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유럽의 르네상스 화풍, 마치 사진을 보는 듯

[그림, '같이vs가치' 보기⑦] 얀 반 에이크 vs 한스 홀바인

등록 2018.06.07 18:19수정 2018.06.11 14:56
0
원고료로 응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술을 부활시키고자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원근법의 발전과 인체에 대한 탐구를 통해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깊이와 자연스러움을 만들어내고자 했다면 네덜란드와 독일 등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는 추구하는 바가 다소 달랐다.

자연주의를 지향하되 디테일이 살아있는 섬세하고 정교한,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구현해내는 것으로 발전해갔다. 거기에 도덕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상징을 그려 넣어 의미를 전달하거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특징이 돋보인다.


북부 유럽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얀 반 에이크는 초기의 종교화와 더불어 이후 초상화로 명성을 날렸다. 옷감의 섬세한 표현이나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그려 넣음으로써 사실감을 불어넣은 그의 그림들은 유화를 적극 활용한 기술적 테크닉으로 완성됐다. 계란 대신 오일을 안료의 용매로 사용한 유화는 느리게 마르기 때문에 덧칠이 가능한데 얇은 붓칠과 섬세한 붓터치(심지어 털 한가닥으로 만든 붓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로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a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얀 반 에이크 ⓒ National Gallery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사진을 보는 듯한 섬세한 질감과 물건 하나하나의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정평이 나 있으며 다양한 상징물의 배치로 여전히 논의가 계속되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을 그린 이 초상화는 실내에서의 결혼식 장면을 담고 있다. 맞잡은 두 손 위에 놓인 거울 속에는 증인들(거울 위에 쓰인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글 때문에 거울 속 증인 중 한 명이 작가 얀 반 에이크라는 추정도 있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의 호화로운 의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신랑의 모피와도 같은 털 옷과 고급스럽고 풍성한 옷감으로 만든 신부의 드레스가 돋보인다. 바닥에 끌리고도 남을 옷감을 왼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마치 임신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오해가 되기도 한다.

결혼과 관련된 종교적, 세속적인 상징들도 보인다. 두 사람의 발 아래에는 개 한 마리가 있는데 개는 사랑과 충실을 의미하고 벽에 걸린 수정 기도 구슬은 부부의 독실함을 보여준다. 천장에 달린 등에 하나의 촛불만이 켜져있는 것은 신의 임재를 의미한다.


a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한스 홀바인 ⓒ National Gallery


영국에서 헨리 8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한 독일의 화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또한 인물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다양한 상직적인 요소들로 북부 유럽 르네상스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그림 속의 두 사람은 모두 대사이고 친구 사이로 테이블 양쪽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의상과 배경으로 펼쳐진 커텐의 고급스러운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목에 달고 있는 장신구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은 정교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찬송가로 보이는 펼쳐진 책에 그려진 음표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인생에서 한창 왕성하고 아름다운 시기(그림 속에 두 사람의 나이에 대한 힌트가 있다), 심지어 높은 사회적 지위까지 이룬 이들의 당당한 표정이나 포즈는 물론 여러 개의 상징적인 물건들과 그림 아래 부분에 그려진 일그러진 모양의 해골은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아래 테이블 위에 놓인 지구본은 당시 왕성하게 이루어지던 해상탐험을 나타내며 기타와 비슷해 보이는 현악기 류트는 음악을 상징하지만 끊어진 줄이 죽음 또는 종교개혁으로 인한 종교적 다툼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림은 얼핏 두 사람이 이룬 성취를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거대하게 이루어낸 이 세상의 명성과 지위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왼쪽 윗부분에 커튼에 반쯤 가려진 예수의 십자가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종교적인 의미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는 인본주의가 발달하고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종교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대신 부유한 상인들이나 귀족들의 세속화, 초상화에 대한 주문이 주를 이루게 된 시대상과 지역적 특색을 보여진다.

이러한 그림들은 첫 눈에 강한 인상을 주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들이 그저 간단히 보아 넘길 만한 것이 아닌 이유는,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그림의 주제와 대상, 테크닉과 의미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끝이 없고 그 노력 또한 끊임이 없다는 사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북부 유럽 #르네상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