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하면 로또 1등" 자칭 고수의 기막힌 반전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28] 복권 이야기

등록 2018.06.03 19:17수정 2018.06.0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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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로또 정보사이트 갈무리 ⓒ 이주영



언젠가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 바쁘게 처리할 일이 쌓여 있을 때 예고 없는 방문자는 그리 달갑지 않다. 원고를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불쑥 방문한 사람의 대다수는 즉답을 듣기를 바란다. 감색 점퍼를 입은 60대 중반의 남자는 막노동꾼처럼 보였다. 몸피는 유난히 왜소해 보였고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인사를 나누고 차를 한잔 대접했다. 거제도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올라왔다고 했다. 두툼한 대학노트 두 권에 빽빽하게 쓴 육필원고의 제목은 '로또 1등 당첨의 비결'이었다.

"이 책만 나오면 대박이 터질 것입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로또복권 1회부터 그때까지 1등 당첨번호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마치 수학적 암부호처럼 숫자가 적혀 있고, 숫자마다 동그라미표와 가새표가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꼼꼼히 기록한 노트에는 많은 연구와 열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책으로 펴낼 가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남자는 침까지 튕기면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도통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다. 계속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어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실전에서 얻은 최고의 등수는 몇 등입니까?"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4등이 최고였지만... 이 비법대로만 하면 1등은 문제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세월이 몇 년쯤 흘렀으니 혹시 모르겠다, 1등에 당첨되었는지는.

"왜 저는 복권 당첨 안 되나요?" 신의 응답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일확천금의 행운을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근무했던 직장에 매주 복권을 사는 직원이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언제나 돈에 쪼들렸던 그는 점심을 거르는 한이 있어도 복권만은 꼭 샀다. "사지 않으면 당첨될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매주 조금씩 삽니다"라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쓸쓸한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 숨이라도 쉬기 위해 복권에 바늘구멍만 한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니, 소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참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줄 위를 버선발로 걷는 것처럼 사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생각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한 방으로 화려한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이다. 나도 가끔 막연한 행운을 꿈꾸며 복권을 산다. 복권을 살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의 독백이다.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다만 더 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인 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노인의 독백에서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불운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산티아고 노인이 마치 나에게 이 말을 하는 듯이 생각될 때가 있다. 군에서 제대하고 몇 달 동안 직장을 찾고 있을 때도 이 말을 떠올리며 힘을 냈었다. 인생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나를 둘러싼 세계도 바뀐다. 이것이 문학이 가진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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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섭고 어리석은 욕심은?복권을 파는 곳을 지나칠 때면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은 이렇게 속삭인다.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 이명수


복권을 살 때면 이런 우스갯소리도 생각난다. 가난에 시달리던 어떤 남자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였다.

"신이시여! 제발 저에게 딱 한 번만 복권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그의 간절한 기도는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는 병으로 숨졌고, 아내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남자는 신을 원망했다.

"제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10년 기도를 했건만 아무런 응답도 안 해주시는 것은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때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제는 복권을 사고 기도하는 게 어떻겠니?"

고기를 잡으려면 어떤 경우라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기가 걸리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겨우 몇천 원을 투자하고 '사자 꿈'을 야무지게 꾸는 것이다. 요행을 바란다는 것, 혹시 모를 행운을 꿈꾼다는 것은 현실이 정말 갑갑할 때 숨을 트이기 위한 한 가지의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되고 병이 되어 더욱 불행한 상황으로 내몰게 된다.

복권은 '고통 없는 세금'

인간의 허황한 탐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복권의 역사는 길다. 복권의 유래는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연회에서 티켓에 일련번호를 표시해 참가자들에게 나눠 주고 추첨을 해서 노예, 유람선, 저택 등의 선물을 베푼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니버트의 저서 <복권의 역사>는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인류사에서 복권이 걸어온 길과 그 사회적 의미를 보여준다. 복권은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탄생 이후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어마어마한 수익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등 복권의 실체를 살핀다.

미국에서 복권이 처음 생겨난 것은 정부의 경제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상금이 있는 자선 기부'쯤으로 인식되는 복권 제도의 이면에는 정부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복권은 도박과 미신을 부추기는 역진세"이며, 가난한 이들의 꿈에 세금을 매긴 "고통 없는 세금"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복권의 진면목을 확실하게 알았다.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소설 <돈 까밀로와 빼뽀네>를 보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돈 까밀로 신부가 복권의 해악을 말하며 빼뽀네를 훈계하는 내용은 참으로 진리이다. 

"복권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자들이 대중에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고, 그들에게는 돈 한 푼 들지 않는 신바람이 나는 미끼야. 돈이 들기는 고사하고 자본가들에게 오히려 돈을 벌게 해 주는 거지.

(중략) 가령 어떤 폭군에 의해서 강제 수용소에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1000명 있다고 가정해 보세. 그리고 매일같이 먹을 것이라고는 형편없는 빵조각 하나씩밖에는 없다고 치세. 그들이 굶주림과 싸우기 위해서 어떤 짓을 하는지 알고 있나? 각자가 하루 배급받은 빵의 5분의 1을 떼어서 자기 이름을 쓴 종이쪽지 하나와 함께 그 폭군에게 주는 거야.

그럼 폭군은 이 종이쪽지를 전부 모자에 넣어서 일요일마다 하나씩 제비로 뽑지. 행운에 당첨된 이름의 사나이는 자기 동료들이 그동안 내놓았던 빵의 절반을 받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폭군이 수고비 조로 가져가 버리네. 그러니까 999명의 불쌍한 죄수들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자기 식량의 5분의 1을 폭군을 살찌우는 데 바치고 있는 셈이지. 결국은 그런 추첨으로 꾸준히 계속해서 득을 보는 사람은 폭군 한 사람뿐인 거야."

복권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대목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복권을 두고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고도 공공재원을 조성할 수 있는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복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똑같다. '고통 없는 세금'이라는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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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은 불황일수록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 ⓒ pixabay


로또복권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편의점, 복권방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장면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복권은 불황일수록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 삶이 팍팍할수록 막대한 돈을 바라는 서민의 열망은 커진다. 산다는 것이 불안하고 초조하여 '나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복권 하나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의 도피처로 싸구려 희망을 사는 것이다.

흔히 복권 당첨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은 대략 180만분의 1이다. 하지만 로또복권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이라고 하니 벼락 맞아 죽을 확률이 로또 1등보다 4.5배쯤 높다.

복권 당첨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커질수록 시선을 끄는 것이 이른바 '로또 명당'이다. 1등 당첨자가 많이 나온 판매점 앞에는 매주 장사진을 이루어 주변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당첨 확률은 어느 곳에서 사도 똑같다. 다만, 로또 명당은 워낙 많이 팔기 때문에 1등도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복권은 인간이 지닌 사행심을 부추기는 도박과 다를 바 없다. 공익성을 앞세워 한껏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뒤로는 교묘하게 사행심을 조장한다. 사행심(射倖心)이란, 하늘을 향해 무턱대고 화살을 쏘아 정말 운수 좋게 날아가는 새를 맞춰 떨어뜨리는 것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쏠 사(射)'를 붙였다. 그런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복권 발행을 주도하고 있으니 온 국민을 상대로 도박판을 마련한 셈이다. 사행산업 중에서 누구나 가장 쉽게 손댈 수 있는 것이 복권이다.

복권은 종류도 참 많다. 복권을 구매하는 수많은 사람 덕에 극소수 당첨자가 횡재하기도 한다. 그 누군가의 횡재가 바로 달콤한 미끼 역할을 톡톡히 한다. 봉급의 거의 전부를 로또복권에 쓰는 사람도 있고, 로또를 사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대박'을 찾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쪽박'을 차는 사람들도 셀 수 없다.

도박의 가장 큰 해악은 중독성이다. 이성적으로는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라고 하면서도 쉽게 손을 못 끊는 것이 도박이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건전한 근로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고 쉽게 단번에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도 온갖 사행산업이 독버섯처럼 사회를 좀먹고 있다. 카지노, 인터넷 도박 등으로 가정 파탄, 패가망신한 가련한 영혼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에는 삶이 팍팍한 서민들을 유혹하는 공인된 각종 도박장이 너무나 많다. 지천으로 깔린 복권 판매업소를 비롯하여 장외발매소가 있는 경마장, 경륜장, 경정장 등 한 번 배팅으로 거액을 노리는 요행수가 넘쳐난다. 오죽하면 '도박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돌까. 도박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에서 도박이 성행하는 것은 우연한 일도 아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한탕을 노리는 허황한 꿈을 꾸게 만든다.

병든 사회를 깨끗하게 치유할 명의는 어디 없는가? 그런 위대한 인물이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반드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의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조심해야 한다. 여차하면 파멸로 낚아채는 함정이 즐비한 이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혹시나 하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욕심 중에서 가장 무섭고 어리석은 욕심일 것이다. 궁핍할수록 냉정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이성으로서 하나하나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은 자신이 일궈야 한다. 나의 땀과 노력이 바로 나를 지켜 주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복권을 파는 곳을 지나칠 때면 산티아고 노인은 또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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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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