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사건, 영국·일본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까닭

[기고] 5년으로 묶인 계약갱신청구권 연장하고 퇴거 보상금제 도입 검토해야

등록 2018.06.14 11:40수정 2018.06.14 11:40
11
원고료로 응원
지난 6월 7일 서촌 궁중족발 임차인이 건물주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6년부터 상가건물 임대차 문제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장사하던 상인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고, 이 과정에서 건물주와 갈등을 겪는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상가임대차 문제를 다뤄온 이강훈(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제2, 제3의 궁중족발 사건을 막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a

서울 종로 서촌 궁중족발 강제집행 전 모습 ⓒ 안진걸 제공


궁중족발 사건, 어떤 사건이었나?

최근 '궁중족발'이라는 가게의 임차 상인이 임대인에게 망치를 휘둘러 구속된 사건의 내용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해당 사건의 임차인 행위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비난 받을 만한 행위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큰 파장을 낳는 이유는 자영업을 선택한 많은 중소상인들의 처지가 암울하게 느껴지는 사건이고 그 사건의 발단부터 한국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안은 이러하다. 임차인 K씨가 '궁중족발'을 개업한 2009년 5월부터 6년이 지난 2015년 5월에 임대료 조건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97만 원(부가세 포함)이었다. 그런데 새 임대인 L씨가 2015년 말에 2016년 1월부터 보증금 1억 원, 월세를 1200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자(임대인 주장으로는 리모델링 시의 임대조건 제안이었다고 한다) 임차인 K씨가 거절하면서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후 임대인의 명도소송, 강제집행이 이어졌다. 특히 두 번째 강제집행에서 4개의 손가락을 절단당한 임차인 K씨가 이미 명도집행이 끝난 가게에 다시 진입해 점유를 하자 L씨는 법원에서 명도단행 가처분 결정을 받아 강제집행을 시도하여 총 12차례의 강제집행 끝에 2018년 6월에 강제집행이 완료되었다. 그 직후 K씨와 L씨가 전화로 말다툼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진 K씨가 L씨를 찾아가 망치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상가 임대차 계약 갱신 제도 개선 없이 사회 안정 어렵다

궁중족발 사건은 상가임대차 계약에서 첫 5년 이후의 계약 연장 협의가 극단적으로 불합리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현행 법률 하에서 궁중족발 임차인은 최초 5년 이후에는 계약갱신 청구권이 없으므로 계약 자유를 주장하면서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임대인과의 민사소송에서 이길 방법이 없었다.

위 사례는 오늘날 중소상인의 사회적 위치가 얼마나 불안정한 임대차 제도에 기초해 좌우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권의 보장과 사회 복지 제도가 불충분한 한국 사회에서 자영 사업자의 생업의 기초가 되는 상가임대차제도까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한국 사회가 안정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상가 임대차 계약 갱신 제도, 어떻게 가능할까?

a

지난 1월 15일 오전 시민과 학생들이 궁중족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행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은솔


문재인 정부도 앞서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2017년 7월 16일 상가임대차계약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발표하였으나 이렇게만 해서는 10년이 지난 후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또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마주한 문제의 본질적 성격을 고려해 합리적인 해결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 상가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함과 더불어 만 10년이 된 해 당사자간 합의로 계약 갱신을 하는 경우 다시 5년 (또는 10년) 주기로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이 새로 부여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 각 주기에서 계약 갱신이 안될 경우 임대차는 종료된다. 따라서 이때에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신구 임차인간 권리금 수수 방식으로 임차인의 퇴거를 위한 자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만, 임대인의 불합리한 방해를 막기 위해 임차인의 비용으로 임차인이 지자체의 장에 의뢰하여 지자체의 장이 지정한 감정인에 의해 비워줄 가게의 임대료 시세 감정을 받도록 하고, 만약 임료 감정액보다 임대인이 더 높게 임대료를 제시하여 종전 임차인이 데려온 신규 임차인 후보를 퇴짜를 놓는 일은 권리금 수수 방해 행위로 규정하여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임대인으로서는 종전 임차인에게 과도한 임대료 인상안을 제시할 유인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 방식 외에도 일본과 같이 임대차 계약기간을 두지 않고 법률에 정한, 일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 방식은 정당한 해지 사유에 대한 법원의 심리 부담이 크고 법원이 임대차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후술하는 영국과 유사하게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제한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뒤에서 살펴본다).

둘째, 현행 계약갱신 거절 제도의 흠결을 보완하여 재건축이나 철거로 인해 상가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을 거절할 경우 임차인에게 퇴거료를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임대인과 임차 상인간에 극단적 분쟁이 발생하기 쉽다.

외국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영국의 1954년 임대차법(Landlord and Tenant Act 1954)을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상업임대차의 임대차기간이 정해져 있더라도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한다. 다만 임대인에게도 임차인의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몇가지 예외적인 경우(예: 재건축, 임대인의 자기 사용 등)에도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이런 경우 임대인은 상가건물의 과세표준의 1배(= 목적물의 연간가치 = 연간 임대수익, 단 임대차 기간이 14년 이상인 경우 과세표준의 2배)를 임차인에게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영국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 가능 기간에 제한이 없고 재건축 등 임차인에게 귀책사유 없는 갱신 거절에 대해 퇴거료 보상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영국 보상 기준은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든 보상 기준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상 기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도 "정당한 해지 사유"와 관련한 법원의 판례를 통해 이런 사례에서 일정한 퇴거료를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즉 장기 임대차를 보장하는 제도를 확립하려면 재건축이나 철거 등으로 인한 임대인의 갱신 거절을 허용하되 퇴거보상 제도를 제대로 보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재건축이나 철거로 인한 계약 갱신 거절과 관련해 퇴거 보상금 제도를 도입할 경우 보상 방법은 1) 상가의 영업가치 및 이전에 필요한 비용의 합산액과 2) 권리금이 있는 상가의 경우 권리금 평가액수 중 더 큰 금액을 보상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a

초라했던 경복궁역 2번 출구 앞 골목은 서촌 바람을 타고 손님 발길이 늘었지만 궁중족발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 안진걸 제공


마치며 : 궁중족발 사건,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a

이강훈 변호사

도시의 토지와 건물, 각종 시설 등의 공간은 사적 소유이든 공적 소유이든 그 소유자와 많은 이용자들, 즉 도시거주자들 전체의 노력에 의해 그 가치가 형성·유지·제고되어 왔다.

따라서 도시의 거주자들이 토지와 건물을 포함한 도시공간을 통해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사용가치를 완전하게 향유하게 하려면 그 건물의 이용자인 상인들을 비롯한 임차인들의 점유를 안정시켜야 할 것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계약갱신 제도를 둘러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최초 5년 이후의 정글과 같은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궁중족발 사건은 상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임차인의 일상이 일순간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을 안고 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같은 사건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강훈(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현재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위원회 부위원장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궁중족발 #상가임차인 #상가임대차보호법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