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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동 친구들과 정희네가 그립다

<나의 아저씨> 종영 소감

18.05.21 17:51최종업데이트18.05.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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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저씨> 포스터 ⓒ tvN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끝났다. 동훈(이선균 분)과 지안(이지은 분)은 행복해 보였다. 주요 등장인물도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듯해서 마음이 편했다. 행복한 결말이다. 동훈이 흘린 눈물이 시원해 보였고 지안의 환한 웃음은 편해 보였다. 모두 행복해진 모습에 덩달아 행복해진 엔딩이었다.

다만 이선균 친구가 하는 동네 술집 '정희네'가 그리워질 듯했다. 후계동 친구들이 모이던 정희네. 맘 졸이게 하거나 아픈 장면 이후에 정희네만 나오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내뱉는 초딩스러운 대사들, 그렇지만 유치하게 들리지 않고 따스함이 드러나던 공간.

한 칼럼니스트는 '후계동'과 '정희네'를 '판타지' 공간으로 해석했는데 그 의견에 공감한다. 그런 곳에 가고 싶지만 찾을 수 없어 못 가는 그런 곳.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현재의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고 반겨주는 그런 곳. 현실 세계에 없다는 것에 내기를 건다.

우리는 정희네와 같은 곳을 꿈꿔 왔다

후계동의 '정희네'가 사랑을 받았던 건 그만큼 시청자들도 그런 곳에 가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 왔다. 계급장 떼고 사람을 반겨주는 곳. 익명이지만 누구냐고 물어보지 않는 곳. 내 얘기 들어주고 무조건 편들어주는 곳.

다만 현실 세계가 아닌 온라인 공간이었다. 온라인에는 그런 곳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의 'PC 통신 채팅방', 2000년대의 '인터넷 카페', 2010년대의 '밴드'까지. '채팅방'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이 준 매력은 '익명성'과 '수평성'이다. 입장한 모두가 '닉네임'으로만 통했고 '방장'이 있긴 했지만 동등했다. 주로 같은 관심사로 모였지만 '일상다반사'를 대화하는 방도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같은 방에서 같은 관심사를 얘기하는 순간 오래 친분을 쌓은 친구 이상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프라인 번개로 만나게 되고 어색함 따위는 같은 관심사로 날려 버린다. 그러나 얼굴 맞대면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로 오프라인 모임을 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채팅방과도 멀어지고, 마침 발전하는 인터넷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다.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자 네티즌의 유대감은 더 강해졌다. 세상의 스펙이나 신분은 상관없이 모두 '님'으로 불리며 존중받는다. 세상의 가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의 관심사만으로 인정받는다. 이슈가 쌓이면 온라인 활동만으로는 부족해 오프라인 모임도 만들어진다. 온라인 대화만으로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을까 싶도록 분위기가 뜨겁다. 번개로 유대감이 더욱 깊어지지만 역시 얼굴 맞대면 불거지는 일들 때문에 한계에 봉착한다. 때마침 모바일이 활성화하며 SNS의 세계로 빠진다.

SNS는 내가 중심인 공간이다. '나만의 공간'에 충실하다 보면 '우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모이게 된 '밴드'가 그 '우리'를 단단하게 뭉치게 했다.

'밴드', 특히 초등학교 동창밴드가 '정희네'와 가장 가까운 공간일 것이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시기에 성장해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유대감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모든 친구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다. 같은 학교 동창이면 모든 게 용서된다. 사회나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친구들도 밴드에서만큼은 모든 걸 칭찬받는다. 내가 칭찬 들었으니 남에게 칭찬으로 돌려준다. 품앗이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도 날이 지나며 생기는 오해와 소외는 피할 수 없다.

정희네와 같은 곳은 어디에 있을까?

▲ 나의 아저씨 방송 캡처 ⓒ tvN


이런 곳들에서 생긴 단점만 빼고 모은 공간이 '정희네'인 듯. 온라인의 차가움을 오프라인의 따뜻한 체온이 있는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현실 세계를 그렸지만, 많은 이들이 찾고 싶은 판타지 세계를 그렸다. 그런데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떠나서 그런 곳을 만나기는 왜 어려울까? 후계동의 넉넉한 친구들과 모든 걸 받아주는 정희 같은 주인이 없기 때문일까?

내가 어디서 얻어맞고 오면 만사 제치고 뛰어올 선후배들, 기쁜 일이 있으면 가게 문 닫고 동네잔치를 열어줄 친구들, 아픈 일 생기면 묻지 않고 함께 울어줄 친구들이 있는 '정희네'와 같은 공간을 그리워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곳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리는 왜 '정희네'와 같은 곳을 찾아 나설까? 온라인과 모바일이 점과 점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지만, 체온과 체온 숨결과 숨결을 이어주진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언제보다 많은 인연을 관리하며 사는 현대이지만, 얼굴 맞대고 상대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는 인연은 줄어들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곳을 그려준 <나의 아저씨>가 끝났다는 많은 이의 아쉬움을 반영하듯 재방이 이어지는 주말과 징검다리 연휴다. 놓친 행간과 복선을 복습할 시간이 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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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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