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몇 그릇 먹었을 뿐인데... 인상적이었다, 정우성

[보고 먹고 먹고 보고]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이상국 시인과 <강철비>

등록 2018.06.18 20:30수정 2018.06.18 20:3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들어 국숫집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원래 국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한 그릇 먹기 좋은 것이 국수입니다. 시원한 멸치국물에 각종 고명을 담은 잔치국수도 좋고 갖은 양념과 김치, 야채를 넣고 버무린 비빔국수도 좋습니다. 비빔국수는 국수 맛 자체도 좋지만 곁들여 나오는 멸치국물과 함께 먹는 맛이 또 좋죠. 새콤하면서도 매운 맛이 느껴질 때 뜨거운 멸치국물은 입 안을 개운하게 합니다.


국숫집을 드나들다보니 요즘은 잔치와 비빔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대부분 잔치국수를 먹었습니다. 일단 잔치국수가 더 가격이 싸고 한 그릇 비우며 땀흘리는 그 맛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고민하듯 국숫집에서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잔치국수가 매운 맛보다는 새콤달콤한 맛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맛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단짠단짠' 족인가 봅니다.

a

시원한 국물맛이 좋은 잔치국수 ⓒ 임동현


잔치국수는 말 그대로 잔치 때 먹는 국수입니다. 잔치국수는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먹는 게 물론 맛있죠. 특히 휴일 점심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참 좋았던 음식입니다.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더했죠. 국수가 쫄깃해야 더 맛있습니다. 그래서 잔치국수는 중면을 주로 하죠.

비빔국수는 여름 점심에 즐겨먹는 음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봄날 오후에 먹는 비빔국수가 가장 맛이 좋았습니다. 물론 비빔국수 역시 언제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콤한 맛이 당기는 때는 역시 봄이 오는 길목, 서서히 날이 따뜻해지는 시점이죠. 봄 햇살 쏟아지는 날 비빔국수는 봄철 입맛을 더 돋운답니다.

a

새콤달콤한 맛의 비빔국수 ⓒ 임동현


국숫집에서 종종 만나는 시가 있죠.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시인은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고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를 먹고 싶어합니다.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세상의 허기진 이들과 함께 어머니 같은 분이 끓여주는 국수를 먹고 싶다는 시인의 이야기는 함께 따뜻함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글쓴이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a

영화 <강철비>에서 두 '철우'가 한편이 되어가는 곳이 국숫집입니다 ⓒ NEW


남쪽 '철우'와 북쪽 '철우'. 두 사람은 국숫집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남쪽 철우는 비빔국수를, 북쪽 철우는 잔치국수를 먹습니다. 남쪽 철우는 "우리는 같은 편"이라며 자신의 손과 북쪽 철우의 손을 수갑으로 연결합니다.

그 자리에서 북쪽 철우는 잔치국수 몇 그릇을 비워내죠. 그토록 강해보이던 북쪽 철우가 잔치국수를 더 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모습이 왜 이리 인간적으로 보이던지요. 뭔지 눈치 채셨죠?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입니다.

강철비. '철우(鐵雨)'네요. 사는 곳은, 아니 사는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 어떻게보면 그 철우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 국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빔국수와 잔치국수. 서로 다른 메뉴를 먹는 두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 곳에서 두 사람은 '한편'이 되어갑니다. 물론 다른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지요. 국수가 이 영화에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정우성의 '먹방'이 인상적이었던 그 장면. 영화를 보고 국숫집으로 바로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허전한 사람들과 먹고 싶다는 국수가 어느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국수가 중국에서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잔치의 즐거움을 더했던 잔치국수와 여러 가지를 넣고 비벼서 나누어먹었던 비빔국수의 맛을 떠올려봅니다. 작은 음식이 주는 큰 행복.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의 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이상국 #강철비 #국수가 먹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