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페미니스트 후보' 선거벽보, 시건방진 '눈빛'이 문제라고?

[게릴라칼럼] 불꽃페미액션의 상의 탈의 시위와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벽보 훼손을 바라보며

등록 2018.06.05 21:15수정 2018.06.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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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앞서 페이스북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반라 사진만 삭제하는 점을 규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일요일이던 지난 3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은 한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시간 차지하고 있었다. 앞선 2일 오후 이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에서 여성의 반라 사진을 삭제하는 페이스북의 내부 규정을 규탄하며 벌인 상의 탈의 퍼포먼스가 뒤늦게 화제를 모은 것이다.

물론, 반라라서가 아니었다. 불꽃페미액션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며 벌인 퍼포먼스에 대해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상에서 남녀차별에 관한 갑론을박이 재점화된 것이다. 이와 관련, 경찰은 4일 이들의 상의 탈의 퍼포먼스에 대해 과다노출 등 경범죄처벌법이나 공연음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불꽃페미액션 측이 '우리는 음란물이 아니다'란 구호를 앞세워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는 어렵지 않다. 남성의 상의 탈의 사진은 음란물로 분류하지 않는 반면 여성의 반라 사진만 음란물에 포함시키는 페이스북의 규정 자체가 여성혐오이자 전형적인 여성 신체에 대한 성적 대상화라는 것이다.

앞서 페이스북코리아측은 지난달 26일 '월경 페스티벌' 행사 도중 불꽃페미액션이 상의를 탈의하고 찍은 사진을 게시하자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행위에 관한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했다'며 삭제한 바 있다. 페이스북코리아 측은 논란을 의식한 듯 시위 이튿날인 3일 "오류로 인한 삭제였다"며 해당 사진을 복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일요일 한 쪽에서 여성의 반라 사진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사이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여성 후보의 벽보 사진은 보기 드물게 훼손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바로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한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벽보 포스터였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 벽보, 훼손하면 범죄입니다


'벽보 훼손 현황 : 강남 21곳 동대문 1곳 노원 1곳 구로 1곳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신지예 후보가 4일 오후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글 중 일부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신 후보의 벽보가 훼손됐다는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 중이라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1동·대치2동 등 총 6곳에서 벽보를 감싸고 있는 비닐이 찢긴 채 신 후보의 선거 벽보가 사라졌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하면서 벽보가 훼손된 경위와 고의 훼손 여부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공직선거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나 현수막을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운동 첫 주말에 일어난 이러한 선거 벽보 훼손 사례는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신 후보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자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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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역 앞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벽보 포스터를 두고, ① 선거포스터인데 눈빛이나 표정이 시건방지다 ② 제 다른 사진들과 포스터 사진을 비교하며 얼평 ③ 눈을 파서 훼손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관위와 경찰에서 현재 조사 중이지만, ① 여성이 친절하게 웃어주는 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정을 지적받고 ② 의견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외모평가, 인신공격을 당하거나 ③ 모르는 사이 헐뜯기는 경험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선거벽보 훼손이 중범죄인 것도 모르고 훼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법의 보호를 받으니 이 정도만 훼손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과도하게 공격받을 일이 됩니다. 그러나 저도, 여러분도, 그리고 앞으로의 이 사회도 페미니스트들이 성취하는 변화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의 손을 잡고 더 멀리 나아가겠습니다."

'시건방진 눈빛'이 진짜 문제일까

이와 관련, 녹색당 신지예 후보 캠프도 지난 2일 '페미니스트 정치에 대한 백래시에 굴하지 않겠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 모든 것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를 표방하고 있는 신지예 후보에 대한 공격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에 대한 백래시"라고 규정했다.

또 신 후보 캠프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신지예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강남지역의 선거벽보 훼손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며 "신지예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서울특별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철저한 조사를 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들에게 아래와 같이 호소하기도 했다.


"신지예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가 정책들은 매우 상식적인 정책들이다. 성폭력과 성차별을 없애고, 서울을 성평등이 실현되는 도시로 만들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낙태죄 폐지와 동성결혼 법제화 발맞춰 서울시가 임신중지 여성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동반자 조례를 제정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오프라인에서 벽보가 대대적으로 훼손됐다면,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지난 4일 한 유명 변호사가 신 후보의 포스터를 두고 "더러운 포스터"라거나 "개시건방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란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어 논란을 부채질 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이 변호사는 즉각 "페미니즘과 후보를 비방하는 관점은 전혀 없이 사진 구도와 벽보의 분위기에 대한 저의 비평"이었다며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사과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논란은 오히려 신 후보의 인지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4일 하루 일부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이러한 황당무계한 비난에 반박, 프로필 사진을 신지예 후보의 것으로 바꾸거나 '시건방진' 사진으로 바꾸고 신 후보의 포스터를 공유하는 등 나름의 '액션'을 취하기 했다.

여성 공직 후보자에 대한 '시건방지다'라는 남성 법조인의 비방이 기존 녹색당 지지자는 물론 선거 벽보에 유일하게 '페미니스트'를 명시한 '1990년생 여성' 신 후보를 부각시킨 결과로 귀결됐다고 할까. 

남성적 시선 아래 갇힌 신체와 비난을 거부하며 

성적 대상화에 대한 반발과 '개시건방진' 눈빛 사이의 그 아득한 간극. 불꽃페미액션의 퍼포먼스와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선거 벽보의 공통점은 '페미니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극과 극인 것 같지만, 한국의 주류남성 사회가 여성의 신체를, 페미니스트 여성을, 그리고 젊은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와 정치인)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선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봐야 옳다.

먼저 페이스북 코리아의 경우, 부적절한 음란물 규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던 사안이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을 표방한 여성 단체가 분노 어린 퍼포먼스를 벌였고, 그 형식을 두고 찬반이 갈릴 순 있지만 페이스북 코리아가 즉각 조처를 취함으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경찰로부터 실정법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받은 것은 물론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측에서 쏟아낸 비난의 경우 상의 탈의 시위를 주도한 단체가 충분히 예상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반발에 맞서 불꽃페미액션과 페미니즘은 물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액션'을 세상에 알린 것만으로도 이번 상의 탈의 시위는 유의미한 퍼포먼스였다고 자평할 만하다.

사실 문제는 신 후보에 대한 벽보 포스터 훼손과 이어진 난데없는 비난이라 할 것이다. 선거벽보 훼손은 선거 기간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그저 '페미니스트'란 이념적 정체성을 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벽보 훼손이란 '범죄'를 즉물적으로 저지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담함을 안겨준다. 이러한 공격성이야말로 2018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도처에서 겪어야 할 남성우위 사회의 본질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페미니스트란 문구와 함께 신 후보의 '눈빛'을 문제 삼는 시선 역시 전근대적이긴 마찬가지다. 역설적으로 그간 사회 주류를 형성해온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쏟아낸 갖가지 시선을 감안한다면 가당치도 않은 침소봉대로 치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후보가 포스터에서 짓고 있는 표정이, 눈빛이,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문구가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그 불편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스스로의 젠더 감수성을, 성평등 의식을, 소수자에 차별적 시선을 먼저 돌아볼 일이다.

그 '개시건방짐'을 응원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혁명의 봄을 지났습니다. 이전에는 해일 앞에 조개처럼 여겨졌던 문제들이 파도가 되어 왔습니다. 미투, 그리고 위드유. 불법촬영근절 등 여성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터부시되었던 이야기들, 성폭력과 성차별, 여성혐오, 낙태죄 등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여성과 소수자 문제는 항상 나중. 나중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시대의 소수자 편에 서야 합니다. 이 불공정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여성으로서 서울시장에 나온 이유입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관습이라 부르지 않는 서울을 꿈꿉니다. 건물주에게 쫓겨나지 않고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서울을 꿈꿉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프리랜서가 갑질 당하지 않는 서울을 꿈꿉니다. 성소수자가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놓고 자신 그대로 살 수 있는 서울을 꿈꿉니다. 여성이 어두운 밤길과 공공화장실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서울을 꿈꿉니다."


지난 4일 KBS <2018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자 토론회>에 나선 신 후보의 연설문 중 일부다. 아마도 이러한 신 후보의 연설문은 '왜 녹색당 후보가 친환경, 환경문제 해결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페미니즘 내세우느냐'는 세간의 딴죽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될 것이다. '생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진보정당이, 소수정당이 내세울만한 주장과 내용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필 같은 날 논란이 된 불꽃페미액션의 상의 탈의 퍼포먼스와 신 후보의 선거 벽보 훼손 사건은 꽤나 상징적이라 할 만 하다. 조금 비약하자면, 6.13 지방선거를 넘어 현실 영역과 현실 정치에서 커져가는 여성의 목소리가, 소수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일례가 아닐는지. 거두절미하고, 그 '개시건방짐'이야말로 한없이 후퇴해버린 한국사회의 지평을, 인권의식을 넓히는 동력 아니겠는가.

#신지예 #불꽃페미액션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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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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