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과 사법부의 합작
밀양 주민은 국민이 아니었다

[사법농단 긴급기고④]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는데... 번번이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믿음을 깬 사법부

등록 2018.06.17 11:10수정 2018.06.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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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경찰 옆 홀로가는 밀양주민 지난 2013년, 밀양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주민 한 명이 경남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초입에서 122번 송전탑 공사현장 쪽을 향해 가던 중 대규모 경찰병력이 옆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양승태 대법원은 그들이 작성한 문건에서 수많은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판결을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인용 결정, 공사중지가처분 기각결정'이라는 내용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2013년 10월 8일 있었던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인용 결정은 당시 기준으로 8년간 이어져 오던 특고압 송전선로 건설 반대 과정에서의 갈등 문제에 관하여 사법부가 처음으로 한 재판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 이후로 밀양의 고령의 주민들이 법원과 검찰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야만 했다는 점에서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은 하나의 신호탄과 같았다.

그 무렵 박근혜 정권이 밀양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했다. 한전이 송전탑 건설을 재개하자 공권력을 대거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의 역사는 2013년 10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까지 공권력은 한전과 주민 간의 싸움을 방관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이후의 공권력은 송전선로 건설공사의 첨병과 같은 역할을 했다.

노인들이 아직 깜깜한 새벽부터 송전탑이 세워질 산 중턱의 공사 현장까지 올라가 공사를 막으면, 그 노인들의 몇 배나 되는 수의 경찰들이 노인들을 들어내기를 반복했다. 셀 수도 없는 노인들이 다치고 호흡 곤란을 일으켜 응급후송 되어야만 했다. 공권력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경찰들은 면사무소에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들 전수의 사진을 제공 받아 공사 현장에서 채증된 노인들과 일일이 얼굴을 대조해 가며 '색출 작업'을 했다.

그렇게 신원이 드러난 주민들을 상대로 수사기관은 수사와 기소를 하고, 한전은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리고 사법부는 박근혜 정권의 선전포고 일주일 만에 첫 번째 사법처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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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진행할 당시,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 주민들이 공사 차량의 출입을 막기 위해 모여 있다. (2013년 1월 21일 자료사진) ⓒ 윤성효


사법부, '최후의 보루'라는 믿음을 깨다

주민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법원이 주민들에게 공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재판을 한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형식적으로 한전이 하는 송전탑 공사는 합법적이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이 들어온 이상 법원이 결국에는 위와 같은 재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사법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밀양의 주민들은 여전히 그들이 입은, 그리고 입게 될 피해를 설명하면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가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법부의 생각은 밀양 주민들의 생각과 달랐다. 법원은 주민들이 2014년 2월 17일에 제기한 공사중지가처분에 관하여 7개월이 지나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2014년 9월 25일에야 기각했다. 시급을 요하는 가처분 신청에 관한 재판을 차일피일 미루다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에야 배척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또한, 법원은 주민들이 2014년 2월 27일에 제기한 사업계획 변경승인 취소소송을 3개월 후 한 차례 변론을 연 뒤 2년의 기간 동안 진행하지 않다가 2016년 8월에야 이미 공사가 끝났다는 이유를 덧붙여 각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밀양 주민들 중 300명이 넘는 사람이 형사 입건되었고 그중 69명은 실제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이 사소한 공사 방해 행위들이어서 이런 것까지 형사재판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레미콘 차량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서있는 것처럼 소극적인 저항행위를 한 것을 두고 업무방해죄,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밀양 주민들은 끝없이 이어진 법정 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소극적인 저항행위들을 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적극적으로 다퉈왔다.

레미콘 차량을 막는 것이 실정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양심에 따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행위는 시민불복종 행위로서 위법성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가 왜 정당한가, 겉으로 합법적으로 보이는 한전의 송전선로 건설 공사가 왜 부당한가에 관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사법부에 호소해 왔다.

밀양을 지나가게 된 송전선로가 지니는 의미, 즉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송전선로가 고리 원자력 발전단지로부터 농촌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수도권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정부 계획의 허구성에 관해서도 자세히 고찰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내 일터인 논, 밭 머리 바로 위로 76만 5천 볼트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치의 특고압 송전이 이뤄지는데, 그렇게 남은 평생을 살 수 없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여도 해결할 수 없어서 최후의 수단으로서 레미콘이 지나는 길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고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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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철저 수사하라"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강정-밀양 공동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앞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대책위 주민과, 송전탑저지 경남 밀양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밀양주민들 형사재판은 1년 넘게 대법원 계류 중

하지만 사법부의 대답인 1, 2심 판결문은 채 10줄을 넘지 않을 만큼 단출했다. 전력수급을 위한 송전설비 공사는 공익사업이지 않으냐는 논리가 모든 것을 뒤덮었다. 아니, 당신들도 전기를 쓰지 않느냐는 타박에 가까웠다. 사법부는 정부 정책을 그른 것으로 판단할 수 없고, 또 판단해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보였다. 사법부의 독립, 판사의 독립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전기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송전설비 건설의 타당성 여부를 문제 삼지 못하는 걸까? 가령, 쓰레기를 하나라도 버려본 부산 시민이면 수도권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모두 부산에 묻어 주기로 하는 정부 정책에 항의해서는 안 되는 걸까?

국가가 정한 정책이라고 하면 옳은지 그른지 따져서는 안 되는 걸까? 고리에서 만들어진 전기의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가는데, 원전으로 인한 위험은 부산, 울산, 양산의 시민들이 전부 부담해야만 하는 걸까? 과연 무엇이 공익이고, 누구를 위한 공익일까? 반대 의견을 공권력으로 억누르고 사법처리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양승태의 대법원은 밀양 송전탑 사건 관련 사법처리의 신호탄이 된 두 개의 가처분 결정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위하여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온 하나의 사례로 들고 있다. 민주주의 운운하는 양승태의 사법부에서 밀양의 주민들은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 사례로 든 시민불복종 행위라고 주장을 해왔던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형사 재판 상고심이 지금 대법원에 1년 4개월째 계류 중이다(2017도2797). 사법부의 독립을 형해화시킨 양승태 대법원의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에 관한 진실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기 전에, 과연 밀양 주민들이 대법원의 공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상규 변호사는 밀양송전탑 반대주민 법률지원단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양승태 #박근혜 #대법원 #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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