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세탁기 고쳐달랬더니 "캄보디아에 세탁기 없잖아"

이주노동자들에게 쉽게 말하는 한국인 사장님들

등록 2018.06.11 17:09수정 2018.06.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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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멀어요?"
"잠깐만요, 검색해 보고."
"택시 비싸요?"


조급하게 거리를 묻고, 택시요금을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차멀미 때문이었다. 버스 탈 때면 검은 비닐봉지를 가방에 준비해 놓지만, 주위 사람들 눈길이 여간 부담스런 게 아니다.

실직 중이라 한 푼이 아깝긴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부담이 덜하면 택시를 탄다. 캄보디아 코살 이야기다. 일자리를 알아보고 온 코살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멀미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면서 물었다.

"아파요? 멀미?"
"아니요."


"사장님 만났어요? 좋아요?"
"아니요. 일 안 해요."


"왜요?"
"모기 많아요."


모기가 무슨 대수일까 싶어 모기약 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어쩌면 진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모기는 모기약으로 칙칙!!"
"화장실 더러워요."


코살과 같이 갔다 온 짠타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말해요. 캄보디아 모기 많아."

코살이 갔다 왔다는 농장은 하천을 옆에 끼고 있어 길섶 풀이 무성했다. 농장 기숙사는 검은 비닐하우스 안에 놓인 컨테이너였다. 늙은 능수버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농자재가 널려 있던 컨테이너엔 모기가 들끓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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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와 기숙사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를 놓고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는 기숙사 ⓒ 고기복


요즘은 시골 농부들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서 코살이 만난 사람도 캄보디아를 갔다 와서 아는 체했는지 모른다. '캄보디아에 모기 많다'고 했던 사장 이야기를 들으며 며칠 전 쉼터에 온 판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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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곰 인형 세탁 후에 통통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 고기복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 농장에서 판나는 사람만한 갈색곰 인형을 친구로 삼았다. 처음 농장에 갔을 때 곰 인형은 볼살부터 뱃살까지 통통 그 자체였다. 사장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자 판나는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고 쉼터에서 곰 인형을 빨았다.

아무리 깔끔하게 청소한다 해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보면 흙이 묻기도 하고, 방 안에 놓인 물건들은 때가 타기 마련이었다. 지난겨울부터 판나는 손빨래를 해야 했다. 농장주 부인은 판나에게 "캄보디아에 세탁기도 없잖아!" 하면서 고장 난 세탁기를 고쳐주지 않았다. 세탁기가 없다는 말에 판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쉼터에서 판나는 캄보디아에 대해 뭘 좀 안다는 듯이 말했던 사장에게 "캄보디아에 세탁기가 없긴 왜 없어요!"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세탁기를 맘껏 돌렸다. 덕택에 곰 인형은 다이어트를 했다. 세탁기에서 땟국을 뺀 인형은 실직과 그간 무시당했던 일을 떠올리는 판나 표정을 닮았다. 살이 쏙 빠져서 무언가에 심통이 잔뜩 난 아이처럼 입을 삐죽거린다.

사람이 아는 체한다는 게 이처럼 무지할 수 있다. 코살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모기 많은 나라에서 왔으니 모기 많은 기숙사에 살라는 게 일손 구하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들어와서 살게 되면 방충만도 해 주고, 모기약도 뿌리면 좀 나아질 거다'라고 했다면 코살은 마음을 달리 했을지 모른다.

차멀미를 했던 코살이 속이 진정됐는지 국수를 삶았다.

삶은 국수 한 소쿠리

플라스틱 소쿠리 위에
삶은 국수가 널렸다
비닐하우스에서 쫓겨나고
방금 전주에서 올라 와
차멀미로 입맛 잃었다던
코살이 국수를 먹으려나 보다


캄보디아에선 국수가 힘내는 밥이다
먹고 힘내려는 코살은 국수를 찾고
때 이른 유월 뙤약볕에
밥맛 잃은 시인도 국수를 찾는다


밥맛없으면 입맛으로 먹는다 했는데
누군가는 살아 보려고 먹고
누군가는 별식으로 찾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던 이가 그립다
국수 권하는 이와 미소로 말을 나눈다
먹어야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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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캄보디아인들이 즐겨 먹는 국수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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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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