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바꾼 촛불, 왜 정치는 못 바꿨을까

[리뷰]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시민 정치... <듣도 보도 못한 정치>

등록 2018.06.11 10:19수정 2018.06.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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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 가는 길마다 어지럽기 짝이 없다 ⓒ 이희동


선거의 계절이다. 비록 판문점 선언이다, 북미정상회담이다 해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6.13 지방선거지만, 오늘도 창밖은 유세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선거송으로 시끄럽기만 하다.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수많은 현수막과 선거운동원들. 한 번의 선거를 위하여 이렇게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의아할 정도이다.

정부와 언론은 하나같이 중요한 지방선거라고 떠들어 대지만,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내 손으로 뽑은 그들이 과연 나를 위해, 우리 지역사회를 위해 얼마나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회의감은 중앙에서 지역으로 올 때 더욱 심해진다. 광역 단위야 워낙 후보자의 지명도도 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지만, 기초 자치단체 정치인의 경우는 그가 누구인지, 또한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선거 홍보지에는 지하철 노선 확대서부터 시작해서 지역의 온갖 욕구들이 백과점식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당과 상관없이 거의 비슷한 그들의 공약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심하기조차 하다. 그것들이 진짜 우리 지역에 필요한 것인지, 또한 그들이 그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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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홍보지들 정보의 홍수 ⓒ 이희동


게다가 이런 불신을 더욱 조장하는 것은 정작 정치인 본인들이다. 지난 3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기초의회 4인 선거구제 축소나 최근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체포동의안 부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강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한다. 대통령은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 여전히 정치인들은 말로만 국민을 위하고 있다.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통해 대통령까지 바꿨지만, 아직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큰소리칠 수 있는 사회. 과연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대의민주주의의 시스템에 기대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을 쫓아내고 시민의 이름으로 정치를 찾아올 수 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정치>는 그와 같은 고민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그리고 그 고민에 답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운동과 그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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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이진순, 2016, 문학동네 ⓒ 문학동네


저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등에 나타난 정치세력에 주목한다. 그들은 기존의 무능력하고 관료화되어 있는 정치권에 대항해 시민들이 직접 나선 사례로서, 풀뿌리 시민참여정치가 어떻게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경우를 보자. 1992년 올림픽 유치 이후 유럽 최대의 관광도시 중 하나가 된 바르셀로나는 2008년 당시 GDP 기준 세계에서 35번째, EU에서는 4번째로 경제력이 큰 도시였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15가구, 2014년 상반기에만 7000가구가 살던 집에서 강제로 퇴거당했다.

우리 언론들은 당시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의 경제도 무너졌다며 길거리에서 시위 중인 시민들의 영상만 내보내고 말았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단순히 시위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게 모인 에너지로 새로운 정치적 계기를 만들어냈다. 풀뿌리 시민정당 '바르셀로나 엔 코무'를 만들고, 그 정당이 2015년 5월 기성정당을 물리치고 지방선거 득표율 1위를 기록하여 바르셀로나 시의 새로운 지방정부를 구성한 것이다.

그 뒤 시의원들의 간선 투표를 거쳐 바르셀로나 엔 코무 소속의 첫 여성 시장 아다 콜라우가 탄생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단체 출신으로서 기성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다. 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해 거리로 나앉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아다 콜라우 시장은 누구보다 서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야기한 자본의 손을 뿌리치고, 오로지 시민의 관점에서 시정을 돌봤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기존 정치권의 문법 대신,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이고 투명한 정책을 폈으며 끊임없이 시민들의 의사를 시정에 반영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풀뿌리민주주의, 시민참여의 정치를 실현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바르셀로나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바를 시사해준다. 우리는 비록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을 바꿔냈지만 정치 구조 자체는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정당 의원들이 국회 내 절반 가까이 차지하여 새로운 평화 시대를 가로막고 있으며, 집권당은 지역으로 내려오면 여전히 지역 토호 세력과 손잡고 이권놀음에 빠져있다.

왜 우리의 촛불집회는 스스로 정치화 되지 못했을까? 분단구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08년 촛불의 기억 때문일까? 어쨌든 저자가 제시한 해외 사례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디지털 민주주의

온라인 플랫폼이란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하며, 다양한 사용자들이 수평적으로 교류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반의 도구를 의미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온라인 '시민' 플랫폼은 시민들이 공익적 목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 협력하며,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 128p


또한 저자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낸 뉴질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해외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시민참여정치를 촉진시키는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결국 민주주의가 성숙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IT의 발달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의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의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디지털 민주주의는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냈던 기성 정치권이 시민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시민의 참여와 토론을 독려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포털의 독점과 그것을 이용한 매크로 조작 등 디지털 민주주의의 한계와 폐해를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해외의 많은 이들은 한국의 IT 기술력 때문에 온라인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가 발달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시민의 의식 또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몸소 증명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하되, 그것을 운영하고 참여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IT 기술이 발전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이 상호 감시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독과점은 항상 민주주의의 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비록 이번 선거 한 번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를 두려워하고, 유권자의 뜻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세력을 뽑아야 하며, 동시에 유권자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촛불혁명'의 마지막 과정일 것이다.

"종북좌파가 싫으면 나를 선택하라"와 "독재의 부활이 싫으면 나를 선택하라"의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정치가 강요되는 동안,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공민주주의와 반독재민주주의의 제한된 답안지를 벗어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세우는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 14p

듣도 보도 못한 정치 -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

이진순.와글 지음,
문학동네, 2016


#6.13 지방선거 #정치 #선거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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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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