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도록 '오리무중'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

[取중眞담] 설치한 지 한 달 넘었는데, 통화하고도 비공개?... 청와대 "숨기는 건 아냐"

등록 2018.05.24 17:59수정 2018.05.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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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이야기를 한 달째 하는 것 같다."

2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들이 남북 정상간 핫라인(직통전화) 통화를 집중적으로 묻자 나온 반응이었다. '농담'인지 '불만'인지 알 수 없는 이 반응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오리무중 남북 정상간 핫라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3월 6일, 핫라인 설치 발표... 4월 20일, 핫라인 설치-시험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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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 직통전화, 청와대 설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8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4월 2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남북정상간 직통전화(핫라인)이 설치되어 시험통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청와대 송인배 제1부속실장이 북측 국무위원회 담당자와 시험통화를 하는 가운데,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왼쪽)이 통화내용을 청취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남북 정상간 핫라인은 대북특사단이 방북한 직후에 처음 거론됐다. 대북특사단장이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3월 6일 대북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핫라인(Hot Line)을 설치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1971년 9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을 계기로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을 전화선으로 연결했고, 지난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는 남측 국정원과 북측 통일전선부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한 적이 있지만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가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북특사단의 매우 중요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지난 4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남북 정상간 핫라인이 설치됐고, 4분 19초간의 시험통화까지 진행됐다. 이를 통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육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남북간 최고위급 대화채널'이 생겨났다.

이날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를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2000년 국정원과 북측 통일전선부 사이에 연결된 남북 직통전화와는 다르게 청와대와 북측 국무위원회가 연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이는 분단 70년 역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남북 정상간 핫라인이 4.27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설치됐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각별했다. 남북 정상이 정상회담장에서 대면하기 전에 목소리를 통해 처음 접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의제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특히 정의용 실장은 지난 3월 6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했다"라고 발표해 남북 정상간 첫 통화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북미정상회담 확정됐는데도 핫라인 통화는 없었다

기자들도 4.27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 시기 등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논의되지 않았다" 등의 답변만 되풀이했다.  결국 '4.27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한다'는 남북간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미뤄졌다'는 얘기만 흘러나왔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사흘 뒤인 4월 30일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머지않아 통화할 거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전화통화를 언제 하느냐보다는 어떤 내용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머지않아 두 분이서 하시겠죠."

"머지않다"는 사전적으로 '시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뜻이다. 날마다 문 대통령을 만나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이라 더욱 무게감이 실렸다. 게다가 한미정상회담 개최 시기가 5월 22일로 확정되면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이루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지난 8일 "한미정상회담 전에 남북 정상이 핫라인 통화를 할 가능성이 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미정상회담이 (핫라인 통화의) 기점이 아니라 북미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가 나오면 그것이 통화의 소재가 되지 않겠나?"라고 답변했다.

북미정상회담의 일시와 장소가 확정되면 그것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핫라인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트럼트 대통령이 지난 10일(미국 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김정은과 나의 만남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라고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도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핫라인 통화 했는데 숨기는 게 아니다"

지난 15일 기자들과 청와대의 핵심관계자가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를 주제로 제법 긴 대화를 나눴다. 기자들과 청와대 관계자 사이의 대화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팽팽한 대화를 그대로 전하면 이렇다.

- 핫라인 통화, 오늘은 하나요?
"오늘부터 할 수 있겠죠. 어제는 어제부터 할 수 있구요."

-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 예전에는 핫라인 통화를 이 즈음에 한다고 했잖아요? 그때와 지금은 말이 많이 바뀌었어요. 왜 바뀌는 겁니까?
"핫라인 통화의 특성을 이해해주셔야 해요. 핫라인 통화할 시점을 정해놓고 하기보다는 내용,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일상적 정상통화하고는 강도 등에서 달라요."

- 그러면 핫라인 통화를 했지만 공개를 안 할 수 있나요?
"첫 통화의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핫라인 통화이지만 첫 통화는 공개해야 한다고 (저희도) 주장하고 있어요. 통화를 했는데 안 했다고 숨기는 건 아니에요."

-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잡히면 통화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입장이 바뀐 건 아니잖아요. (기자들은) 북에서 통화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핫라인 통화는 양측의 소통이 서로 부족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것이에요. 뒤집어서 단어적으로 말씀드리면 핫라인 통화를 하지 않을 만큼 (남북) 양측이 충분히 소통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전에는 한번 통화하나요?
"아마 그럴 것 같다고 말하면 또 따지시려구요?"

'남북-북미 교착상태' 풀기 위해 핫라인 통화 절실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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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이 지난 4월 20일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 사이에 설치됐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두 정상이 20일 직접 통화를 한 것은 아니다. (자료사진 콤보). ⓒ 연합뉴스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를 두고 기자들과 청와대 사이에 숨바꼭질 같은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 정상이 핫라인으로 통화해야 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지난 16일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재고려'를 언급하고(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남북고위급회담(16일)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한 것이다(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북미갈등과 남북갈등이 중첩되는 위기가 닥친 것이어서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컸다.

다음날(17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미간과 남북간의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의견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 '한미간 채널'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화통화였고, 이는 사흘 뒤인 20일 20분간 이루어졌다.

'남북간 채널' 가운데에서는 당연히 남북 정상간 핫라인이 주목받았다. 특히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의 재고려까지 언급한 위급한 상황이어서 북미정상회담의 길잡이를 자임해온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남북간과 북미간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가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져갔다. 

그런데 이날 NSC가 열리기 전 기자들과 만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남북정상간 핫라인 통화는) 아직 계획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NSC가 끝난 "(NSC 회의 결과 브리핑에 나오는) '한미간, 남북간 여러 채널 통해서'란 표현에는 우리 정부와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역할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일단 한미간에는 당장 다가오는 22일 정상회담을 통해 저희가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또 반대로 북한에도 미국의 입장과 견해를 충분히 전달할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간 입장 차이를 보정하고 접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예요."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가동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여러 가지 채널에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통화도 포함되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말하기가 좀 (곤란하다)"라고만 답변했다.

미국에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충분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통화 여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 : 정상간 통화하고도 비공개-남북 고위급 비밀접촉

결국 1박 4일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24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는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통화한 뒤에야 여러분께 말하겠다"라며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기자들이 "그런데 저희가 통화하자고 하지 않더라도 그쪽(북한)에서 통화하자고 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북한쪽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헤아릴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나는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하고도 북한측의 요청이나 보안문제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두 차례 방중 등 김정은 위원장의 바쁜 행보 때문에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남북 고위급 당국자들간에 비밀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다만 이날 새벽에 귀국한 문 대통령이 이번 주중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통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도 "문 대통령이 귀국 직후에 김 위원장과 직통전화로 통화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뿐만 아니라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지원 방안 등을 직접 듣고 왔기 때문에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바로 대북 접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에는 진짜로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북 정상간 핫라인 통화가 필요한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기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북 정상간 핫라인 #북미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문재인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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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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