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결코 '뚱뚱한' 발레리나를 그린 게 아니다

[그림의 말들] 양감 넘치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를 만나다

등록 2018.06.04 15:30수정 2019.05.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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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한 점을 독자와 함께 감상하며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미술전문가의 입장보다는 관람객 입장에서 그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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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페르난도 보테로, 2001,안티오키아박물관) ⓒ 안티오키아 박물관


"어머, 어떡해"란 말과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뚱뚱한 여자를 향한 비웃음이 아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발레리나.' 그의 그림은 건강하고 위트가 있으며 유쾌하다. 현재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국민화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명의 화가 중 1인. 몇 해 전 한가람미술관에서 그의 전시를 본 후, 아트숍에서 이 그림액자를 샀다. 액자는 가벼우나 왠지 육중함 때문에 떨어질 것 같아 벽 아래쪽에 걸었다. 화가 나려다가도, 우울해지려다가도 이 그림만 보면 웃음이 나고, 웃음은 행복을 데려온다.

신발, 머리 꽃핀, 귀걸이까지 '깔맞춤'이 완벽하다. 몸의 양감을 극대화시키려 이목구비와 발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렸다. 과장된 비례, 안정적 구도, 균형미, 무엇보다도 표정이 압권이다. 안 힘든 척하는 새침한 표정이 귀엽고 앙증맞아 보여 와락 껴안고 싶다. 거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때면 그림에 속삭인다.


"다리 내리고 편히 있어요, 난 이제 불 끄고 들어가요."

뚱뚱한 게 아니다, 양감이다

그는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양감과 색채'이며 풍부한 양감표현을 위해 볼륨이 있을 뿐이란다. 또, 색채를 풍부히 사용하려면 그만큼 넉넉한 지면이 필요하다. 색을 적게 보여줄수록 작품이 더 다채로워진다는 그는 한 작품에 적은 수의 색으로 그것들을 혼합하여 표현한다. 그에게 있어 볼륨은 행복의 상징이며 건강과 긍정을 의미한다. 이것은 낙천적인 남미의 특성(풍만함=건강, 부유, 즐거움)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의 색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색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썼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빨간 꽃, 파란 꽃, 노란 꽃 시리즈다. 일단 크기가 크다.(그림당 199*161cm) 백만 송이 장미를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가 표현하고 싶은 양감이 뭔지, 색감이 뭔지를 한 방에 알 것 같다. 색이 내뿜는 충만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한다. 파랑 하나도 얼마나 다채로운지. 그리고 노랑, 파랑, 빨강은 콜롬비아의 국기 색이다. 그의 뿌리를 표현하는 것이 또한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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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꽃,노란꽃,빨간꽃(페르난도 보테로,2006 안티오키아박물관) ⓒ 안티오키아박물관


그가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린 건 물론 아니다. 1932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외판원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다. 미술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 타고난 재능과 그림에 대한 애정으로 16세에는 지역신문에 삽화를 그렸다. 채색 스케치를 팔아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2번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콜롬비아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당당히 2위에 뽑혔다. 그의 나이 20세. 받은 상금으로 그는 스페인행 3등석 여객선을 탔다. 긴 현장학습의 시작이다.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그의 학교가 되었다. 벨라스케스, 고야,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같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어떻게 그들의 그림이 다른 수많은 그림들과 달리 '명작'이 되었는지를 연구한다. 관광객을 상대로 모사한 그림을 팔며 그림 공부를 하고, 생계를 유지했다.

다시 파리로 이동. 파리를 휩쓸던 현대미술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대신 루브르로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연구했다. 다음 해에는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로 이동. 우첼로, 마사초, 등의 그림과 15세기 미술사, 프레스코 기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르네상스 그림은 인체의 표현이 육중하고 근육질이며 양감이 풍부한 그림이다.

그러니 그의 지금 이런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프라도 미술관에서 공부한 스페인 거장들의 그림+ 루브르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배운 비례와 구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풍부한 양감+ 콜롬비아 특유의 낙천성과 고유문화, 이 모든 것의 집합체라 하겠다.

"아무도 나만큼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의 첫 전시는 독학으로 그린 그림으로 전시에 참가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가는 화가들의 그림을 찾아다녔으며 흥미가 끝나갈 무렵 나는 나만의 독자적인 그림을 그렸다."

페르난도 보테로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창의력은 탄탄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법.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다면...

그는 수많은 명화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그렸다. 벨라스케스, 루벤스, 반 에이크, 마네, 고흐... 패러디 그림이라 가벼이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 벽을 넘어섰다.

"만약 당신의 미학적 입장과 당신이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작품의 미학적 입장이 잘 어울려 공존한다면 그 작품은 이제 그 자체로 오리지널이다."

그는 대가들의 작품을 모델로 삼는 이유에 대해 그 작품이 가진 회화적 힘에 맞서 자신을 견주어 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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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모나리자(1959, 페르난도 보테로, 뉴욕 현대 미술관) ⓒ MOMA(뉴욕 현대미술관)


1961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구입해 화제가 되면서 단번에 보테로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그림, 12세의 모나리자. 그의 그림이 키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그림을 보면 쉽고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건 사실이다. 어려운 메타포가 숨겨져 있지도 않고 천진난만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절로 나는 그림. 나는 그것으로 그의 그림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어렵기만 해서야.

"내 그림의 풍만한 형태는 관능미와 여유를 표현한 것이다. 처음 볼륨을 강조한 그림을 그렸을 때 사람들은 흉측하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확신을 가졌기에 타협하지 않았다. 화가로 출발해 15년 동안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전 세계 60여 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남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신념을 가져야 한다."

신념과 타협 사이. 예술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수없이 마주치는 어려운 문제다.

그는 과장된 인체 비례를 통해 제도화된 규범을 조롱했으며, 미의 기준을 풍자하고 때로는 침울한 작품에 묘사된 뚱뚱한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또한 그는 명작을 차용하는 그림뿐 아니라 콜롬비아의 문화, 종교, 마약, 폭력, 부정부패와 같은 사회문제와 일상적인 장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고향의 술집, 창녀촌, 투우장. 서커스, 음악과 춤. 그의 그림에 녹아있는 주제들이다. 특히 남미 하면 떠오르는 음악과 춤을 모티브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향수 어린 요소이자 소중한 매혹의 근원이며, 난 그 속에서 시를 건져 올린다."

그는 시인 같다. 구구절절 멋진 문장이 많으니 나 또한 그의 그림과 말들 속에서 시를 건져 올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 #양감 #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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