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비종교의 테러가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

[서평] 1995년 옴진리교 사건 다룬 '일본 vs 옴진리교'

등록 2018.07.05 14:33수정 2018.07.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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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는 TV 시사프로그램 속 단골 소재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약한 구석을 건드려 종교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하고, 구원이라는 명목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속여 전 재산을 바치게 만든다. 방해가 되는 사람을 때론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 사회를 뒤흔든 옴진리교는 그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인류최종전쟁을 주창하며 사린 가스, VX 등의 화학무기를 제조해 수차례나 테러를 벌이고, 끝내는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해 13명을 살해하고, 약 6300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자국 종교집단에 의해 평일 아침 출근 시간대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전쟁에서도 보기 힘든 대규모 독가스 공격이 자행된 것이다. - <일본 vs 옴진리교> 20쪽
<일본 vs 옴진리교>(네티즌 나인 지음, 박하 펴냄)는 일본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옴진리교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일본 vs 옴진리교>는 옴진리교 탄생부터 옴진리교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 이후 일본 정부가 어떻게 옴진리교에 맞서 싸웠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린, VX, 탄저균 등 생화학 무기 테러 저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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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vs 옴진리교> 겉표지. ⓒ 박하


옴진리교 창시자이자 교주는 아사하라 쇼코라는 가명으로 더 유명한 마쓰모토 치즈오다. 침구사였던 마쓰모토 치즈오는 1984년 옴진리교의 전신인 '옴 신선회'를 설립했고, 1987년 '옴진리교'로 이름을 바꿨다.

옴진리교는 1990년대를 풍미한 종말론과 그로 인한 불안감 속에서 성장했다. 세기말 일본사회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토대로 한 1999년 7월 멸망설, 태양계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거대한 십자가 형태로 정렬하면서 행성들의 중력이 지구에 영향을 줘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랜드 크로스' 설 등이 유행했다.

마쓰모토 치즈오는 인류 종말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해 "핵전쟁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옴진리교의 가르침을 세계와 확산시켜야 한다"면서 포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이후 범죄에 가담한 옴진리교 간부들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또한 마쓰모토 치즈오는 옴진리교 설립 초기부터 교주의 지시에 따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티베트 불교 용어인 '포아'는 본디 현시점보다 높은 세계로 의식을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데 마쓰모토 치즈오는 교주의 살인 교사는 이것을 따른 사람과 살해당한 상대방마저 구제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포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옴진리교는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1990년 중의원 총선거 이후 무장 테러 노선을 걷는다. 진리당이라는 이름으로 마쓰모토 치즈오를 비롯해 후보자 25명을 냈지만, 후보자 전원이 낙선한 데 분개한 옴진리교는 보툴리누스균, 탄저균, 사린, VX 등 다양한 생물, 화학 무기를 제조하고, 이를 이용한 테러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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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는 1995년 도쿄 지하철 테러 이전에도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 박하


그 정점이 바로 도쿄 지하철 테러다. 옴진리교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들어오는 상황에서 엄청난 재난을 불러일으켜 수사 여력을 빼앗자는 잘못된 판단으로 도쿄 지하철 테러를 계획한다. 1995년 3월 20일, 옴진리교 간부들은 가스미가스키 역에서 경시청 쪽 출구 가까이에 정차하는 차량에서 사린가스를 유출해 사망자 13명, 부상자 6300여 명을 낳은 대참사를 일으킨다.

일본 정부의 반격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 이후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반격을 개시하는 대목이 이 책의 핵심이다. 사실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테러 이전에 저질러왔던 무수한 범행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테러를 저지르는 순간에도 옴진리교는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승인한 종교법인이었고, 경찰은 옴진리교 내부 조직도마저 확보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테러를 저지른 이후 일본 정부는 종교법인법에 따른 해산명령, 옴진리교 파산 절차 돌입, 파괴활동방지법 적용 등 '세 자루 창'으로 옴진리교를 붕괴시키는 데 나선다.

특히 일본사회가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옴진리교를 파산시키려던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피해자와 유가족이 직접 옴진리교 재단을 상대로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이었다.

옴진리교 사건 피해자들은 옴진리교의 만행으로 인해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의 소중한 행복을 순식간에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피해자답게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열거나 피해자답게 방 한구석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답게' 당당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고 피해를 금전으로라도 복구해내라고 옴진리교 교단에 요구할 정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일본 vs 옴진리교> 239쪽


옴진리교의 재산 중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책상 하나 연필 한 자루까지 모두 팔아서 단돈 1엔을 파산 절차에 참가한 피해자의 숫자인 1,201등분으로 나누는 한이 있더라도 피해자에게 모두 돌려주겠다는 일본 사회의 의지"(<일본 vs 옴진리교> 252쪽) 덕분에 옴진리교 사건 패자들은 2008년까지 40.39%의 채권을 회수했다.

일반적인 파산 절차의 경우 채권의 20%가량을 받으면 성공적인 사례로 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40%의 회수율은 놀라운 성과였지만, 일본사회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도쿄 지하철 테러 이후 2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옴진리교 범죄 피해자 지원기구'가 옴진리교의 후계단체인 알레프와 빛의 고리로부터 매년 손해배상금을 회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채권자가 내야 할 예납금을 대신 지급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 채권의 우선 배당권을 포기하는 등 통상적인 절차를 바꾸면서까지 옴진리교 피해자들이 1원이라도 더 많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가 통상적인 매뉴얼보다 앞선다는 인식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일이다.

유가족과 피해자, 피해보상 받을 권리 있다

여기서 옴진리교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저자는 옴진리교에 맞선 일본사회의 대응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을 대비시킨다.

일본사회는 사건 발생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옴진리교 후계단체가 매년 일정한 금액을 손해배상으로 갚아나가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옴진리교 사건의 사후 처리에 책임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돈을 요구하다니 유가족과 피해자로서 진정성이 없다. 결국 돈이나 바라고 저러는 것이냐"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저자는 '진정성' 운운하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피해자와 유가족은 돈을 받아야 한다"(305쪽)고 반박한다. 사람의 생명 값이 너무 싸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스텔레 데이지 호 침몰 사고 같은 대형참사가 되풀이되는 사회에서는 "유가족과 피해자가 많은 돈을 받아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돈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인 것이다"(306쪽).

유가족과 피해자는 돈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사후처리의 첫걸음이다. 일본 사회는 옴진리교 사건이 발생한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을 투자해 겨우 이 첫걸음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한국이 이 첫걸음을 당당하게 내디딜 차례다. - <일본 vs 옴진리교> 308쪽
유가족과 피해자는 돈을 받을 권리가 있고, 사건의 가해자가 그 돈을 낼 때 비로소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일본의 한 종교단체가 저지른 테러, 이미 20년도 전에 벌어진 참사가 2018년 한국사회에 던지는 교훈이다.

일본 VS 옴진리교 - 일본 현대사의 전환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네티즌 나인 지음,
박하, 2018


#옴진리교 #마쓰모토 치즈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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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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