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안하는 남자들의 생각은?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펴낸 책 ... 배성민, 돌하나, 박상현, 허주영 등 글 써

등록 2018.06.04 09:59수정 2018.06.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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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은 성매매 하는 남자와 안 하는 남자를 구분하기 위한 제목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성매매 강국으로 만든 우리의 남성문화를, '내부자'인 남성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엮었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 남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호랑이출판사 간)을 냈다.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배성민, 돌하나, 박상현, 허주영, 전상천, 잇페이, 하루살이 아재, 김승홍, 정종우, 변정희, 장지유가 썼다.


'살림'은 부산지역에 있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2016년부터 성매매수요자포럼을 열어오고 있으며, 그동안의 활동기록과 수요자포럼 구성원들, 그리고 외부 필자의 글을 담아 책으로 발간했다.

성매매수요자포럼은 '여성'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성매매 문제를 '수요자'인 남성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통해 만들어진 남성 모임이다.

'살림'은 이 모임을 통해 성매매 문제만이 아닌 남성들 위주의 성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안에서 다양한 남성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했다.

글을 쓴 남성들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쉬쉬해 온 성매매 문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온 남성문화에 관해 말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성매매, 남성문화에 대한 남성들의 시선은 다양하다. 배성민은 "남성 중심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성으로 별다른 차별 없이 세상을 살아 왔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 사회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다 보니, 젠더 문제 또한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사실 공감은 잘 하지 못했다.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 등으로 젠더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고민 중이다. 졸업 후에는 노동당이라는 정당에 들어가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허주영은 "남성문화가 남성들에게는 좋으냐 하면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두 살 터울의 형에게 10대 내내 두드려 맞았다. 학교에서도 센 놈이 약한 놈을 때리는 광경을 줄곧 봐야 했다"며 "학창시절의 아웃사이더 경력 덕분에 공대 특유의 남성문화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고 했다.

노래를 짓고 있는 전상천은 "표현이 화두인 자로서, 조직적으로 고통을 가하고 표현마저 못 하도록 입막음해 온 성폭력과 성 착취의 세계에 분개한다. 그 폐부를 고발하는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위선의 허울을 쓰고 있던 남자들의 찌질한 변명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나는 말하는 여자가 좋다"고 했다.

잇페이는 2006년부터 한국에 살며 '나눔의집'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사)이주민과함께'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성매매, 성폭력에 대해 남성으로서의 책임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정종우는 "집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 똑똑하지 않아서 말싸움을 잘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게 된 남성문화가 있다"며 "몇 년 전부터 아닌 거는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선천적으로 근육이 많아 필요할 때는 센 척도 하지만 사실은 겁 많고 소심한 한국남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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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 펴낸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 윤성효


또 책에는 야동 이야기도 나온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져 야동을 많이 봤습니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다른 편이 보고 싶은 것을 참기 어렵더군요. 호기심에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찾아 보았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까지 보게 되었을 때, 이게 아니다 싶었죠"라고.

"일본 사회에서는 포르노를 너무나 많이,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다. 포르노가 홍수처럼 넘치는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일본 남성들은 마치 물에 빠지듯 포르노가 그려내는 '남녀 관계',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왔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레 포르노를 보게 되었다. 그럼 나는 과연 어떤 '남녀 관계', 어떤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살아 왔을까."(잇페이)

"섹스에 있어서도 나는 자신의 느낌이나 만족도에 대해서 스스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 사십 년을 함께 한 내 몸에 대해서 모르는 것,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은 게 아직도 너무 많다."(하루살이 아재)

남성들은 성폭력에 둔감하다는 시선도 있다. 잇페이는 "대다수 남성에게 성폭력은 '남의 일'로 인식된다. 그들에게 성폭력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가족이나 애인이 피해를 당하거나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받을 때뿐이다. 그러나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이 문제의 타자일 수 없다.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다'는 항변보다 남성들에게 더 시급한 것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성폭력에 대한 자신의 둔감함을 인식하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예전에 교제하던 여자친구가 등굣길에 전철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모르는 남성이 자기 신체를 만지는 공포감, 그 트라우마 때문에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에서 남성과 둘만 있게 될 때 너무 무섭다고도 고백했다. 만나고 몇 년이 지난 그날에야 나는 여자친구의 경험과 공포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동시에 성폭력 문제에 대해 둔감하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나'를 통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성매매는 무엇인가? 박상현은 "어떤 나라를 잠시 여행했다고 해서 그 나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하여 성 산업 전반과 성매매의 사회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성매매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이 문제를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멈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31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성매매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단지 성 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자족하면서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정동우는 "그동안 상상만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다 보니 현실감각이 없었다. 업소도 마찬가지다. 성매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업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오직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닐까"라고 했다.

허주영은 "'섹스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매매는 무엇인가?',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절대다수는 어째서 여성인가?'"라며 "이 질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승홍은 "성매매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것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을 논하는 자리였던 수요자포럼, 결국 물음은 남자는 무엇이며 그들에게 섹스란 무엇인가로, 방법은 남자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는 시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남자들끼리 (사실은 여자가 주제인 이야기 말고) 진짜 남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 더 배워나가고 싶다"(정종우).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1 -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

수요자 포럼 지음,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기획, 허주영 엮음,
호랑이출판사, 2018


#살림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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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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