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취소에 '한미동맹'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 메시지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에 담긴 뜻

등록 2018.05.25 17:14수정 2018.05.26 13:18
10
원고료로 응원
지난 22일 정오(미국 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한 뒤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한미동맹. 세계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길!'

여기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세계사의 대전환을 만들어낼 북미정상회담(6월 12일)이 꼭 성공하길 바라는 문 대통령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6시간여 뒤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22일 오전 9시 57분부터 오후 2시 8분까지 

a

기자회견 된 한-미 정상 단독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취재진의 북한 문제 관련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1일 오후 5시 27분(미국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도착했고, 다음날(22일) 오전 9시 57분부터 50분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했다. 두 사람은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 외교·안보팀의 핵심 참모들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접견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접견에서 미국인 억류자 3명의 무사 귀환, 원활하고 긴밀한 한미 양국NSC 채널간 소통 등을 언급하며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을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은 "우리 한국이나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여서 한국 국민들이 두 분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크다, 그래서 두 분께 잘 부탁드린다"라고 자세를 낮춰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지금 저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굉장히 잘 협력하고 있고, 북한문제에서도 많이 협력하고 토론하고 있다"라고, 볼턴 보좌관은 "지금 한국측과 상당히 좋은 협력을 하고 있다"라고 화답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주미한국대사 등을 직접 거론하며 "대단히 협조적이었고, 투명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발언이 '외교적 언사'라고 하더라도 50분간 진행된 접견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대북 강경파이자 '수퍼 매파'로 불리우는 볼턴 보좌관은 두어 시간 뒤에 열릴 한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오늘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단독회담에 들어가기 전인 낮 12시 7분께부터는 예상하지 못했던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여기에서 "문 대통령의 능력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 "능력있고, 아주 좋은 사람이다", "한국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인 것이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등 문 대통령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찬사가 쏟아졌다.

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의 극적인 대화, 긍정적인 상황 변화를 이끌어냈다"라며 '트럼프 역할론'을 다시 띄웠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도 반드시 성공시켜서 65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룸과 동시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미간에 수교도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진행되기 직전 모두발언에서도 문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비전과 리더십 덕분에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됐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세계평화라는 꿈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됐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추켜세웠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회담은 낮 12시 42분부터 오후 1시 3분까지 21분간 열렸고, 이어 오후 2시 8분까지 업무오찬을 겸한 확대정상회담이 진행됐다. 단독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이 끝난 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 체제 불안감 해소 방안 ▲ 남북미가 참여하는 종선선언 등을 논의했다고 브리핑했다.

특히 윤영찬 수석은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라고 전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정의용 안보실장도 "지금 북미정상회담은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 실장은 "그러나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그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한미정상회담 끝난 지 약 44시간 만에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

a

트럼프, 김정은에 보낸 편지 '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회담을 취소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 미 백악관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23일 오전 7시 50분(한국시각)에 워싱턴을 출발해 24일 오전 0시 40분에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별도의 일정을 잡지 않고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가 이번 주중에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통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 50분께 백악관 홈페이지에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를 올려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공식 발표했다.

"애석하게도, 당신이 최근 발언에서 표출한 분노와 적대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긴 시간을 들여 계획해왔던 회담을 가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약 44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가 알려지자 문 대통령은 오후 11시 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했고, 윤영찬 수석은 오후 11시 51분 이를 기자들에게 알렸다. 회의는 25일 오전 0시부터 대통령 관저에서 열렸고, 임종석 비서실장과 정의용 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NSC 상임위원 회의를 소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트위터에 게재하기 전에 청와대에 미리 알려왔나?" 등을 문의하면서 청와대의 공식 의견을 요청했다. NSC 상임위원 회의는 오전 1시까지 1시간 동안 열렸고, 회의가 끝난 직후인 1시 17분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다.

문 대통령 메시지는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다"로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라며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북미) 정상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전한 윤영찬 수석은 "오늘은 위 입장문 외에 더 이상 발표할 것이 없다"라며 "전화도 받지 않겠다, 양지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사전 통보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가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이 동맹국가에 심각한 결례를 한 것이다"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트럼프는 동맹국들(global allies)에게 알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하도록 백악관에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AP통신도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에 참석해 한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에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사전에 통보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물론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취소 결정을 내린 이후 중국 관리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라며 "(다만) 워싱턴과 서울은 보조를 맞췄다(in lockstep)"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기 전 한국 정부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이것의 사실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25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북미정상회담 취소 사실을 언제 알았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아는 바가 없다"라고 답변했다. 기자들이 "확인해서 알려 달라"라고 요청했지만, 이 관계자는 "확인해서 알려줄 수 있는 성격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우리에게 사전에 통보했는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라며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워싱턴과 서울은 보조를 맞췄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말이 맞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또다른 고위관계자는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언론에 발표한 것과 동시에 한국 정부에 통보됐다는 외신 보도는 맞다"라며 "그(북미정상회담 취소) 통보가 주미(한국)대사관으로 왔기 때문에 저희(청와대)한테 전달되는 데 약간의 시차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 내용들을 헤아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취소'라는 중대한 사안을 한국 정부에 사전통보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언론 발표와 동시에 통보했더라도 이것이 '동맹국가'를 예우하는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트럼프 #문재인 #한미정상회담 #폼페이오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