줄 순 없었다. 전국에 이름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 모두 파이팅!
덧붙이는 글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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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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