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앞 담배 금지, 이게 다 광해 때문이라니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26] 담배 끊기를 참 잘했다 ①

등록 2018.05.26 17:41수정 2018.05.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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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이러지 좀 맙시다. ⓒ unsplash


출근길에 바람 부는 골목길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맞바람에 담배 연기는 고스란히 뒤로 날아왔다. 그 남자 바로 뒤에서 걷던 여자가 담배 연기를 피해 손을 휘저으며 콜록거렸다. 한 차례 여자를 괴롭히고 나에게 온 매캐한 담배 연기는 콧속을 파고들고 눈을 찔렀다. 따끔거리는 눈을 끔벅이며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거리에서 흡연자를 만날 경우 걸음을 빨리하여 앞서가거나 걸음을 늦추어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방법밖에 없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 연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도 있다. 흡연자는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거리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흔하게 본다. 사방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담배 연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남의 몸속을 훑고 그 입을 굴뚝 삼아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와 냄새를 맡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보통은 아무 말 없이 지나치지만, 와락 짜증이 날 때는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맛살만 찌푸릴 뿐 달리 방법이 없다. 괜히 한마디를 했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는 세상이다.

담배와의 질긴 인연,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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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쎄씨봉> 중 한 장면. ⓒ 제이필름 , 무브픽쳐스 , 영화사 좌중간


담배를 피우면서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본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은 자성의 쓸쓸함이 있다. 40년이 가깝도록 지속한 담배와 질긴 인연을 9년 전에 가까스로 끊었다. 담배를 끊기 전에는 나도 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즐겨 피웠었다. 그때는 내가 내뿜는 담배 연기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피해를 준다는 것을 정말 몰랐었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라서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흡연자들도 나처럼 담배를 끊는다면 틀림없이 길거리 흡연만큼은 백안시할 것이다.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비흡연자에게는 담배 연기가 참으로 싫은 것이다. 또한, 아무 곳에나 버리는 꽁초와 내뱉는 가래침도 참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처음 담배를 입에 댄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의 조무래기 때였다. 동네 형들이 담배 연기로 도넛을 퐁퐁 만들어 내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고 멋져 보였다. 강한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 꼬마들도 그것을 따라 해보고 싶었다. 꽁초를 주워 어른들이 안 보는 곳에서 불을 붙였다가 모두 역한 담배 연기에 캑캑댔다. 나도 한 모금 빨았다가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바람에 바로 땅에 내던져 버렸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맛없고 독한 담배를 피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소위 '노는 아이들'은 단속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웠다. 거기에는 금제(禁制)와 억압에 대한 반항의 성격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교칙을 함부로 깨뜨리는 음지의 파괴 행위는 멋스럽게도 보였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선 듯한 착각을 안겨주었다.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이따금 담배를 피워대며 열심히 도넛 만드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내가 돈 내고 직접 담배 따위는 사지 않을 것이다'라고. 냄새도 독하고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담배를 돈을 주고 사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담배 연기 도넛을 멋지게 만들어 내게 되었을 때는 이미 중독이 되어 있었다.

중학생 때 담배를 피우다 걸린 학생들은 주로 얻어맞거나 얼차려를 받았다. 나도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적이 있다. "정학을 당할래, 엉덩이를 맞을래?" 선생님은 양자택일하라고 했다. 몽둥이로 다섯 대를 맞고 한참 훈계를 들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지독한 골초였다. 자기는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담배 피우는 학생을 적발하여 엉덩이를 때리고 훈계하는 것이었다. 훈계를 들으면서 마음속에서 '자기는 피우면서...' 하는 불만이 생겼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흡연을 단속만 했지,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치명적인 해독에 대한 논리적인 교육은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담배의 해악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자는 으레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고 인식되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 오히려 별종 취급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은 음악다방의 전성기였다. 각 도심과 변두리 지역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음악다방은 20대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유리 상자 안에서 DJ가 신청곡을 틀어주었다.

테이블마다 한가운데는 큼지막한 재떨이가 놓여 있었는데, 재떨이가 꽁초로 수북하게 쌓이도록 피워대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담배는 아주 당연한 풍경이었고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택시는 물론이고 시외버스나 기차 안, 심지어는 병원 복도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당시 애연가들은 '식후 불연초(食後不煙草)면 만수무강에 지장이 있다'는 농담을 했다.

'사색의 어머니' '고독의 동반자'였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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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 '였다'. ⓒ unsplash


장발 단속을 하던 때, 고집스럽게 머리를 치렁치렁 길렀던 스무 살 무렵의 나에게 담배는 '사색의 어머니' 또는 '고독을 달래주는 좋은 동반자'였다. 그런가 하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었다. 담배가 없으면 안절부절못했고, 담뱃값이 없을 때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질구질하게 꽁초를 주워 피우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길거리 토큰 판매소에서 담배를 낱개로 팔았는데, '가치(까치)담배'라고 했다. 담배를 세는 단위를 '가치', '까치', '개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표준어는 '개비'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개비담배'가 아니라 '가치담배'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국어사전에도 무엇인가 앞뒤가 안 맞는 표제어가 상당하다.

우리 세대는 담배를 안 피우던 사람도 군에 입대하고서 피운 경우가 많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주변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군대 생활을 생각하면 화랑 담배가 떠오른다.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 모든 병사에게 한 달에 화랑 담배 15갑을 주는 배급제였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많이 피우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거나 건빵과 바꾸기도 했다. 화랑 담배 이름은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담았다고 한다. 가수 현인이 부른 <전우야 잘 자라>는 서정성과 비장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우리나라 전쟁 가요의 백미다. 6·.5 전쟁에서 죽어가는 전우를 끌어안고 목 놓아 부르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가사는 지금 음미해도 가히 절창이다.

훈련병 시절에 50분 훈련하고 10분 쉴 때 조교는 우렁찬 목소리로 "담배 일발 장전... 발사!" 하고 구호를 외쳤다. 땅개처럼 구르다 피우는 화랑 담배 한 대는 정말 꿀맛 같았다. 군대가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그런 특별한 맛을 느껴 보라는 것이 보급품으로 담배를 주었던 이유일 것이다.

담배와 군대 그리고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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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중 한 장면. ⓒ 델버트 맨


담배는 전쟁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 소품이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극화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의 허무함을 잘 표현한 영화다. 철조망과 바리케이드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서부전선의 한 전쟁터, 날카로운 포탄 소리가 적막을 깨며 포연이 낮게 깔린다. 그와 동시에 참호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이 어린 독일 병사의 긴장된 얼굴, 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일상적인 생활에 적응한 농부처럼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나오는 어느 선임 병사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보이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다" "전투 시 담배가 배급되면 그것은 곧 공격의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라는 인상적인 대목이 생각난다. 군인들은 지루함과 외로움, 불합리한 군대의 규율과 초조함, 불안과 공포 등을 잊기 위해 수시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사실 담배는 군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담배의 전매제도를 시행한 인물은 나폴레옹이다. 어느 날 그는 파티 석상에서 무척이나 화려한 옷차림과 귀금속이 반짝거리는 귀부인을 만났다. 그 귀부인이 담배장사의 아내라는 이야기를 듣고, 푸른 연기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담배가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매사업으로 확립했다.

또한, 담배가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50분 동안 행군하고 10분 쉴 때 담배를 피우라고 독려했다. 나폴레옹 군대에 담배는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소중한 물품이었다. 양차 세계대전 때 담배는 참전하는 군대의 필수 보급품이 되었다. 작전 돌입에 앞서 충분한 담배 확보는 지휘관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죽음의 공포로 뒤덮인 전장에서 병사들끼리 나눠 피우는 담배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전우애를 높이는 효과가 큰 것으로 간주하였다.

군 생활 때 목이 터지라고 부르던 군가 중에 "한 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1981년 겨울 장병 처우 개선 차원에서 일반 담배인 '은하수'와 '한산도'가 배급되면서 화랑 담배는 사라져 버렸다. 새로 배급된 '한산도'는 '은하수'보다 더 독했는데, 충무공 해전도(海戰圖) 디자인이 지금도 생생하다.

담배에 인이 박인 나는 독한 한산도를 피웠다. 보급품만으로는 한참 부족하여 안 피우는 병사들에게 사정하여 보충했는데, 그 대가로 PX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주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병사는 일반 담배를 사서 피웠다. 휴가병들이 귀대할 때는 담배를 몇 보루 사 와서 한 갑씩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담배 좀 작작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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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 리얼라이즈픽쳐스


의학자 샌더 길먼과 문화인류학자 저우 쉰이 편집한 <흡연의 문화사>는 역사학, 문학, 미술사, 인류학, 음악, 영화 등 각 분야 전문가 33인이 공동 저술했다. 이 책에는 담배에 관한 학설, 정설, 속설, 잡설 등이 망라되어 있다. 담배뿐만 아니라 아편, 대마초, 코카인 흡입 등 수천 년 동안 연기를 마셔온 인간 행위의 양상과 그 속에 깃든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흡연의 쓰임새는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서기 7세기경 마야 신전의 벽에 제사장이 담배를 피우는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애초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제도에서 의례나 의술 행위에 활용되던 '니코티아나 타바쿰'이 1492년 신대륙을 찾아 나선 콜럼버스 선원들에게 선물로 전해졌다. 선원들이 발음을 잘못 알아들어 '타바코'라고 부른 식물의 잎사귀가 유럽을 거쳐 삽시간에 아시아, 아프리카로 전파됐다. 담배처럼 널리 퍼지고 인간을 구속한 것은 신을 빼고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한반도에는 조선 중엽에 들어와서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그즈음 담배는 건강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유익한 약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동의보감>에 "연초는 맵고 열이 있어 장담, 한독, 풍습을 몰아내며 살충 효과가 있다"라고 담배의 효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익한 약재였기 때문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사이좋게 담배를 피웠다. 아무 앞에서나 담배 피워도 흠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담배를 피우고, 서당에서 훈장과 학도가 맞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조정 공신들도 마찬가지여서 조회를 하는 정전이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그런데 광해군은 담배 연기를 싫어했다. 신하들이 줄곧 담배를 피워 대자 참다못한 광해군이 격분해 "담배 좀 작작 피워!"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계기가 돼 담배에 관한 예법이 생겼다고 한다. 그 후 윗사람 앞에서는 감히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차츰 비천한 자는 존귀한 사람 앞에서, 젊은이는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금물이 되었다.

조선 사회를 일거에 중독시킨 담배는 실로 '요망한 풀'이었다. <인조실록>에 '요초'(妖草)로 기록되어 있다. 처음엔 남쪽에서 들어온 신령스러운 풀이라는 의미로 '남령초(南靈草)'라 했다. 그 후 개화기 때까지 '담바고'로 불리다 '담배'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기가 막히는 속설들이 담배의 인기를 높이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다. 호학의 군주 정조는 유명한 골초였다.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 민생에 이용되는 것으로 이만큼 덕이 있고 이만큼 공이 큰 것이 어디 있겠느냐?" 정조는 담배를 배척하는 논리에 맞서 적극적으로 담배가 몸에 좋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탓인지 민간에서는 담배가 편두통, 매독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담배의 인문학적 고찰 #흡연의 문화사 #흡연의 시대는 갔다 #담배, 죽음을 앞당기는 키스 #담배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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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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