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데 디저트 찾는 아내, 범인은 '뇌'였다

[서평]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를 읽고,

등록 2018.06.18 10:30수정 2018.06.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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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밥을 조금 먹는 습관이 있다. 많이 먹으면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다. 동감이다. 스스로의 위에 허락된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소화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걸 사람들은 더부룩하다고 한다.

때문에 식사 때마다 와이프는 밥 반 공기 정도를 여러 번에 걸쳐 소분하며 꼭꼭 씹어 삼킨다. 포만감이 부족한 듯한 날엔 한 숟갈 정도를 더 먹을 때도 더러 있다. 그리곤 예외 없이 내게 말한다.


"우리 디저트는 뭐 먹을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난해함이다. 또 한 가지 아주 좋은 예가 있다. 친구 중에 그런 녀석이 있다. 여름 휴가를 위해 함께 논의하며 펜션을 예약하던 과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함께 상의해가며 가장 그럴싸한 펜션을 예약한 뒤 찾아간 그 곳은 우리의 예상과 그리고 웹상의 사진과 너무나도 달랐더랬다.

오목렌즈로 사진을 찍으신 건지, 도대체 이 비좁은 공간이 어떻게 그렇게 넓어 보이게 사진에 나올 수 있는건지, 우리가 흡사 소인국에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작았고, 모든 것이 볼품없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는 함께 펜션을 알아봤던 그 친구의 말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리가 내뱉는 말과 처한 상황이 서로 멱살을 쥐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상황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평온하다. 요새 유행하는 '행복회로'가 맹렬한 기세로 뇌 속에서 작동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따금 모순된 말과 행동을 더러 할 때가 있다.


이 책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는 바로 내가 겪은 난해함에 대한 책이다. 혹은 인간의 간사함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뇌의 영악함 정도도 되겠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행복회로를 작동시키는지 그 원리에 대해, 또 그 회로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게 있어선 '밥 다 먹고 배부른 와이프가 대체 어떻게 디저트를 먹는지'에 대한 해설서와도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아내를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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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우리의 뇌를 과연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맞나? 혹은 간교하게 나를 구렁텅이 빠뜨리는 배신자가 아닐까? 이 책은 상황에 따라 나를 울고 울리는 뇌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이의성


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무겁다거나 자칫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더러 있을 수 있겠다. 나 역시 이런 종류의 '이과'스러운 책은 각종 전문용어와 딱딱한 문체로 인해 읽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에 멀리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내 정신의학 분야의 교수이자 연구원인 동시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며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또한 책의 프롤로그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역량을 뽐내는 저자를 보며, 뇌과학이라는 딱딱한 분야를 보다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 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책은 하나 하나 우리가 평소에 궁금했을 법한 사례들을 들며,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뇌와 실제 기능하는 뇌 사이의 간극을 좁혀준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며 저자의 문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를 저자는 자신만의 재기발랄한 문체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읽는 맛'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왜 사람들이 (혹은 자신이) 가끔씩 이상한 행동이나 엉뚱한 말을 해서 밤새 이불을 걷어차는 후회를 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 널 위해서야"라는 이유로 뇌가 얼마나 우리를 난처한 지경으로 몰고 가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중

앞서 언급한 바 있던, 앞일을 예견하며 언제 어디서고 '그럴 줄 알았어'를 시전하는 '재수 없는' 친구 얘기를 잠시 할까 한다. 대학생 시절 그 친구의 별명은 '원 모어 타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당시 유행했던 쥬얼리란 그룹의 히트송 '원 모어 타임'을 따다가 붙인 별명이었다). 늘상 한 번만 달라고, 이번 한 번만 사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그 친구 생각이 유독 났던 건, 그 친구가 썼던 행동양식이 철저하게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확인한 그 친구의 '원 모어 타임'은 이른바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었다.

"친구가 와서 버스비가 없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고 치자. 여러분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친구가 샌드위치랑 음료수를 좀 사먹어야겠다며 돈을 좀 더 달라고 한다. 여러분은 이를 또 승낙한다. 친구는 다시 술 몇 잔 하러 펍에 가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여러분은 승낙할 수밖에 없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란 작은 부탁을 받아주게 되면 더 큰 부탁도 수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부탁하는 사람은 자신의 '발을 문간에 들여놓은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우린 늘 뇌의 영향 하에 움직이고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내게 부담되는 일이 또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삼모사'라 하지 않나. 뇌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될 일도 안 될 수 있고 되지 않을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책은 이처럼 우리 뇌가 상황과 바깥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의 뇌와 그 인식에 대한 유명한 실험도 책에선 다시금 설명해 주고 있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전범자들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한 변명이라고는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 전부였다. 소름끼치는 변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뇌과학 실험을 통해 이는 변명이 아닌 진짜라는 게 밝혀졌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게 한 뒤 만약 답이 틀리면 질문자는 대답한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해야 한다. 대답이 틀릴 때마다 전압을 점점 더 높이기로 한다. 여기에 질문자가 모르는 함정은 실제 전기충격은 가해지지 않았고 대답한 사람은 연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소리를 크게 냈다는 점이다.

질문자들만 모르고 있었지만 이 실험은 사실 질문자들을 그 대상으로 하는 실험인 셈이었다. 대답한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할지라도 실험을 주도한 연구원들은 질문자들에게 이 실험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65%의 사람들이 이런 단순한 연구원들의 말만 듣고 계속해서 상대에게 고통의 강도를 높였다고 한다. 우리 뇌에 있는 의외의 허점 혹은 그 맹점에 대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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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 이야기 뇌과학책이라기에 딱딱하기만 할 줄 알았건만, 발랄하고 위트가 넘친다. 저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책 전반에 걸쳐 시종일관 유머가 넘치도록 들어있다. ⓒ 이의성


와이프의 이해 못할 행동들은 또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듯 분명히 배가 다 찼음에도 디저트를 꼭 먹어야겠다던 그녀의 의지 말이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며 항변하지만 인체 구조상 우리의 위는 각 사람당 한 개씩이 분명하다. 잔뜩 배부른 위가 먹을 것을 더 넣어달라고 뇌에 신호라도 보낸다는 건가. 뇌는 분명히 위가 가득 차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디저트를 넣어달라는 신호의 범인은 다름 아닌 뇌였다. 결과적으로 달달한 디저트는 우리 뇌가 원하는 강력한 보상이란다. 달콤한 보상 앞에서 뇌는 '더 이상 안 돼!' 하고 외치는 위의 신호 따위는 무시해버린다고 책에선 말한다. 위의 신호를 무시하는 뇌, 늘 합리적이고 똑똑할 것만 같은 뇌도 달콤한 보상에는 약하다고 하니 이걸 인간적이라고 해야할지 표현하기가 모호하다.

이처럼 이 책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뇌이야기>는 시종일관 우리가 갖고 있었던 뇌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때론 논리정연하게 또 때로는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한편, 막연하게 생각했던 우리 자신의 '뇌'에 대해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겉보기엔 냉철하고 논리적으로만 보이는 우리의 뇌가 실은 약간 맹한 구석도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다. '원 모어 타임'이라 늘상 놀리던 그 친구에게 새삼 감사하다. 이번 서평을 쓰기 위해 그 친구가 내게 그리도 많은 영감을 주려 했나 보다.

제멋대로에 툭하면 오류를 일으키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우리와 일생을 함께 보내는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인 뇌.

컴퓨터가 오래되면 성능이 떨어져 우린 컴퓨터를 바꿔야 한다. 핸드폰 역시 마찬가지다.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더라도, 1,2년 지나 최신 성능의 신제품이 출시되면 우린 늘 새것으로 바꾸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그렇게 교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든 싫든 함께 긴 인생을 협력해야 할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우리의 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언급한 '우리와 일생을 함께 보내는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통해 '인생의 동반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기를 나 또한 함께 권면해 본다.

뇌 이야기 - 엄청나게 똑똑하고 아주 가끔 엉뚱한

딘 버넷 지음, 임수미 옮김, 허규형 감수,
미래의창, 2018


#엄청나게똑똑하고아주가끔엉뚱한뇌이야기 #미래의창 #뇌이야기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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