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마음을 청소하는 초강력 청소기의 정체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 30] 근심하는 존재, 인간

등록 2018.06.23 11:13수정 2018.06.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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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될 근심을 이르는 말이다. 옛날 중국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걱정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얘기에서 유래되었다.


걱정과 근심은 단짝처럼 잘 붙어 다니는 단어이다. 의미도 비슷하여서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각각 독자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걱정: 어떤 일이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움.
-근심: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함.

속을 태운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근심은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애를 태우는 것이지만, 걱정은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일 때문에 애를 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이 걱정보다 심각성이 크다.

96%의 걱정은 하나 마나 한 셈

사는 동안 걱정 근심이 끊이질 않았다. 아주 행복했던 순간에도 그 행복이 어디론가 사라질까 봐 염려했었다. 걱정과 근심은 마치 물결처럼 끝없이 밀려와서 애간장을 태우다가 사라졌다. 명확한 실체도 없으면서 유령처럼 생겨나서 마음을 괴롭히다가 흐지부지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걱정 근심이라는 허깨비한테 매번 속으면서도 또 속게 되는 것은 세상일을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앞을 예측할 수 없기에 막연히 두렵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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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이라는 自然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크고 작은 물결이 끝없이 일렁거린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어차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 이명수


그리스 신화에 인간 창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근심의 여신 '쿠라(Cura)'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흙으로 장난을 치다가 자신을 닮은 모형을 만들었다. 만들어 놓고 보니 썩 훌륭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제우스는 흔쾌히 쿠라 여신의 흙 인형(인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생명을 얻은 인간은 시키는 대로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들어서 쓸모가 많았다.

제우스는 그런 인간이 탐이 났다.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가 주인이라고 우겼다. 두 신이 인간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옥신각신 다투자 흙의 신 호무스도 슬쩍 끼어들었다. 애당초 흙으로 인간의 모형을 만들었으니 흙의 신인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셋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인간이 자기 것이라며 바득바득 우겼다. 끝까지 결론이 나지 않아 심판의 신 사튀르에게 갔다. 까닭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사튀르가 판결을 내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그때 가서 몸은 흙에서 온 것이므로 흙의 신 호무스가 갖고, 영혼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니 제우스가 가져가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은 인간을 빚은 쿠라가 관장하라."

세 신을 모두 만족시키는 솔로몬식 명판결이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근심의 여신 쿠라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근심 걱정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쿠라 신화에서 자신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 '조르개(Sorge)'를 끌어냈다. 자신의 대표적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란 근심 걱정 속에서 허덕이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걱정과 근심, 즉 불안감은 존재의 근저에 깔린 실존의 본질이며, 그것이 없다면 죽은 흙덩이에 불과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본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가정이나 직장에서 뭔가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근심이 생긴다. 현대 사회에서 아무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걸까?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이라는 흥미로운 용어가 있다. 아라비아 문학의 결정판 <천일야화>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서 차용한 말인데, 동화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쓰인다.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이 괜한 걱정 근심을 불러내 스스로를 괴롭히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나친 현상을 정신병리학에서는 불안장애라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사람의 걱정과 근심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분석하여 이런 결론을 도출해냈다.

"우리가 하는 근심과 걱정의 40%는 절대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22%는 정말 사소한 것들로 고민하고 있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는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결국, 96%의 걱정은 하나 마나 한 셈인데 거기에 붙들려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어리석고 가련한 존재이다. 불완전한 존재 인간에게 걱정 근심은 숙명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사람이 크고 작은 걱정 근심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걱정이 많으면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걱정은 잠을 삼천리 밖으로 내쫓고 몸을 뒤척이게 만든다. 어린아이가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옛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인디언들은 '걱정 인형'을 만들었다. 모든 걱정은 내게 맡기라는 인형이다. 아이가 걱정이나 공포로 잠들지 못할 때 부모들은 천으로 만든 작은 가방 또는 나무 상자에 인형을 넣어 아이에게 선물했다. 그 속에는 보통 6개의 걱정 인형이 들어 있다. 잠자리에 든 아이가 자신의 걱정을 말하고 인형을 베개 밑에 넣어두면 부모는 베개 밑의 인형을 치우면서 "네 걱정은 인형이 가져갔단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무토막과 헝겊 조각으로 만든 조그맣고 볼품없는 인형이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쫓아내려는 인디언의 지혜가 돋보인다.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데, 장년이 되면 대폭 감소하여 15~20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의 그 풍성했던 웃음이 사라진 까닭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보편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욕망과 희망을 품는다. 남들보다 더 멋지고, 더 풍요롭게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끝없는 경쟁을 통하여 삶의 한계를 자주 경험하면서 불안과 염려가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사실 생존경쟁에서 뒤처지면 서러운 꼴도 많이 당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이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사하(saha)'를 음역한 것인데, 이를 의역하면 인토(忍土) 또는 감인토(堪忍土)이다.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숱하게 많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도 다양한 근심들이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근심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근심을 떨쳐냈고, 걱정 근심하는 제자들에게도 기도할 것을 권면했다. '기도'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다면 '소망' 또는 '염원'이라고 단어를 바꾸어도 괜찮다.

고민한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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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바다에는 크고 작은 물결이 끝없이 일렁거린다. ⓒ Pixabay


나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다. 굳이 말한다면, 다신교도는 아니지만 모든 신을 인정하는 편이며, 심정적으로는 불교사상에 마음이 간다. 특히 세상의 모든 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을 믿고 싶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 것이 이치에도 맞다.

"진인사대천명,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금언을 이따금 기도처럼 읊조리곤 한다. 기도하는 행위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암시의 효과가 있다. 세뇌 교육을 하듯이 자신의 믿음을 자신에게 끝없이 들려주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되어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이 자기암시의 효과이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부자 되게 해달라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듯이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스스로 힘으로 노력해야 결과가 있고 운도 따른다. 결국, 기도는 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크고 작은 물결이 끝없이 일렁거린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가 없듯이 삶에서 완전한 걱정 근심을 없애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어차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가끔 푸른 하늘에 초음속 제트기가 길게 비행운을 남기고 날아가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하늘에 하얗게 줄을 그은 비행운도 사라지고 제트기가 지나간 흔적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웬만한 것들은 다 사소하게 보인다. 1년 전의 오늘, 10년 전의 이때쯤 나는 무슨 걱정 근심을 했던가? 걱정 근심이란 제트비행기가 하늘에 그린 제트운과 같은 것이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그냥 지나가 버리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걱정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 걱정 근심으로 마음이 잔뜩 어지럽혀져 있다면, 집 안 청소를 하듯이 마음 청소를 하는 것이 좋다. 어질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마음을 청소하는 초강력 청소기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을 계속 떠올리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진다.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은 "마음이 천국을 만들고 또 지옥을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 말과 흡사한 뜻을 지닌 말이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행복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행복해진다.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좋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밝아진다.

처세술의 달인 데일 카네기는 "근심의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펴고 웃으라"고 귀띔했다. 우산이라는 것은 밝고 좋은 생각이다. 그의 조언에 따라 그냥 웃어 보자. 웃음에는 신통한 효과가 있다. 실없이 웃어도 한결 마음이 풀린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라는 명언처럼 웃으면 긍정의 힘이 생긴다.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어둠다면, 지금 한 번 웃어 보시라!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근심의 여신 쿠라 #램프 증후군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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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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