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박정희 기념사업 전부 폐기해야

잊어선 안 되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알리는 ‘그해 봄’

등록 2018.06.11 09:26수정 2018.06.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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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선, 김용원, 송상진, 하재완, 이수병, 도예종, 여정남, 서도원.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이름들입니다.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한 유신헌법 제정으로 반대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이 여덟 명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조서를 조작하고 결국엔 사형시켰습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고 김종필이 국무총리로 있던 1975년 4월 9일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빨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여덟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채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가는 구금되어 있는 기간 동안 피해자들을 가혹하게 고문했고,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재판도 형식적으로 했습니다. 박정희의 국가는 이렇듯 공공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이후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게 했고, 이후 가족들조차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끈질기게 감시하고 괴롭혔습니다.

박건웅 작가는 너무나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사형수 유가족들, 선후배 동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사건을 <그해 봄>이라는 만화로 2018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전합니다. 이야기는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여덟 명의 피해자들의 삶과 당시 그들이 겪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스러운 진술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박힙니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던 유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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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표지 ⓒ 보리


고통스럽게 죽어간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던 유가족들의 한이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글로 표현된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한 번에 읽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 줄 읽고 멈추고 또 한 줄 읽고 멈추고를 반복하다 이내 책을 덮고 먹먹해진 가슴이 풀어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넋을 떠나보낸 산송장처럼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햇빛을 보지 않고 어두운 방에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장대비 쏟아지듯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자던 나도 따라 울었습니다. 그러면 건넌방에선 큰 언니가 울고 부엌에선 작은 언니가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쳐 탈진한 어머니에게 물을 드리려고 밖으로 나가면 벌겋게 부은 눈의 작은 언니가 눈을 흘기며 물을 따라 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흘겨보고 미워하며 등을 돌리곤 했습니다. 마음 속의 증오와 절망, 혼까지 태워버릴 것 같은 분노를 서로에게 말고는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가 없었으니까요."(68쪽)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은 뒤 우홍선씨의 딸은 학교에서 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학교에선 마치 자신들의 부모가 죽은 듯 온 교실이 울음바다였고, 단체로 추모행사에도 참석해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인 사람의 죽음을 추모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마음은 글로 전해읽는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우홍선)가 돌아가신 뒤 정신적 고통이란, 바로 내가 살아 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 한 귀퉁이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암세포와 같은 것입니다."(74쪽)

하재완씨의 아내가 겪었던 일 역시 독자들을 말할 수 없는 참담함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국가는 사건을 조작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국민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당시 모습을 상상하니 서글픔과 비참함이 밀려듭니다.

"동네 아이들이 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마을 앞 당산나무에 묶어 놓고 간첩이라고 죽여야 한다면서 장난감 총으로 총살시키는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난 치고는 너무나 지나친 그 장면을 동네 어른들이 지켜보면서 꾸중은커녕 구경하며 웃었다 하니 얼마나 기가 차고 비참했는지 모릅니다."(185쪽)

진실이 밝혀진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2007년 1월 23일 오전 무죄를 선고하자 유가족들과 김형태 변호사는 '고인들의 누명이 이제라도 벗겨져 다행'이라고 환영 의사를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5년 12월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월 23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면 끝나는 것일까요?

명예는 회복되었으나 돌이킬 수 없는 여덟 명의 무고한 생명과 그 유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삶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국가가 자행했던 이 살인 사건을 대한민국 시민들 모두가 기억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작으나마 보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내 남편과 나를 유린했는데 세상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유신, 온갖 불법적인 만행은 잊고 온 국민이 보릿고개를 없애고 경제를 발전시켜 우리를 잘 살게 해 준 대통령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말하는 도예종씨 아내의 말에서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천해야 할 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박정희에 대한 모든 예우와 기념사업을 전부 폐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은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시절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국가가 국민들에게 행한 폭력은 계속 있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책임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은 것처럼 이 무자비한 사법살인의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재판과 철저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도예종씨의 딸이 종로경찰서 정보과에 가서 항의하자 경찰들이 했던 대답이 더는 나오지 않는 국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적인 희생이지. 우리도 살기 위해서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뿐이야."(268쪽)

최근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과 그 동조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했던 정황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박정희 당시 살기 위해 시키는대로 사형 선고를 했던 판사들의 모습과 박근혜 정부 때 판사들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했던 판사들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은 불의한 권력 탄핵 이후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한 번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살인의 책임자들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 국무총리, 민복기 대법원장, 황산덕 법무부 장관, 서종철 국방부 장관, 김치열 검찰총장,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이용택 중앙정보부 6국장, 윤종원 중앙정보부 수사팀장, 문호철 서울고등법원 검사.

1심 보통군법회의 판결 판사들: 박현식, 류병현, 박희동, 이희성, 강신탁, 신현수, 권종근, 신정철, 박천식
2심 고등군법회의 판사들: 이세호, 윤성민, 차규헌, 문영극, 박정근
3심 대법원 판사들: 민복기,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한환진, 임창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홀로 반대의견 제출)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그해 봄 -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이야기

박건웅 지음,
보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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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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