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아들의 전화, 왜 1분밖에 안 된다는 거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날... 휴가가 지겨워지는 날은 언제 올까

등록 2018.06.16 11:57수정 2018.06.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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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프다. 사진 속에 콩알만 한 얼굴이 줄줄이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 아들을 찾는 게 쉽지 않다. 2주 전에 입대한 아들이 훈련을 받는 신병교육대의 공식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수십 장의 사진에서 콩알만 한 아들 얼굴을 찾으면 내가 이리 힘든 일을 해내나 싶어 신통한 마음마저 든다.


카페 올라온 부모들의 반응도 나와 다르지 않다. '숨은 아들 찾기'에 성공했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노안으로 눈이 아프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어찌 안 힘들까? 머리 스타일과 입고 있는 옷도 똑같고 나이도 비슷하니 네 아들이 내 아들 같아 보인다. 이렇게 카페에 들락거리며 오늘은 훈련병 사진 안 올라오나 살펴보는 게 요즘 나의 일과다.

첫째는 4월 말에 입대하여 신병훈련소에서 5주간 훈련을 받는다. 입영식이 끝나고 아들을 버스 정류장 하나 없는 황량한 휴전선 마을에 남겨 두고 떠나올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 누가 보아도 우리 아들은 성인이며 또한 군인처럼 보이겠지만 엄마인 내 눈엔 달랐다.

머리를 빡빡 민 아들의 얼굴에서 눈도 못 뜨고 울던 20년 전의 갓난아기 얼굴이 그대로 겹쳐 보였다. 젖을 먹이면 입을 오물거리며 눈도 안 뜨고 열심히 먹고 똥 기저귀를 늦게 갈아주면 빽빽거리며 울던 일이 바로 어제 같은데... 그랬던 아들을 보초 세우고 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왔다.

아들의 신병교육대 공식 카페에 가입하고 훈련 사진이 올라오기만 기다렸다. 훈련병들이 주말이면 종교시설에 가서 초코파이를 먹는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가 교회, 성당, 법당 중 어디로 갈지 몰라 세 군데에 똑같은 종교 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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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말, 집 전화로 낯선 지역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 pixabay


그리고 첫 주말, 집 전화로 낯선 지역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신자 부담 전화였다. 아들일까 싶어 통화에 동의했다.


"여보세요? ○○니?"

"저예요. 그런데 저 1분밖에 통화 못 해요."

왜 일 분밖에 못 하지? 하지만 그 이유를 물을 시간이 없다.

"많이 힘들지?"

"아뇨. 괜찮아요. 조교님도 좋으시고. 다 좋으세요. 저 밥도 잘 먹고 있어요."

1분만 통화한다니 마음이 급하다. 남편과 둘째를 불러 목소리만 듣게 하고 다시 돌려받았다. 작별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여태 학교 다니면서 담임 운이 좋았던 녀석이다. 이번에도 운이 좋을 것이다.

드디어 집에 왔다, 아들의 소포

그런데 이상하다. 왜 집 전화로 전화했지? 내 핸드폰으로 안 하고?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다. 진동이어서 전화를 못 받은 것이다. 남편 핸드폰에도 아들이 건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카페에 부모들이 올린 글을 읽어보니 훈련병 모두에게 3분 통화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나랑 남편이 전화를 안 받아 아까운 2분을 날린 거였다. 2분 동안 아이가 얼마나 조바심이 났을지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다음에는 전화를 빨리 받아야겠다.

그래도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가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조교가 좋은 분이라니 다행이다. 게다가 밥도 잘 먹으니 걱정이 없다.

입대 2주 차 월요일 신병교육대 카페에 견장식 사진이 올라왔다. 군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이 낯설지만, 맞춤옷을 입은 듯 어울렸다. 금요일에는 아들 옷이 담긴 택배가 왔다. 이 소포 받고 엄마들이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어떨까.

우리 집 주소를 아들이 썼을까? 택배 박스에 붙은 송장을 찾아보았다. 손글씨가 아니고 프린트가 되어있다. 별것도 아닌데 아쉽다. 테이프를 뜯으니 아들의 모자가 빼꼼히 보인다. 모자를 들어보니 편지가 나온다. 편지지 중 한 장은 종이 카네이션이 붙어 있다. 빨간색 볼펜으로 색칠까지 했다. 군대에서까지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챙겨 보내 준 아들이 고맙다.

편지를 읽어 보니 아들이 무슨 특공대에 지원했다고 한다. 벌써 면접까지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특공대는 뭘 하는 거지? 철책을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비무장 지대에서 근무하는 건가 아니면 특공대라고 따로 있는 것일까?

남편에게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한다. 남편은 방위병 출신이다. 방위병이긴 하지만 송추방위로 현역이랑 훈련을 똑같이 받았다며 무시하지 말라고 했는데 특공대에 대해선 아는 게 없는 모양이다.

군인 부모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따로 가입을 해서 물었다. 군인 엄마들은 철책을 지키거나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것은 수색대이고 특공대는 임무가 따로 있다고 했다. 침투를 훈련하는 곳이라는데 혹시 특공대가 되더라도 임무 잘 마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며 친절한 답글을 달아주셨다.

남편은 특공대 출신 회사 직원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말을 전한다.

"훈련이 '빡세서' 그렇지 전우애도 좋고 군 생활은 편하다네. 사고도 없고. 할 만하다고 해."

'처음이야 어렵지 적응만 하면 지낼 만하다고 일반병보다 훨씬 편하다.' 이런 말은 진짜 많이 들었다. 몸이 피곤한 대신 마음은 편할 거라는 말.

아들의 옷 소포를 받고 울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마음이 놓이고 좋았는데 '특공대'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다.

휴가가 지겨워지는 그날,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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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병교육대 공식 카페 메인화면 ⓒ 온라인 카페 갈무리


그날부터 전자우편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토요일이 됐다. 전 주에도 전화가 왔으니 이번에도 주말에 전화가 오겠지 생각을 하고는 핸드폰 배터리를 가득 충전하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들에게 전화가 올까 봐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이 되었다.

그때 아들이 편지 귀퉁이에 썼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번 주는 전화 못 할 거 같아요. 상 점수를 못 채웠거든요.'

편지에 쓰여 있던 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글이 현실인가. 일요일 외식을 하러 가면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소리를 못 들으면 어쩌나 진동으로 바꾸었고 진동을 눈치 못 채면 어쩌나 걱정에 밥을 먹으면서도 전화를 확인했다. 결국, 그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상점이 뭐라고 그것으로 훈련병을 경쟁시키나? 유치하다. 그렇게 화가 나다가도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 아들은 군인이야. 군대가 사회랑 똑같진 않지. 당연한 거야. 군대에 가 보지도 못한 내가 그 사정을 어찌 다 알겠어. 그렇게 이해를 하다가도 또 다른 마음이 올라왔다. 아니 군인은 그렇다 쳐도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까지 아들의 상점 때문에 아들 목소리도 못 듣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이건 부당한 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꿈에 아들이 집에 왔다. 가기 전에 머리스타일 그대로 아들이었다.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아들 전화를 기다리다가 꿈까지 꾸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 얼굴을 만지면서 아들에게 '이거 꿈이지?' 하고 물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월요일, 마음이 안 좋은 난 군인 부모 인터넷 카페에 '훈련병이 거는 전화'에 관해 물었다. 신병훈련 5주간 공식적인 전화는 딱 두 번 걸게 해 주며 나머지는 훈련 점수가 좋은 경우만 특별히 주말에 전화할 수 있다고 엄마들이 알려 주었다. 전화가 안 오면 대신 아들 몸이 편하다는 말이니 마음 편히 먹으라고 하셨다.

군인 엄마들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정말 편해졌다. 밖에서 전화 못 받은 내가 아무리 속이 상한들 그 속에서 전화 못 거는 아들 속이 더 상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신병교육대 공식 카페에는 '전화 통화'에 대한 다른 부모들의 글도 올라와 있었다. 어떤 엄마는 직장에서 교육 받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 못 받았는데 나중에 아들 전화였다는 걸 알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엄마는 첫 전화를 못 받았는데 한 번만 더 걸게 해 주면 좋겠다는 건의를 올렸다. 그 엄마의 제안에 부대는 기회 평등 원칙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한다고 답했다. 5주간 공식적인 통화를 두 번 하게 할 거라면 입영식 때 첫 주말에 전화 간다고 공지를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아닌가? 전화 못 받아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보니 내 마음도 안 좋았다.

아들을 군에 보냈던 선배 어머님은 "딱 일 년은 엄청 보고 싶어. 그 뒤엔 휴가 나오는 게 아주 지겨워져" 하고 말씀했다. 아들이 휴가 나오는 게 지겨워지는 그런 날이 진짜 오기는 할까? 제발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전기사] 아들과 갑작스런 이별... 언제 다시 안을 수 있을까(http://omn.kr/r8ca)
#군입대 #아들 #군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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