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을 하지'의 유래, 이런 거였어?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29] 인문학의 소중한 가치

등록 2018.06.14 11:13수정 2018.06.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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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에서 수병생활을 했다. 그 시절의 과학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잠수함에 산소 측정기가 없었다. 잠수함의 산소가 고갈되면 사람이 죽는데, 토끼가 사람보다 7시간 정도 먼저 반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잠수함에 토끼를 키우면서 상태를 유심히 살펴 산소의 양을 측정한 것이다.

토끼가 호흡 곤란을 겪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면 물 위로 떠 올라 산소를 공급받았다. 말하자면 토끼는 일종의 경고등이었다. 어느 날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의 토끼가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죽었다. 그러자 함장은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유난히 강한 게오르규를 토끼 대신 그 자리에 있게 했다. 이러한 체험을 한 게오르규는 "시인은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즉 시인은 그 사회의 이상(異常)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알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굉장히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이란 파수꾼처럼 고독한 광야에서 어둠과 맞서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권력에 의한 폭력과 압박 등으로 인해 시인들이 고통스러워하면 사회는 심하게 병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진정한 시인은 세상의 부조리를 참지 못한다. 현실의 부조리에 고통스러워하며, 그 고통을 통하여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며, 그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모든 것이 다 타락을 한다고 할지라도 시인만은 순수의 척도로 남아야 하는 까닭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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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香白里 人香萬里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사람의 향기는 정신적 가치가 흐르고 넘쳐서 문학과 예술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그 정점에 핀 꽃과 같다. ⓒ 이명수



'시인'하면 뇌리를 스쳐 가는 영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주입식 교육으로 메말라 가는 학생들에게 인간애와 자유를 심어 주는 '키팅' 선생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인데도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대사와 몇몇 장면은 기억에 남아 있다. 제목에 이 영화의 주된 관점이 담겨 있는데, 주요 등장인물들의 비밀 조직 이름이기도 하고,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웰든 아카데미는 미국의 8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강압적인 교육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명문고이다. 입학식 날 '존 키팅'이라는 국어 선생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처음부터 엉뚱한 수업 스타일로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시(詩)를 공부하는 시간에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시를 알기 위해서는 운율, 음조, 비유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는 '시 원론'을 읽게 한다. 칠판에 그래프를 그려가며 좀 정상적으로 설명하는가 싶더니 싹싹 지워버리고 "쓰레기!"라고 외친다. 키팅 선생의 이어지는 대사에 영화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를 측정하려는 이 책의 페이지를 찢어 버려. 어서 찢어 버려. 시는 단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란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너희들 또한 한 편의 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시를 써야 한다. 시를 분석하고 측정하라는 그 페이지를 찢어 버려라."

선생님의 외침에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린다. 용기 있는 몇몇이 북북 페이지를 찢어 버리고, 그제야 다른 학생들이 따라서 행동한다. 키팅 선생은 참교육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며 영혼의 촛불에 심지를 돋워준다. 영화에서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현재를 즐겨라!'로 해석되는 라틴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삶의 유지에 필요한 수단들이 삶의 목적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사회가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황금만능주의가 인간 사회에 소중한 가치들을 많이 집어삼켜 버렸다. 야망과 욕망만 충만할 뿐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희박하다. 시인이 죽든 소설가가 죽든 상관하지 말고 나만 잘살면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패배자가 되니까 학생 때는 고생스럽더라도 꾹 참고 공부만 하라고 끝없이 주입하고 강요한다. 그리하여 적자생존, 승자독식 등 시장 지상주의에 충성스러운 부속품이 된 냉혹한 이기주의자들이 꾸역꾸역 양산되는 것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영화 속에 나오는 웰든 아카데미 같은 풍조다. 부모가 주입시킨 꿈이 자신들의 꿈으로 둔갑해 있고, 무조건 좋은 대학, 연봉이 높은 직업을 얻고 더 좋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게 경쟁하는 구조이다.

백년대계라는 공교육이 경쟁으로만 몰아붙이다 보니, 세상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하는 인성교육이 설 자리를 잃고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전인교육은 케케묵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인식만 불어넣다 보니 갖가지 반칙이 난무하고, 올바른 가치관이 뒤죽박죽되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조차 경계가 희미해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시가 없다면

경쟁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의식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民主)'와 더불어 산다는 '공화(共和)'를 지엄한 가치로 명문화했다. 화(和)라는 것이 벼화(禾)에 입구(口)가 합쳐진 것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의미를 연장할 수 있는데,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생겨나는 것이 공동체 의식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다. 무인도에서 자급자족으로 혼자 살아간다면 모를까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사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모두 그 속에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교육의 근간이 되어 '사람의 길'부터 가르쳤다. 전통시대 때 유교 지식인의 필독서였던 사서삼경 중 제일 먼저 배워야 했던 <대학>은 동양의 인문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학'은 '대인지학(大人之學)', 즉 '큰 사람이 되기 위한 학문'을 줄인 말로 오늘날의 '대학교'라는 명칭이 비롯되었다.

<대학>에서는 유학의 큰 틀을 제시하고 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순서를 8조목으로 명징하게 정리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후에야 알게 되고, 바르게 알아야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져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 몸이 닦이고, 몸이 닦아져야 집안이 바로잡혀지고, 집안이 바로잡혀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져야 천하가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순서와 과정이 학문의 금과옥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기술과 능률, 눈에 보이는 성과 등 실용을 중시하면서 인문학적 가치가 뒷전으로 쑥 밀렸다.

인문학적 소양이 충분하지 못할 때 인성은 피폐해지고, 윤리의식은 사라지며,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배금사상의 노예가 된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을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는 핵무기 등이 국제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무분별한 개발로 말미암아 자연과 생태계 환경이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터전이 대책 없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인륜 도덕은 과학 기술적 지식보다 훨씬 더 우월한 가치다. 사람의 도리와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 사는 사회에 따뜻한 인간애가 깃들게 하자는 뜻이다. 첨단의 끝을 달리는 어떠한 기술이 발명되더라도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없다면 미치광이에게 칼을 쥐여준 격으로 치명적인 무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

세상에는 꼭 필요한 것이 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도 있다. 공기, 물, 불, 식량 등은 생존에 절대 필요하다. 없으면 생명이 살아갈 수 없다. 자동차, 휴대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利器)는 없으면 많이 불편하겠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는 어떨까? 안도현 시인은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라고 노래했다. 철 따라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을 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다. 사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지만, 알면 그만큼 삶의 질이 풍부해진다. 시 또한 그렇다.

알아도 몰라도 그만이 것이 어디 꽃과 시뿐이랴! 지저귀는 새소리를 안 들어도 살 수 있고, 문학과 예술을 몰라도 사는 데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을 것인가!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인문학을 바라보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속물주의자들에게는 인문학적 가치가 '빌어먹기 딱 좋은 바보짓'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인 짐승이 아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산다면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뭇짐승과 차별이 되는 것은 정신적 가치를 알며, 그것을 행동으로 발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약하고 가련한 존재를 보면 그냥 빼앗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심,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인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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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영혼의 음악이다인간의 삶과 정서를 가장 농밀하게 응축해낸 것이 시다. 짧은 문장 속에 상징적, 은유적, 비유적, 함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짧으면서도 깊고 풍부한 정서와 많은 생각 거리를 준다. ⓒ 이명수


나는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은 물질이 아니고 정신적 가치라고 본다. 참된 것을 탐구하는 지적 가치, 착하고 정당한 것을 지향하는 도덕적 가치, 아름다움과 좋은 것을 추구하는 미적 가치, 그리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종교적 가치가 어우러져서 사람의 향기를 만든다. 화향백리(花香白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다.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말이다. 사람의 향기는 정신적 가치가 흐르고 넘쳐서 문학과 예술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그 정점에 핀 꽃과 같다.

일찍이 공자는 시의 가치와 힘을 통찰한 사람이었다. 전래의 시 300편을 <시경>으로 편찬했고,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당부가 시 공부였다. <논어> '양화편'에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명문화해 놓았다.

"젊은이들이여,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는가? 시는 사람의 의지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세상의 흐름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으며,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여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 가깝게는 부모를 봉양하는 것부터 멀게는 군주를 모시는 도리에 이르기까지 일러주며, 그 밖에도 수많은 종류의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한다."

공자는 시 공부를 게을리하는 아들 백어(伯魚)를 이렇게 꾸짖었다. "너는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에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은 <시경> 첫머리에 나오는 글의 편명(篇名)이다. 이 말의 핵심은 시를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마치 담벼락을 마주 보고 서 있는 것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견문과 학식이 적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벽창호 같은 사람도 적지 않다. 면장(免牆), 즉 담벼락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답답함을 면하려면 시를 공부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알아야 면장을 하지'이다. 동음이의어인 '면장(免牆)'이 '면장(面長)'으로 와전된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면(面)의 행정을 맡아보는 면장뿐 아니라 이장(里長)이라도 하려면 뭔가 아는 것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회자하는 말 중의 하나가 '소통'일 것이다. 한자로 '트일 소(疏)'와 '통할 통(通)'을 합한 단어인데, 글자 그대로 '서로 뜻이 잘 통해서 오해가 없는 것'을 뜻한다. 사회 전반에 소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말이 안 통하니 오해가 쌓이고, 다툼을 부르며, 잔뜩 꼬인 갈등을 해소할 길이 없어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이 통하려면 우선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먼저 시를 공부하여 담벼락을 면한 연후에 예(禮)를 배우라고 하였다.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는 말이 있다. 영혼, 즉 존재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종류의 울림이 시로 표현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시란 그 뿌리는 감정이요, 가지와 잎은 언어이며, 꽃은 운율이고, 열매는 의미이다(詩者 根情 苗言 華聲 實義)."라고 하였다. 인간의 삶과 정서를 가장 농밀하게 응축해낸 것이 시다. 짧은 문장 속에 상징적, 은유적, 비유적, 함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짧으면서도 깊고 풍부한 정서와 많은 생각 거리를 준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는 인문학의 힘을 느낄 때가 잦다.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가난과 외로움, 고통과 서글픔, 막막하거나 분한 감정 등이 생길 때 그 어둡던 마음을 어루만지며 긍정 쪽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은 늘 인문학의 힘이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위로가 되고 선물이 되는 글은 반드시 있다. 겉으로 보면 인문적 삶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영혼이 충만해지는 좋은 삶이다.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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