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망천 정태옥 탈당? 어차피 정치는 쇼잖아"

[르포] 분노와 피로감으로 뒤범벅된 인천... '이부망천'이 불러온 정치 혐오

등록 2018.06.12 21:08수정 2018.06.1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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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인천 서구의 한 사전투표장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 조혜지


"개XX. 열 뻗쳐서 나왔다."

지난 9일 인천 서구의 한 사전투표소 현장. 투표 마감이 1시간여 남은 오후 5시께, 투표 장소인 학교 교문 밖까지 긴 행렬이 이어졌다. 해당 지역구 주민인 기자도 끄트머리에 줄을 섰다. 바로 앞에서 두 중년 남성이 거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대구 북구갑)이 지난 7일 YTN 생중계 토론에서 내뱉은 말을 축약한 유행어가 줄 사이사이를 공기처럼 맴돌았다. 문득 호기심에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으로 '이부망천'을 검색해 봤다.

ys*****
#사전투표완료 #세식구 #이부망천 #의원직사퇴하라 #덕분에투표수월 #고민따위없음 #인천근처라도오기만해봐라

au****_*_***
#이부망천 나도 한표 인증샷... 그래요.. 난 인천 살아요.. 투표로 보여드릴게요(주먹 이모티콘)

kim******
#지방선거 #사전투표 #완료 #이부망천 #안할라했는데 #화나게_만들었어 #인천 #중구 #영종도 #망해서 #여기사는거아니예요

ji******
#지방선거 #투표 #정태옥 #이부망천 #난 #결혼도 #안했는데 #이혼남 #만들어주는 #자유한국당 #클라스

200여 개의 게시물이 휴대전화 액정을 가득 채웠다. 그중 20여 개는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어 정 의원과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심판 인증' 사진이었다. 인천 출신 연예인 사진을 띄워놓고 '망하면 이사 온다는 인천에 사는 1인의 소중한 한 표'라고 올린 이부터, 먹으로 이부망천(離富亡川)을 쓴 티셔츠를 입고 풍자에 나선 이까지. 저마다 다른 색깔의 분노들이 해시태그를 타고 흘렀다.

"막말하고 탈당? 똥 위에 흙 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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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옥 전 한국당 대변인이 10일 저녁 결국 탈당했다. 정태옥 의원은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그의 인천 비하 발언으로 인한 충격은 더 컸다. 정 의원 탈당을 두고 시민단체는 한국당의 예상된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 정태옥 페이스북


정태옥 의원의 말은 단순히 '인천 비하'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이 부랴부랴 그를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또 정 의원 스스로 탈당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점차 정치혐오로 이어졌다. 특히 정 의원이 인천에서도 지역을 특정한 남구·중구 등 구도심의 경우 선거 때마다 '원도심 개발'을 주창해온 전·현 후보자들에 대한 의구심으로 증폭됐다.

"똥 싸놓고 파리 오고 구더기 끓으면 흙으로 빨리 덮어야겠지. 한 두 달 지나봐. 다 없어져."

남구 용현시장 과일가게 난상에서 11일 만난 임아무개씨(남성, 65)는 정 의원의 탈당 결정을 '쇼'라고 정의했다. 임씨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정 의원이 사퇴하고 당을 떠나는 게 (당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겠지. 이따가 복당할 걸? 정치라는 게 믿으면 뒤통수를 맞는 거다"라면서 "(탈당은) 쇼 같다. 어쨌든 한 표라도 이탈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했겠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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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정당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용현시장 입구. ⓒ 조혜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임씨는 정 의원의 발언에 씁쓸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사실이 그렇다"고 자조했다. 임씨는 "중구·남구가 구도심인데 (지역 정치는) 연수구처럼 사람 없고 논밭만 있는 지역만 싹 밀어 발전시켜왔다"라면서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지금 우리처럼 옆에 앉아서 이야기 했다면 아무 상관없겠지만... 정치에 희망을 걸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임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동갑내기 과일가게 사장 김아무개씨는 "그래도 (정태옥 의원의 말이) 표로 연결될 거라고 본다"라고 잘라 말했다. 막말을 둘러싼 선거 막판 공방에 피로감도 호소했다. 김씨는 "말이 심했다. 타 당에서는 또 그걸 갖고 씹어대니 피곤하고. 망해서 인천 갔다 쳐도,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입으로 그걸 이야기하니까 기분이 나쁜 거다. 남구 사람들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부망천의 원죄, 인물이냐 당이냐

그럼에도 임씨는 유정복 한국당 인천시장 후보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유 시장이 역대 시장보다 일을 더 많이 했다"라는 주장이었다. "송영길 전 시장이 유 시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다 헛소리다. 정치인은 일만 잘 하면 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회의원도 다 사람이야. 말실수 할 수 있지. 꼬투리 잡는 게 꼴 보기 싫어. 민주당 너무 하잖아. 나는 2번을 지지하고 싶어. 아는 사람들한테 다 2번 찍으라고 해."

인천 제물포역 지하상가 식당에서 만난 김아무개씨(여성, 67)는 정 의원을 감싸며 인천 남구을 지역구 의원인 윤상현 의원과 박근혜 전 대통령 이야기를 했다. 한국당에 불리한 선거 지형이 못마땅하다는 불만이었다. 김씨는 "피가 없다 뿐이지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것은) 숙청이다. 북한이나 매한가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33세 고아무개씨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유 후보를 두둔했다. 부평 토박이라는 고씨는 "이부망천을 유정복이 말한 것도 아니고, 안상수와 송영길 등 전 시장이 만든 빚을 해결했다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고 본다"라면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당을 따지나"라고 말했다.

"이번에 빨간색 '폭망'이야."
"왜?"
"이부망천! 몰라?"
"에이, 사람들 잘 몰라."
"인천 사람들은 다 알지. 사석에서 할 걸 방송에서... 아무튼 이번에 빨간색은 망했어."

인천 중구청 앞 한 중화요리 식당. 박남춘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가 탄 유세차량이 지나가자 짬뽕을 먹던 20대 연인이 '빨간당'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1일 중구와 남구 등지에서 만난 시민 중에는 한국당 후보인 유 시장을 여전히 지지하는 시민도 있었지만, 다수는 투표 여부를 떠나 한국당을 향한 비토를 쏟아냈다.

인천 남구의 한 한국당 구의원 후보 사무실에서 만난 후보의 자녀(25)는 "정 의원의 발언은 경솔했다"라면서 "(다음 지자체장들은)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용정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 김아무개씨(39)는 "나는 인천 토박이인데, 인천 사는 것을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기가 싫어졌다"라고 말했다.

유정복 캠프도 '폭탄'을 맞은 셈이었다. 나흘째 '철야 유세'라는 이름으로 민심 달래기에 나선 까닭도 그와 맞닿아 있었다. 캠프 관계자는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평탄하게 갈 수 있는 것을 마음 고생하면서 가고 있다"라면서 "후보가 인천 자존심을 그간 많이 신경 썼는데, 본인도 괘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인스턴트 망언? 인천 시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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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옥 전 한국당 원내대변인의 인천 비하 발언 이후, 인천 송도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 올라온 비판 댓글들. ⓒ 카페 올댓송도 갈무리


'이부망천'의 후폭풍은 인천 지역의 사회적·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현실적 고민까지 불러 일으켰다. 기초 단위 후보들과 풀뿌리 시민 조직 등에서 반발이 점화한 지점이었다. 송도 지역 커뮤니티인 카페 '올댓 송도'에는 정 의원의 발언 이후 땅에 떨어진 인천의 이미지에 대한 걱정이 줄을 이었다.

게스******
이런 말 듣고도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니 인천이 영원히 찬밥 대접 받는 것 같다. (중략) 영원히 삼류 변방도시 취급을 받고 있다. 이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할 것 같다.

들녘***
서울 살다 인천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데 발전도 더디고 집값도 안 올라 속상한데 망언 들으니까 화가 난다.

신길웅 정의당 인천시의원 후보(송도1, 2, 3)가 지난 9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정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613명의 시민소송단을 모집해 6억1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관련 기사 : 신길웅 인천시의원 후보 "'이부망천' 정태옥 소송단 613명 모집").

신 후보는 같은 날 통화에서 "정 의원 후원계좌에 항의 표시로 18원을 냈다고 공개한 분도 있었다"라면서 "단순한 고발조치가 아니라 (막말한 개인에게) 금전적 피해를 반드시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잠정적으로 보면 정 의원의 말로 찾아오는 인천이 아닌 '회피하는 인천'이 됐다.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본 것이고, 정신적 피해도 발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과 홍준표 대표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는 최백규 바른미래당 남구청장 후보는 "(발화 당일) 주안 2030거리에서 청년들을 만났는데, '이제 인천을 거지로 보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명함도 안 받겠다면서. 자존감이 많이 상한 상태다. 어떤 주민들은 부동산 가치가 떨어질까 우려한다"라고 전했다.

시민들은 '이부망천'을 선거 후 잊힐 인스턴트 망언으로 애써 규정하면서도, 미래 세대에게 정신적·경제적 대물림 될 낙인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용현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50대 후반의 남성은 익명을 요구하면서 비참한 마음을 쏟아냈다. 투표하고 싶은 생각도 뚝 떨어졌지만, 그래도 바람은 있었다.

"지도 망했으니까 인천 와보라지. 국회의원이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될 것 아닌가. 기왕 살 것, (인천 남구의) 수봉산 꼭대기에서 살라고 하고 싶다. 인천에 누구 하나 찍을 놈은 없지만, 누구든 되겠지. 누가 되든 사람 살기 좋게만 만들면 좋겠다. 그거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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