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심' 학생이었다, 이름 때문에

[공모-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고기볶음'부터 'KGB'까지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 변천사

등록 2018.05.30 08:51수정 2018.05.3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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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예비소집이 있은 지 며칠 뒤 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우리는 군대에서 바리깡 좀 밀었다는 동네 아저씨가 차려놓은 나무 의자 위에 앉았다. 하얀 보자기를 둘러 쓴 아이에게 아저씨는 뭐가 신났는지 싱글벙글 거리며 물었다.


"빡빡이로 할까, 이부가리로 할까?"
"스포츠머리로 해 주세요."
"1학년이 스포츠가리하면 선배들이 건방지다고 해서 안 돼."
"…."


이부는 두 푼을 뜻하는 말이었고, '가리'는 머리를 쳐올려 깎는다는 일본말이었다. 한 푼이나 두 푼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아이는 빡빡 밀어버리는 빡빡이 대신 이부가리를 택했다. 그 아이는 해병대 상륙돌격형 머리처럼 앞머리만 살짝 남겨지는 머리를 보며 차가운 바리깡이 목덜미에 닿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곧 달라질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 아이를 보던 나 역시 아저씨의 바쁜 손놀림에 뒤통수부터 윗머리까지 시원하게 밀려나가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또래들보다 훨씬 긴 머리를 하고 다녔던 나는 뭔가 잃어버리고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멋있게 깎아준다'던 아저씨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중학교 수학 첫 시간, 까까머리들을 앞에 두고 출석부를 교탁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잠시 뜸을 들인 선생님은 우리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님을 강조하며 어른스러움을 요구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이제부터 제군들을 누구누구 '군'이라고 부르겠다. 어린이들처럼 길게 대답해도 안 되고, 짧고 크게 답하기 바란다. 알았나?"
"네~~"
"앞으론 좀 더 짧게 대답해라. 이름을 부르겠다."



한껏 무게를 잡고 가나다순으로 이름을 부르던 선생님은 세 번째 이름 앞에서 잠시 멈췄다.

"고기복, 고기~복, 고기복군, 고기볶음?"

고개를 갸웃하더니 혼자 중얼중얼 읽은 이름은 한바탕 웃음과 함께 그 후 내 별명이 되고 말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골 학교엔 터주 대감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와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기 마련이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어 검정 교복을 입고 등교한 첫날부터 나는 모두의 눈에 확 띄는 '관심' 학생이었다.

말썽꾸러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담임 선생님부터 국어, 영어, 주요 과목 선생님 모두 학교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이여서 그랬다. 그분들은 나만 보면 장난삼아 불러 세우곤 했다. 귀엽다고 아는 척하는 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름' 때문이었다.

국어 시간이었다.

"1번 강**!"
"네~"
"2번 강**!"
"네~"


1번과 2번까지는 여느 선생님과 다를 바 없었다. 3번을 부를 차례에서 선생님은 번호를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 친구였던 선생님은 굳이 그 관계를 밝히셨다.

"아버님 함자가 어떻게 되시나?"
"상자 춘자입니다."
"상춘씨 자제분! 아버님께 안부 전하시게!"
"네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1학년짜리가 화가 난 듯이 답하자, 선생님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셨다.

"아버님이 높을 고(高에) 터 기(基,) 복(福은) 복복 자로 이름을 지으셨지?"
"네~"
"사람 이름에 복복 자는 쉽지 않은데, 터 기가 있어서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아버님이 이름을 참 지었어. 상춘씨 자제분, 이름이 참 좋아."


국어 선생님이 성명학까지 강의하신 덕택에 수업이 끝났을 때 내 별명은 '상춘씨 자제분, 고기볶음'이 돼 있었다. 그후 국어 선생님은 교과서 읽을 사람을 지적할 때, 학생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으면 '상춘씨 자제분'을 찾았다. 더 나아가 교무 주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은 내가 교무실에 갈 때마다 불러 세웠다. 그때마다 하는 말은 똑같았다.

"아버님께 안부 전하시게."
"네~~."


담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교과서 표지와 노트에 이름을 영어 약자로 적게 했다.

"영어 약자를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는 학생은 말해요. 선생님이 가르쳐 줄게요."
"선생님, 제 이름 약자를 KKB로 하면 돼요?"
"음, 이름은 기억하기 좋아야 하니까 너는 KGB로 하는 게 좋겠다."
"네에~?"


그 순간 '상춘씨 자제분, 고기볶음'은 비밀스런 소비에트연방 첩보요원이 되고 말았다. '고기볶는 KGB 요원이라니, 요리가 스파이의 덕목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교회 학교 부장 선생님이기도 했던 담임은 일주일 내내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리 만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수단이라던 선생님이 고맙지만, 그때만 해도 얼마나 얄밉던지, "선생님, 저는 다른 이름으로 할래요. 그냥 진짜 영어 이름으로요"라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학교 첫날 첫 시간에 이미 학급 모든 친구들은 내 이름을 기억했고, 이어 아버지 이름까지 확실히 알고는 아버지 이름으로 나를 부르곤 했다. 수업시간마다 내 이름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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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서명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명에 고기뼈다귀 형태를 그려 넣었다. ⓒ 고기복


미술 선생님은 중학생이 됐으면 서명 하나쯤은 만들어 둬야 한다며 각자 이름과 개성을 살려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리곤 나를 콕 집어 '고기'를 살려 만들라고 주문했다. 반항기기 작동했던 나는 앙상한 고기뼈다귀 아래에 '복'자를 적어 넣었다. 영어 서명은 KGB를 필기체로 적고, 한자 서명은 '복'자를 한자로 적어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름 덕을 참 많이 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떠난 지 30년이 넘었다. 평소 교류라도 빈번하면 모르겠지만, 동창생들 이름마저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동창들은 내 이름 석 자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동창들뿐만 아니라 군 동기생들도 마찬가지다. 상륙돌격형 머리에 삐쩍 마른 얼굴, 똑같은 군복을 입고 지냈던 동기들인지라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을 텐데도 '고기복' 이름만큼은 다들 기억해 준다.

중학교 때 굳이 아버지 이름을 불렀던 국어 선생님도 내가 이름 때문에 곤란을 겪을까 봐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도 내 서명은 고기뼈다귀 아래에 '복'을 쓴다. '고기 복'이라고. 나는 내 이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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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서명 복자를 고기 모양 아래에 적기도 한다. ⓒ 고기복


덧붙이는 글 <공모-이름 때문에 생긴 일>
#이름 #별명 #고기 #동창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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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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