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조직적 사기극, 분노할 수밖에 없을 걸

[서평] '국가의 사기'-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등록 2018.06.15 16:13수정 2018.06.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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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은 보이지 않고 스캔들과 막말만 무성했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2일에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이 페이스북에 하나의 문건을 공유했다.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님 탄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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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책표지 우석훈 지음, 김영사 출판 ⓒ 김영사


탄원서를 보며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국가의 사기>가 떠올랐다. 우석훈에 따르면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은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피해자다. 또한, 상가건물 임대차 문제로 갈등을 겪다 임차인이 건물주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네덜란드 같은 나라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처음 2년간은 양쪽이 서로 상대방을 알아가는 일종의 숙의 기간이다. 그 2년이 지나고 건물주가 별 불만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5년간 임대계약이 연장된다. 그리고 그 5년이 끝나도 자동연장 된다. 그 후에는 임차인이 임대인을 내쫒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p.312


법과 제도가 임차상인을 보호할 수 없는 현실은 건물주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우석훈이 궁중족발 사장이 미비한 법과 제도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이유는 임대를 '보호'라는 관점이 아니라 '권리'라는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잘 살아서 임대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우석훈의 주장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의 사기>에서 저자 우석훈은 2018 국부론, 광고, 주식, 다단계, 신용등급, 공무원, 이념과 클랜, 모피아, 토건족, 물 브라더스, 원전 마피아, 박사들의 클랜 등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자원외교, 4대강, 분양제, 버스 준공영제, 도시재생… 국가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건전한 생활경제와 튼튼한 시민경제를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글을 읽으면 가진 것 없는 시민들은 통쾌할지 모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좋아할 정치인은 없어 보인다.

국가발 토건, 보수-진보 똑같았다


우석훈은 관행이란 이름과 갖은 미사여구로 진행되어왔던 국가발 토건에는 보수나 진보나 똑같다는 걸 강조한다. 심지어 가락 시영아파트 재개발 때 일반 거주 지역 분류 중 2종에서 3종으로 올리는 종상향이라는 편법을 박원순 시장이 허가했다는 사실을 까발리며, '종상향'을 괴물이라고까지 칭할 정도로 거침이 없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면 토건에 진짜로 눈감은 정권은 아직까지 한국에는 없었다. 보수 정권은 아파트 집값을 올리는데, 진보 정권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방 토건에 좀 더 강조점을 둔다." -p.313.


이쯤 되면, 진보 진영은 억울할 법도 하다. 이에 대해 우석훈은 도시재생이 원론적으로 맞지만, 토지보상비 나가고, 그 토지 보상금이 유동자금으로 다시 투기로 들어오고, 그 돈을 정부가 대주는 메커니즘은 같다는 점을 들며 이렇게 말한다.

"4대강 22조 원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면, 도시재생 50조 원은 나라를 두 번 망하게 할 돈이다. 4대강의 대부분의 실익이 공사 컨소시엄에 참여한 대기업과 지방 토호들에게 갔다면, 도시재생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제적 편익은 건물주에게 간다. 사업 내용이 나빠서가 아니라, 규모 때문에 그 폐해가 더 커진다." -p.314. 


조목조목 들이대는 논리가 타당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도시 재생은 건물주들이 돈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을 국가가 나서서 세금을 대는 일이다. 그 혜택을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가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석훈의 말대로라면 여당이 집행부와 의회까지 싹쓸이한 지방선거 이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가 아무리 공약이 돋보이지 않았다 해도 그나마 지역에서 유권자들의 눈길을 끈 공약들은 대부분 토건 관련 항목이었다. 각 후보들은 입을 열었다 하면, 신도시 개발과 사통팔달 교통난 해소, 지하철에 도로 건설 등을 약속했다. 그 유력 어떤 후보도 탈토건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여당이 그 힘을 모아 지방 토건족과 함께 해 버리면 문화, 복지에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데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나라를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물론 이번 선거에서 우석훈이 주장한 바 중 일부를 공약으로 내건 자치단체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당선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익성은 없지만 꼭 필요한 노선은 자치단체에서 '위탁관리형'으로 운행하되, 수익성이 높은 노선은 입찰을 통해 버스면허를 한정면허로 발급하는 버스준공영제를 들고 나왔다.

우석훈은 버스회사가 합리적 경영과 승객서비스 개선에 노력하도록 하려면 한정 면허로 바꾸고, 순차적으로 정부 지분들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제 이 제도가 시행될지 지켜볼 일이 남았다.

우석훈은 아파트 분양제를 비롯한 많은 국가 주도 정책이 사기인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사기고 어디서부터가 아닌지 판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을 거쳐서 구조적으로 고착되었다고 통탄한다. 요즘 말로 적폐다.

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국가의 사기>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사기를 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관행이 되고, 한번 그렇게 자리 잡은 것은 고치거나 개선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독자들은 그간 정부가 하는 말에 어떻게 속아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난다면, 삶을 바꾸는 변화를 꿈꿀 수 없다. 우석훈은 조금은 더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기 위해 이런 질문을 제안한다.
 "네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니?" -p.242.


나라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을 것인가? <국가의 사기>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김영사, 2018


#우석훈 #사기 #국가 #박원순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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