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목적, 법관의 특권보장이 아니다

[주장] 최고법원의 권위,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 아닌 국민의 신뢰로부터 이루어진다

등록 2018.06.04 14:36수정 2018.06.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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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 최근 기자회견에서 "순수하고 신성한 대법원"을 강변하며, 마치 자신들이 천상(天上)에서 지상을 다스리는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자임하였다. 그 특권의식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그가 한사코 자신들 법원 내부 권력 투쟁이라는 시각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강조했던 "순수하고 신성했던" 대법원 업무로 인하여 KTX 여승무원을 비롯하여 전교조, 긴급조치 피해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고 희생되었다. 나아가 국민들은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그리하여 가장 공정해야 할 법원이 '재판 거래'라는 막장 행태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에 분노하다 못해 좌절감에 빠지고 말았다. 

법원의 목적은 법관의 특권 보장이 아니다

"순수하고 신성했던" 그 특권적 법관들은 이제 그만 천상에서 지상(地上)으로 내려와야 한다.

과연 법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은 결코 법관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국민들의 법적권리를 구제하고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대법관 숫자는 총 14명이다. 하지만 대법관 신분이지만 실질적으로 재판을 담당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대법관은 사실상 12명에 불과하다. 대법관 수는 총 16명이었던 1970년대보다 오히려 그 수가 줄었다. 공교롭게도 법률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후퇴를 가져왔던 1981년 "전두환 국보위 시절" 법원조직법의 개정을 통해 대법관 수도 축소되었다.

대법원의 권위는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제 대법관은 증원되어야 한다. 그것도 대폭 증원해야 한다. 그간 대법원은 극구 대법관 증원에 반대해왔다. 현재 대법관 증원에 대한 반대 논리의 저변에는 소수 엘리트주의의 고착에 의한 기득권 유지와 강화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거나 혹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숫자와의 비교라는 경쟁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최고법원의 권위란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신뢰로부터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란 대법원이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하여 사회구성원들이 그 판결을 수긍할 수 있으며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구현하고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대법원이 스스로 보여줄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턱없이 부족한 대법관수를 대폭 증원하고 전문부를 설치하여 전문적이고도 공정하며 신속한 상고심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독일에서 민사와 형사에 관한 상고심에 해당하는 연방(일반)대법원은 2014년 현재 12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재정, 사회, 노동 등 다른 분야를 합하면 32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독일 연방 최고법원 구성은 전문화와 국민의 재판청구권 구현의 관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독일 최고법원이 복수로 설치됨으로써 개개 최고법원들은 특정한 영역에 관련한 상고사건을 전문성을 가지고 재판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속한 재판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행정사건을 제외한 일반사건의 최고법원인 파기원(대법원)은 12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원의 존재 이유는 국민에 대한 충분한 사법서비스 제공

이렇게 하여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때까지 수요가 존재하는 한, 대법원의 재판서비스 기능이 확대되어야 한다. 상고심 서비스 수요가 더욱 증대되면 재판부의 수와 대법관의 수를 언제든 확충할 수 있도록 하고, 반면 수요가 축소되면 그에 따라 재판부 및 대법관의 수를 언제든 축소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면 된다.

'국민에 대한 충분한 사법서비스의 제공'이 목적인 것이지 '대법관 숫자'는 그 수단일 뿐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대법관의 특권 보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대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 #대법관 #긴급조치 #KTX여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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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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