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라 수입이 두배? 저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워킹맘이 워킹맘에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계형 워킹맘, 당신을 응원합니다

등록 2018.05.28 22:20수정 2018.05.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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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 남편은 좋겠어요. 차장님이 돈을 버시니, 수입이 두 배인 거잖아요."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남자 동료가 나에게 말하더라.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맞벌이야. 수입이 두 배일 거라고 생각하지. 그 남자 동료의 말은 전업주부인 자신의 아내도 돈을 벌어 왔으면 좋겠다는 속내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맞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어.

"우리 집 남편은 아직 소득이 없어요. 제 월급으로 먹고사는 걸요."

순간, 주위 분위기가 썰렁해지더라. 내가 둘째를 낳은 후에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몇 년간 수입이 전혀 없었어. 말이 사업이었지, 소득이 없으니 백수나 마찬가지였지. 돌아오는 대답이 "힘드시겠어요" 였어. 그래서 대답했지. "사는 게 쉬운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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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맞벌이야. 여자 혼자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을 안 하지. ⓒ rawpixel, 출처 Unsplash


사실이 그렇잖아. 인생 쉽게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 사는 게 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고. 각자 형태와 시기만 다를 뿐, 어려운 고비 넘겨가면서 사는 거잖아. 남편이 돈을 벌고, 여자가 전업주부라고 해서 사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혹은 맞벌이 한다고 해서 쉬운 것도 아니고.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은 생계를 위해서 회사를 다닐 거야. '생계'라는 말이 들어가면 뭔가 비장한 느낌이 들어. 먹고산다는 것, 살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무척 숭고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오늘은 생계형 워킹맘들을 위한 글을 써볼까 해.


생계형 워킹맘이란

주변에 있는 워킹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들이 '생계형 워킹맘'이라고 이야기를 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생계형은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를 생계형이라고 봐. 간단하게 말해서, 여자가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형태지.

'생계형으로' 직장에 다니는 것과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출발선이 달라. 내 월급이 아니면 우리 가족이 당장 사회적 빈곤자로 떨어질 위기에 있다는 것은 어떤 노동강도와 스트레스도 견디게 만들거든.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일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표를 불쑥 낼 생각을 할 수 없어. 말 그대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버텨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매달 나오는 내 월급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일을 대하는 무게감이 다르지 않을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여성의 일을 보는 시각은 대부분 '맞벌이'에 맞춰져 있어. 그러다보니 생계형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시선들까지 견뎌내야 하지. 생각해보면, 이게 결국은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을 내가 나한테 들이미는 거야. 그래서 나름 뭔가 이유를 찾기도 해. 자아 발견이라던가, 경력이라던가, 비전이라던가 하는 말들 말이지.

그런데 일하는 거에 너무 거창한 의미 두지 말자.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 그건 숭고하고 멋진 일이야. 부모로서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부과된 책임이야. 사실 사람이 살면서 소득이 없는 시기는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어.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여자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고, 이혼을 했을 수도 있고, 젊은 시절이든, 나이 들어서든. 혹은 여자, 혹은 남자. 누구나 돈을 벌지 못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어.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든 시기를 같이 겪어내는 것, 그것이 가족 아닐까? 어쨌든 먹고사는 건 해결하고 있는 거잖아.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 그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것이라고 봐. 

생계형 워킹맘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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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걸 해결해야 여유도 생기고, 미래도 꿈꿀 수 있다 ⓒ hannaholinger, Unsplash


첫째,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고 인정할 것.
너도 알다시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부자와 빈자가 평등하지 않고,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지 않지. 누군가는 분명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있을 거고, 누군가는 정말로 수입이 두 배라서 집을 늘려가는 속도가 빠른 친구도 있을 거야. 그런데 비교하지 말자. 남편 소득 비교, 아이들 성적 비교는 답이 없어. 비교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둘째, 집안일에 대해서 당당히 요구할 것.
누군가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집안일에 관해서 너무 잔소리하지 말라는 충고도 해주더라. 그런데 여자가 전업주부인데, 여자 기를 살려주라고 충고하지는 않잖아? 집안일은 같이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집안일과 남편 기죽는 것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 남편이 집에 있어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니까 당당히 요구하자. 

셋째, 자신을 위해 투자할 것.
의외로 생계형 워킹맘들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기가 어려워. 바쁘기도 하지만, 맞벌이보다 소득이 적으니 아끼고 싶은 거지.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가정경제를 위해서도 좋아. 자기계발이든 외모든, 건강이든 경쟁력이 있어야 사회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세상이니까. 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 아끼지 말자.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다시 맞벌이가 되었어. 그래서 정말 수입이 두 배냐고? 아니야. 여전히 내 월급이 남편의 수입보다 많거든. 그렇다고 내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야. 그래도 난 여전히 일상이 평온히 흘러가는 지금이 좋아. 일에 거창한 의미를 두지 않고, 무심(無心)으로 일하게 된 것도 좋고. 힘든 시기를 거쳐서 얻은 결론이지. 평범한 일상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

그리고 절대로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환경 덕분에 지금의 나는 여전히 경력을 유지하고 있고, 남편은 남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단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그 후에야 나도, 내 아이도 꿈도 꿀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오늘 그대의 출근길은 위대하다고 말해주고 싶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렸습니다.
#워킹맘 #에세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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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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