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5월의 가로수를 댕강댕강... 이 방법밖에 없나요?

고압송전선에 닿는다고 나무 마구 자른 한전... 문제는 생태적 감수성

등록 2018.05.21 15:05수정 2018.05.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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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순환의 질서를 보여주는 나무의 위대성

강가에 떠밀려온 통나무 하나를 만났다. 오래된 나무는 썩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듯 새 생명이 살아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본다. 고목 덩걸에 홀씨가 날아들어 그곳에서 싹을 틔운 것이다. 한둘이 아니다. 무리지어 피어 있는 이 식물은 뭘까? 궁금증이 일다가 이내 "아, 나무의 부활이구나" 싶어진다.

나무는 죽어 썩어문드러지면서 비옥한 터전을 만들었고, 그 위에 새 생명들이 둥지를 튼 것이다. 나무의 찬란한 부활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무는 흠 잡을 게 없다. 자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꽃을 피워 꿀과 열매를 제공한다. 거기다가 맑은 공기와 미세먼지를 줄여주는 중요한 역할까지 수행한다. 거기에 죽어서는 이처럼 새 생명의 토대가 되어준다.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까. 나무 같이만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이유다.

이쯤 되면 나무의 위대성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귀한 나무들은 도심에서는 전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특히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가로수들이 말이다. 시원한 그늘과 맑은 공기를 만들어줌에도 인간들의 무관심과 혹은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뿌리를 못 뻗게 하거나 가지를 댕강댕강 잘라버린다.

신록을 뽐내는 5월의 가로수를 댕강댕강 잘라버린 한전

신록으로 물든 5월의 나무는 정말 싱그럽다. 연한 초록빛을 뽐내며 싱그럽게 빛나고 있는 도심의 나무들은 도시인들의 큰 위안이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 신록이 막 물든 이 나무들이 댕강댕강 잘리는 일이 벌어졌다.

가지가 모두 제거된 채 거의 원 줄기만 남은 채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는 원미구 소사동의 가로수들 ⓒ 김레베카


도로 왼쪽편 가로수들은 죄다 가지가 잘려나갔다 ⓒ 김레베카


문제의 현장이 발생한 곳은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 도로변이다. 지하철 역곡역에서 멀지 않은 **맨션 앞 도로변 가로수로 심긴 아름드리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의 가지들이 댕강댕강 잘려나간 것이다. 둥치만 남은 채 초여름날의 풍경과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서 있는 모습이 기괴스러워 보인다.


문제의 작업을 지시한 곳은 한국전련(이후 한전) 부천지사였다. 한전이 "전선줄이 나무에 걸쳐진 채 비가 오면 누전이나 감전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작업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제제기를 한 이 동네 주민인 김레베카 씨는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

"어디선가 육중한 가지치기 차량이 세 대나 와서 집앞 버스정류장 길가의 큼지막한 아름드리 가로수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있었어요. 꼭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요? 전선을 지중화할 수 없나요? 전선줄의 위치를 바꿀 생각은 못하나요? 이것이 정녕 불가능한가요? 이건 나무들에 대한 '테러'와 같습니다."

실지로 그녀가 공개한 사진 속의 양버즘나무는 몸의 둥치만 남고 가지들은 모두 잘려나가 있었고, 나머지 나무들도 같은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편 가로수들은 모두 댕강댕강 잘려나간 채 둥치만 서 있었다.

인부들에 의해 잘린 가로수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 김레베카


가지는 대부분 잘려나가고, 일부 가지 사이로 고압선로를 안고 자라고 있는 가로수 ⓒ 김레베카


꼭 이런 식으로 벌채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가

"방법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요즘 많이 하는 전선 지중화를 할 수도 있고, 고압선이 가로수와 맞닿는 부분만이 문제인데 피복처리를 다시 하든 전선을 옆으로 옮기든 다른 해결책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가로수들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변수'가 아니라 '상수'란 말입니다. 그럼 당연히 가로수는 놔두고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 마땅한 겁니다. 최소한 사전에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묻기라도 했었어야죠."

그녀의 말대로 전신주의 위치를 바꾸거나 전선을 피복하는 방법은 생각지 못하는 것일까? 하다못해 다른 도시에서 하는 것처럼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군 나목인 상태에서 문제의 작업을 했더라면 주민들이 받는 '충격'과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잎이 훤히 돋아나 갓 새 생명을 뽐내고 있는 이 시기에 이런 작업을 꼭 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실지로 서울의 대로나 다른 도시의 도심에서는 전선줄이 자취를 감추었거나 있더라도 나무의 가지를 살려서 조화롭게 관리하기도 한다. 이곳처럼 가지를 모조리 잘라버리는, 김레베카씨의 격한 표현처럼, '테러'와 같은 행위를 벌이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한전 부천지사 담당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나무들이 전선에 닿게 되면 그런 상태에서 비가 오면 단전이나 감전 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나무를 벌채하는 것이고, 시민들의 우려를 이해는 하겠지만, 그런 우려보다는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부천시와 협의하에서 하는 것이다. 벌채는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천시에서도 해마다 하고 있다."

단전 사고가 난 적이 있고, 아직까지 감전과 같은 인명사고는 없었다는 것이 한전 측의 추가 설명이었다. 대안에 대한 물음에도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선피복은 아직까지는 단선을 피할 만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선피복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라 본다. 전선 위치도 전신주를 설치할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변경은 어렵다. 다만 지중화 문제는 부천시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요청은 없었다."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부천시의 입장도 궁금했다. 부천시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시도 벌채작업을 한다. 상가에서 간판을 가린다고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양버즘나무 같은 경우는 잎이 워낙 무성하게 잘 자라기 때문에 지금 시기에 벌채작업을 해도 나무의 생장에서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 판단해서다. 물론 보기에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시에서는 수형도 고려해서 원추형으로 자르고 있다. 한전의 경우는 비용 문제 등으로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한 것 같다. 시민의 우려도 잘 알겠다. 시에도 그런 우려를 잘 반영해서 앞으로 벌채 작업을 할 시에 참고하도록 하겠다."

문제는 이 나라의 생태적 감수성

나무에다 철제빔을 철사로 매달아 놓았다. 철사가 나무의 살에 밖혀 있다. 이렇게 나무가 자라났다. 이런 짓이 인간에 의해 버젓이 자행된다. ⓒ 배문


가로수의 뿌리째 아스팔트를 발라버린 대구 동구청의 한심한 작태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은 우리 사회가 나무나 야생동물들과 같은 소위 '비인간존재'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는 상가들의 민원 때문에 나무를 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나, 나무가 한창 생장할 시기에 벌채를 하면서도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숙제가 아닌가 싶다. 결국 이것이 이 나라 생태의식의 현주소인 것이다.

가뜩이나 한전은 지난 2014년 경남 밀양에서 765kV의 초고압 송전선로 공사를 강행하면서 많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은 역사가 있다. 청도 삼평리에서는 마을을 지나가는 단 한 기의 345kV의 송전탑만이라도 지중화해 달라는 요구를 철저히 묵살한 역사가 있다. 한전은 저 초고압 전기로 인해 야기될 주민피해에 대한 주민들의 합리적 요구마저 철저히 묵살해 오지 않았던가? 까짓 나무들쯤이야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 존재들일지 모른다.  

한전은 지금이라도 주민의 요청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송전선로 지중화를 적극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도 '공공재'이듯 도심의 나무들 또한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또한 생태적 각성이 요구된다. 우리 인간에서 무수한 혜택을 제공하는 나무에 대하는, 두 눈으로 바로 볼 수 없는, 기괴한 행태를 보면 정말 같은 인간임이 부끄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로수 뿌리 위로 아스팔트를 바르질 않나, 철선이 박히게 한 채 나무를 방치해두지 않나, 이처럼 나무들을 댕강댕강 잘라버리질 않나. 말 못하는 나무들이라 해서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생태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증언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생태적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로수 #무단 벌채 #나무 #한전 #원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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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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