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법조인'들의 실명 비판 "양승태 처벌하라"

[스팟인터뷰] '예비법조인 시국선언' 주도한 최용헌 충남대학교 로스쿨 학생

등록 2018.06.12 13:51수정 2018.06.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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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철저 수사하라"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강정-밀양 공동기자회견’이 지난 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대책위 주민과, 송전탑저지 경남 밀양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우리의 미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말아달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벌어진 '사법 농단' 사태는 예비 법조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학습량이 최고로 많다고 알려진 로스쿨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다. '수사 촉구'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학생들은 300명이 넘는다. 사법부 안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존재했다는 게 알려진 시점에서 학생들은 실명을 내걸었다. 그 조직 안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7일 발표된 '사법 농단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로스쿨생 공동성명'을 주도한 최용헌(27·충남대학교 로스쿨)씨는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큰 문제인데 예비 법조인들이 아무 발언도 하지 않는 건 도덕적 해이일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다"라고 설명했다.

"100명만 모여도 성공이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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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현씨가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는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일 충남대 로스쿨 인권법학회에서 시작한 시국선언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건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전국 15개 학교 인권법학회와 2개 학교 노동법학회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틀 후 예정된 기자회견까지 총 313명이 '사법 농단 사태 엄정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로스쿨학생들'에 이름을 올렸다.

최씨는 "100명만 모여도 성공이라고 봤는데, 10시간 만에 300명이 참여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7일 오전 11시 대법원 동문 앞에는 예비 법조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히 최씨는 "학생들은 무엇보다 대법원 재판이 정부와의 대화 도구로 활용됐다는 대목에 분노했다"라고 전했다. "예비 법조인에게 대법원 판례는 그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마치 성문화된 법처럼 암기하는 대상인데 이제 그 판례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라는 것이다. 시국선언문에서도 학생들은 "대법원 판례들이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짜 맞춰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최씨는 "관련자 처벌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학계와 시민사회 등이 모여서 사법부의 역할부터 그들이 가진 영향력 등을 총체적으로 논의해 대안을 도출하자"라는 것이다. 나아가 "법이 사회와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는 개인적 바람도 피력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시국선언이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사법 농단 사태가 터지고 인권법학회 회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로스쿨생들 차원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큰 문제가 있는데, 아무 발언도 안 하는 건 도덕적 해이일 수 있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충남대 안에서만이라도 좋으니 우리들끼리 발언을 하자고 했고, 학회 동기가 쓴 초안을 검토해서 대자보를 붙이는 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권법학회 연합 메신저 방에 이런 걸 붙였다고 올렸다. 읽어보고 괜찮으면 각 학회에서도 연대 서명해서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중 조금 더 사안을 널리 알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온라인으로 개인들의 서명을 받았다. 만약에 의미 있는 규모가 모이면 발표를 하자고 했는데 10시간 만에 300명이 참여했다."

-특히 어떤 대목에서 분노했나?
"우선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운영 방향에 문제를 제기를 하거나 반기를 드는 판사들을 중점적으로 사찰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한 점이다. 이 자체가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매우 중요한 대법원 재판이 정부와의 대화 도구로 활용됐다는 부분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거래 가능 대상으로 언급됐다는 점 자체가 사법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예비 법조인에게는 대법원 판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마치 성문화된 법처럼 암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판례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판례라면 엄격한 재판 절차를 거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한 결과라고 신뢰했기에 특히 더 그렇다."

-시국선언문 작성 과정에서 이견은 없었나?
"이 내용을 넣어야 하느냐 마느냐 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법에 대한 신뢰를 배반했다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예비 법조인 중에는 이렇게 발언하는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시 모를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 사람도 있을 거라고 봤다. 법원행정처가 '승포판(승진 포기 판사)' 대응 방안도 만들었다고 하지 않나. 실명을 올린 예비 법조인 중에는 이런 불이익을 감수한 사람도 있을 거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일단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대상은 국민 전체라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법원은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는 곳이다.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곳이기 때문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관련자 처벌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관련된 사람이 대법관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낱낱이 밝혀야 하고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건 1단계에 불과하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쟁이 필요하다. 학계와 시민사회 등 다양한 단위가 모여 논의하고,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사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부터 현재의 영향력에 대한 고민도 이 주제에 포함돼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사태가 재발하지 않는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바라본 예비 법조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법이 굉장히 한계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법이라는 것은 딱 정해진 기준 안에서, 때로는 그 기준이 옳지 않더라도 거기에 끼워 맞춰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법은 정치적인 것과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던져줬다. 이 명제를 좀 더 공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회 활동을 접고 공부를 하겠다고 로스쿨에 왔는데, 그 생각이 좀 무른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와 거리를 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품고 법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이런 논의가 확장돼 한국 사회 변화에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시국선언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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