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혜화역 시위대 곁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손으로 말하기까지>, '정상성' 규범 아래 배제되는 사람들

등록 2018.06.11 22:14수정 2018.06.1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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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여성들, 모이다 5월 19일 오후 3시 서울 혜화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에서 열린 1차 시위 모습. 지난 9일엔 같은 장소에서 2차 시위가 열렸는데, 1차 시위에 비해 더 많은 여성들이 몰려들었다(주최 측 추산 3만여 명, 경찰 추산 1만5000여 명). ⓒ 곽우신


6월 9일 토요일은 모두가 혜화역 시위에 주목했던 날이다. 언론에서도 SNS에서도 모든 관심이 혜화역 시위에 쏠려있던 날이다. 나도 혜화역에 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시위 예정지 바로 옆에 위치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제23회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을 보기 위해 혜화역에 갔다.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개막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는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6월 6일 수요일부터 6월 9일 토요일까지 총 나흘에 걸쳐 진행됐다.

'정상'을 규정하는 건 누구인가

"적막을 부수는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삶과 만나 광장을 채울 파동이 됩니다. 투쟁의 파동은 적막에 가려진 기억을 끌어내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냅니다"라는 테마에 맞춰 기획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총 25편의 인권영화를 상영했으며, 상영작들을 기반으로 11개의 섹션을 구성했다.

섹션별 주제는 다음과 같다. [투쟁의 파동],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보인권-표현의 자유], [자본의 톱니], [시민을 묻다], [혐오에 저항하다], [존재의 방식], [삶의 공간], [기억과 만나는 기록], [제주 4.3 70주년 특별전].

내가 관람했던 상영작은 [존재의 방식] 섹션에 해당하는 <손으로 말하기까지>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Seeing Voices'인데,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면 '목소리들을 보다'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목소리를 보다'라는 표현이 ('청각의 시각화' 같은)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는 농인들의 독자적 언어로서 '수어'가 가지는 의미와 청인중심 사회가 어떻게 '수어'를 배제하고 있는지 들려줌으로써, 목소리를 보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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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손으로 말하기까지(Seeing Voices)>의 포스터 ⓒ Seeing Voices


<손으로 말하기까지>는 21세기 오스트리아 사회에서 농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서로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수어를 통해 타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다.

농인 자녀와 청인 자녀를 동시에 키우고 있는 농인 부부의 삶, 학교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농인 교수의 일상, 청인중심사회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농인 청년들의 고민, 그리고 수어를 동등한 언어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의 이야기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네 개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영역에서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청인중심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장벽(barrier)이 있다. 즉, 청인중심사회에서는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가 동등한 언어규범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농인들에게 청인중심사회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청각손상을 진단받은 영유아에게 '수어'를 가르치기보단 '인공와우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가 있다. 이때 의사의 권유를 단지 '의학적인 처방'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가 청인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청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수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가치판단 하에 내려진 처방이기 때문이다. 즉, 의학적 진단의 기준이 되는 '건강한 몸=정상적인 몸'이라는 전제 자체가 '정상성'을 강조하는 사회규범의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농인들에게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장애를 '치료(혹은 극복)'할 것을 요구하는 처방이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자신이 구화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수어를 쓰는 이유가 '농인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생각해보면, 구화를 통한 의사소통에서 편한 쪽은 당연히 청인일 수밖에 없다. 농인들은 청인들의 입 모양을 보고 청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청인들의 언어규범(입으로 말하기)을 그대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기'라는 언어규범을 유일하고 정상적인 의사소통행위로 간주하는 사회가 '손으로 보고 손으로 말하기'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아직도 청인중심사회의 '정상성' 규범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해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영어권 국가에서 한국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되고 일상적인 무시를 경험한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것은 인종차별이다'라고 분노할 것이며 당신은 '영어사용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생각은 안 하고 나에게 영어를 쓸 것을 강요하냐'는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수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청인중심사회는 수어를 자꾸만 '몸짓의 일부', '바디랭귀지', '연극적 표현'으로 주변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어에도 독자적인 문법체계가 있고, 단어가 있고, 각 나라별 알파벳이 존재한다. 따라서 동등한 언어규범으로서, 외국어로서 수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수어 통역사'가 되려면 이러한 문법체계를 공부해야 하며, 수어통역사에게는 영어동시통역사들에게 요구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언어적 전문성이 요구된다.

'우리'를 가두어 고독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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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제23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정희진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누가 협상 자리에 앉아있지 않은 지, 누구의 관심사가 명확히 표현되고 있지 않은 지, 누구의 이득이 표명되고 있지 않은 지"를 인식하는 과정의 정치(<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2쪽)라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동안 "우리는 말한다, 너희가 들어라"고 외쳐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말하는 우리'를 굳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생물학적 여성'들을 참가 자격으로 내걸었던 시위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외침이 울려 퍼질 때, 고작 가로수 몇 그루를 경계로 구분된 다른 한쪽에서는 '존재의 방식'을 묻는 장애인권영화, 퀴어인권영화가 상영 중이었으며 영화 속 등장인물들 역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페미니즘의 역사가 남성중심적 언어규범에 균열을 내면서 세상을 해석하고 타자와 소통하는 과정이었다면, 페미니스트는 기꺼이 새로운 언어들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언어를 독점하고 타자들을 밀쳐내고 '정상성'의 규범을 강화하는 운동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를 '우리' 안에 가두어 고독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참고) 서울인권영화제 소개 및 후원활동가 문의/신청
* 전화 : 02-313-2407 · E-mail : hrffseoul (at) gmail.com
* 사이트: http://hrffseoul.org/ko/about
#서울인권영화제 #페미니즘 #장애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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